K바이오 큰 장 서는 까닭… ①손실 딜레마 ②임상 가속화 ③혹한기 기저효과 ④승계 진통

이재명 2024. 1. 25. 04: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OCI-한미·오리온-레고켐 이어 M&A 확대 전망
관리종목 지정 기준 유예기간 다돼 발등의 불 
기술력·개발비 늘면서 자금 확보 필요성 증가
경영승계, 상속세 이슈로 바이오 생태계 조정
게티이미지뱅크

기술특례 상장으로 2019년 코스닥에 입성한 신약개발 기업 티움바이오는 지난해 3분기까지만 해도 2025년 관리종목으로 지정될 위기에 놓였다. 임상시험 진행은커녕 하루빨리 기술수출을 성사시켜야 할 실정이었는데, 지난달 가까스로 고비를 넘겼다. SK케미칼로부터 200억 원을 투자받은 덕에 자본을 확충했다. 대규모 투자를 결단한 SK케미칼은 티움바이오 3대 주주에 올랐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투자 위축으로 몸살을 앓던 바이오 기업들이 최근 인수합병(M&A) 추진이나 지분투자 유치에 활발히 나서고 있다. 한국 M&A거래소 데이터를 보면 지난해 상장사와 비상장사를 포함한 바이오·의약·헬스 기업 인수합병 사례는 67건으로, 2022년 54건에서 24.1% 증가했다. 2023년 전체 인수합병 664건 중 10.4%를 차지해, 2022년 7.6%에서 비중을 키웠다.

바이오·헬스케어 산업 진출을 노리는 기업과, 생존을 넘어 성장 기회를 모색하는 바이오 벤처 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상황이 이런 흐름을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올해는 기술투자와 재무상황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지거나 승계 이슈로 진통을 겪는 제약·바이오 기업이 늘면서 '한국형 M&A'가 더 활발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①R&D 비용 손실로 반영... 상폐 위기 피해야

티움바이오가 위기에 빠졌던 이유는 2022년에 이어 23년에도 연간 손실(법인세 비용을 차감하기 전 당기순손실, 법차손)이 자본의 50% 이상을 차지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코스닥 상장사는 ▲매출 30억 원 미만 ▲최근 3년 내 2회 이상 법차손 규모가 자본의 50% 초과 ▲4년 연속 영업손실 발생 ▲자본 10억 원 미만 중 하나라도 해당되면 관리종목에 지정돼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다. 다만 기술특례 상장사는 매출 기준은 5년, 법차손 기준은 3년간 적용이 유예된다.

바이오 기술특례 상장 기업은 2018년 15개, 19년 14개, 20년 17개로, 연 10개 미만이었던 2021~23년과 비교해 많았다. 올해가 관리종목 지정 기준 유예기간이 도래하는 기업이 늘 시기인 것이다. 특히 이들은 코로나 대유행에 따른 임상시험 중단, 고금리·고환율로 인한 투자 경색을 겪으며 재무 여건이 불안정한 편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보건산업정책연구센터는 지난해 10월 기준 상장유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바이오·헬스 기술특례 상장사가 30여 곳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당장은 관리종목 지정 위기를 벗어났더라도 향후 법차손 비율이 차오를 것을 우려해 임상을 주저하는 기업 역시 M&A 영향권이다. 연구개발(R&D) 비용이 손실로 반영되는 구조 탓에 임상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이른바 '법차손 딜레마'에 대해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는 "수조 원씩 자금을 투입하는 중국, 미국과 비교해 비슷한 기술력과 유망한 후보물질을 가졌는데도 과감한 임상 투자를 스스로 억제하는 기업도 국내엔 꽤 있다"며 "수천억 원을 투자해 수조 원짜리 신약을 만들어내는 산업 특성을 감안해 제도의 부작용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②기술은 살려야... 선제적으로 자금 확보

대전에 위치한 레고켐바이오 본사 전경. 레고캠바이오 제공

레고켐바이오는 지난달 글로벌 제약사 얀센에 17억2,250만 달러(약 2조2,400억 원)를 받기로 하고 신약 후보물질(LCB84)을 수출했다. 창사 이래 누적 기술수출 계약이 13건, 총 규모 8조 7,000억 원에 달할 정도로 탄탄하다. 하지만 개발 완주를 노린 LCB84에 예상보다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레코켐은 R&D를 이어가기 위해 선제적으로 인수합병 결단을 내렸고, 회사 지분 25%를 오리온에 매각했다.

레고켐 관계자는 "연간 임상 비용이 1,000억 원에 육박하는데, 매년 4~5개의 신약 후보물질이 추가되고 5~10년 뒤 임상 2상을 넘어 3상까지 끌고가려면 필요한 R&D 자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2030년에는 1조 원 이상이 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규모가 작은 바이오 기업 대다수가 비슷한 고민을 한다. 개발비가 늘수록 R&D 성과를 살리기 위해 인수합병이나 기술수출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 것으로 보인다.


③"지금이 제일 쌀 때"... 알짜기업 인수 기회

업계에선 2022~23년을 벤처 투자 혹한기로 본다. 바이오 벤처의 가치 하락세가 바닥을 쳤다는 것이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벤처캐피탈의 바이오·제약 투자 규모는 240억 달러로, 2022년(369억 달러) 대비 약 35% 축소됐다. 그런데 세계 헬스케어 분야 인수합병 규모는 1,910억 달러로, 전년 대비 오히려 34.5% 증가했다. 초기 벤처 투자는 감소한 반면, 기술개발 후반 단계에 있는 기업을 사들이는 추세는 반대로 확대된 상황이다. 협회 관계자는 "최근 대형 기업들은 리스크가 낮고 단기간에 성과를 낼 기업을 인수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동아ST의 앱티스 인수가 그런 사례라고 업계는 평가한다.

이런 흐름은 그간 바이오에 눈독 들여온 대기업들 움직임에서도 두드러진다. 삼성은 미국 바이오젠의 바이오시밀러 사업부를, LG는 아베오 이후 추가 바이오 기업을 인수하려고 검토 중이다. GS, CJ, HD현대 등도 바이오·헬스케어 투자 확대를 추진하고, 세계적으로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같은 빅테크까지 바이오 투자전에 속속 참여하고 있다. 이승호 데일리파트너스 대표는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들은 올해 하반기 금리 인하를 기대하며 검증된 바이오 기업을 가장 싸게 확보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신속한 결정을 내리고 있다"면서 "글로벌 흐름에 비춰도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다양한 매물들과 매칭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천 송도 삼성바이오로직스 5공장 건설 현장. 삼성바이오로직스 제공

④ 토종사 승계, 벤처 1세대 은퇴... M&A 대안 급부상

한미약품그룹은 창업주 고(故) 임성기 회장 별세 후 발생한 5,400억 원의 상속세 마련 방안을 고심한 끝에 OCI홀딩스와의 지분 교환을 결정했다. 1조 원 안팎에 머무는 연매출을 끌어올릴 전략도 필요했다. OCI와의 통합이 상속세 재원을 확보하면서도 안정적 경영 기반 위에 R&D 투자를 늘릴 해법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다른 전통 제약사들도 3·4세 경영이 가시화하고, 1세대 바이오 벤처 창업주들의 은퇴 시기가 다가오면서 합종연횡은 더 늘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이전이나 매각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알테오젠도 1세대 바이오 벤처로 꼽힌다.

서울 송파구 한미약품 본사 전경. 뉴시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이종기업 간 융합은 제약·바이오 생태계가 진화하는 모습"이라며 "다만, 체계적인 검증을 거쳐 결합했다 할지라도 대규모 R&D 투자를 성패와 관계없이 이어갈 수 있느냐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기자 nowlight@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