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제 아내가 죽은 게 맞습니까

남궁인 이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작가 2024. 1. 2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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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가 발생했다. 팔십대 부부가 운전하던 차가 가드레일을 들이받아 사고가 났다고 했다. 현장에 심정지 환자가 있다는 지령에 응급실 의료진은 중환 구역에 집결했다. 하지만 곧 지령이 정정되었다. 심정지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동승자가 온다고 했다. 우리는 중증외상 환자를 수용할 채비로 변경했다.

할아버지는 차 안에 있다가 구조되어 도로에 누워 있었다고 했다. 조수석의 할머니는 차 바깥으로 튕겨져 나가 현장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았다. 할아버지는 잠시 나란히 누워 있다가 구급차로 실려 왔다. 차에는 에어백이 없었으며 안전벨트도 매지 않았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었지만 의식이 있어 작은 소리로 대화할 수 있었다. 가슴과 머리가 아프다고 했고 손과 발이 하나씩 모양이 일그러져 있었다. 이송을 마친 구급대원이 복귀하려고 하자 할아버지가 대원에게 물었다. “내 동승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저는 다른 구급차의 사정은 모릅니다.”

엑스레이에서 오른쪽 폐의 기흉과 혈흉이 나왔다. 갈비뼈 사이에 흉관을 꽂자 피가 빠져나왔다. 혈압이 떨어져 수혈을 진행했지만 출혈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내게 다시 물었다. “제 동승자는 어떻게 되었나요?” 외상으로 인한 심정지에서 살아나기는 매우 어렵다. 팔십대의 노인이라면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는 다른 병원으로 이송된 그의 아내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다. “저는 여기에만 있어서 아내분 소식은 모르겠습니다.” 그는 다시 물었다. “제 아내가 죽은 게 맞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를 CT실로 옮겼다. 머리 CT에서 소량의 뇌출혈이 나왔지만 의식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뇌출혈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안부를 계속 물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폐에 약간의 출혈이 있었지만 다행히 다른 장기의 손상은 피했다. 중환 구역으로 돌아온 환자의 팔다리 골절을 맞추자 더 이상 할 처치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사망까지 이르는 외상은 아니었고 응급 수술이 필요한 상황 또한 아니었다. 고령의 마른 몸이 외상을 버텨낼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다만 할아버지의 다른 가족을 수배해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경험상 평소 연락하던 자녀가 있다면 어떻게든 연락이 닿는다. 아무래도 노부부는 둘만이 의지하며 살아왔던 것 같았다. 단둘이 직접 운전해 어디론가 가는 일도 그들의 일상이었을 것이다.

보호자가 없는 환자는 온전히 우리에게 맡겨졌다. 그런데 문득 환자의 의식이 흐려졌다. 의식 유지 또한 생체 활동의 결과다. 몸은 감염이나 외상을 겪을 때 일부러 의식의 끈을 놓아버리기도 한다. 심한 통증이나 정신적 충격에도 마찬가지다. 의식이 저하되면서 혈압과 맥박까지 자꾸 가라앉았다. 잠깐씩 의식을 되찾을 때마다 그는 아내가 괜찮은지를 물었다. 사고 현장에서 분명히 쓰러진 아내를 보았을 것이다. 그 결과를 짐작하고 있겠지만 아무도 그에게 확실히 답해주지 않았다. 나는 끝까지 사실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아내의 죽음을 말해주면 그가 생을 놓을까 겁이 났다. 그런데 환자의 호흡이 약해졌다. 의식을 완전히 잃어버린 그에게 기도 삽관을 시행했다. 이제 중환자실 처치만이 남았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만약 기적적으로 회복되면 그는 가장 먼저 아내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마지막이 자신이 운전하던 차와 차가운 도로 위였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 다시 걷기 위해 재활 치료를 받으며 아내가 없는 삶을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투병하는 편이 나은가? 알 수 없는 채로 투병하는 편이 나은가?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마치 어떤 힘이 잡아당기는 것처럼 혈압이 오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내 고민과 관계없이 묻는 것 같았다. 살아 있는 것이 나은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 것이 나은가.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지금 가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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