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5000명 해고한 ‘신의 직장’ 구글, 왜 혁신의 상징 ‘문샷’까지 버렸나

실리콘밸리/오로라 특파원 2024. 1. 2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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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못내는 부서·조직 구조 조정

구글이 혁신의 상징이었던 내부 조직 ‘구글X’에서 연구진을 대거 해고했다. ‘문샷(moonshot·달을 쏘다)’으로 불리는 구글X는 영생, 열기구 인터넷, 스마트 안경, 사람을 대체하는 로봇 등 인류와 구글의 미래를 위해 당장 수익을 못 내는 프로젝트에도 과감히 투자하는 ‘구글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내는 조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구글X를 통해 가능성이 입증된 것은 자율 주행차 기업 웨이모 하나일 정도로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22일(현지 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구글은 구글X에 대한 ‘무한정 지원’ 원칙도 버렸다. 구글X 프로젝트 자금은 내부가 아닌 외부 투자자 유치로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선 “구글이 미래 사업을 발굴하기 위해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하는 대신, 인공지능(AI)이라는 확실한 미래에 모든 자원을 쏟아붓기 시작한 것”이라며 “성과 없는 조직에 지원하지 않겠다”는 것은 “1998년 구글 창업 이래 가장 큰 경영 철학 변화”라는 평가가 나온다.

◇'역할 삭제’ 나선 구글

“우리는 가장 우선순위에 놓인 사업에 투자를 집중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현실적으로 어려운 선택(감원)을 하게 됐다.” 지난 17일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 경영자(CEO)는 직원들에게 보내는 메모에 이렇게 썼다. 지난 10일 시작된 대규모 감원에 내부 반발이 들끓자 공식 입장을 낸 것이다. 그는 “필요한 경우 올해 내내 자원 할당(resource allocation) 결정을 계속 내릴 것”이라고 했다. 피차이 CEO가 말한 자원은 서버와 같은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기업이 사업을 꾸리는 데 들이는 인력, 예산, 복지 등 모든 비용을 뜻한다.

글로벌 점유율 90% 이상인 검색 엔진과 강력한 온라인 광고 사업, 세계인이 즐겨 보는 유튜브 등을 무기로 매년 큰 폭의 성장을 이뤄온 구글의 자원은 무한대에 가까웠다. 그 결과 퍼주기식 복지가 제공되는 ‘신의 직장’, 감원 없는 ‘엔지니어 철밥통’이 됐다. 하지만 구글은 이제 대대적인 구조 개편을 통해 낭비되는 회사 자원을 회수해 AI 사업에 집중적으로 할당하고 있다. AI가 마치 블랙홀처럼 구글의 모든 자원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뚜렷한 경쟁자가 없던 인터넷 시장과 달리, AI 시장에서는 이미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MS)가 앞서나가고 있다.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 고가 AI 반도체를 대량 구매하고, AI 서비스 고객을 확보하는 마케팅 비용을 충당하려면 자원 할당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인 셈이다.

그래픽=김현국

구글은 챗GPT가 촉발한 AI 열풍이 본격화한 지난해 1월 전체 직원의 6%에 해당하는 1만2000명을 해고했고, 올해도 이미 1000명 이상을 집으로 보냈다. 매출 기여가 낮은 구글의 스마트폰 픽셀, AI 스피커 네스트, 스마트워치 핏빗, 증강현실(AR) 안경 등 하드웨어 부문이 주요 타깃이다. 구글 엔지니어 A씨는 “이번 감원이 예전과 다른 것은 단순 해고가 아닌 ‘역할 삭제(Role Elimination)’라는 것”이라고 했다. 일을 못하는 기존 직원을 새로운 직원으로 교체하는 것이 아닌, AI 시대에 맞춰 회사 구조 자체를 뜯어고치고 있다는 것이다.

◇'신의 직장’도 성장해야

구글의 변화를 두고 테크 업계에서는 “신의 직장의 본질은 ‘성장’이라는 점이 명확해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구글 최고 경영진이 AI 시대를 앞두고 전력 질주해야 하는 상황에 한가하게 자원을 낭비해선 미래가 없다는 위기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구글은 이미 사내 마사지사 27명을 해고했고, 무료 피트니스 강습 수도 줄였다. 사용자가 많지 않은 셔틀 노선은 폐쇄했고, 직원들에게 비싼 애플 맥북 대신 구글 크롬북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반면 AI 투자는 아끼지 않는다. 구글은 최근 10억달러를 투자해 영국에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기로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오픈AI의 대항마로 꼽히는 생성형 AI 스타트업 앤스러픽에 20억달러를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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