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못 지켜준다”...홍해 바닷길 방어, 양만춘함으로 버거운 까닭
해상 교통로 보호 왜 중요한가
지난 16일 홍해 남쪽 예멘 앞바다에서 그리스 화물선(벌크선)이 후티 반군이 쏜 미사일에 맞았다. 이 선박은 화물을 싣지 않고 수에즈운하로 가다가 피격된 뒤 항로를 바꿨는데,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고 약간의 침수 피해만 발생했다.
후티 반군이 쏜 미사일은 대함(對艦) 순항미사일이 아니라 대함 탄도미사일이었다. 대함 탄도미사일은 순항미사일보다 속도가 빨라 요격이 어렵다. 후티 반군이 사용한 미사일은 이란 파타 330 탄도미사일을 대함용으로 개량한 것으로, 최대 사거리는 500㎞다. 이란과 끈끈한 커넥션을 갖고 있는 북한도 비슷한 대함 탄도미사일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사일·드론 등 ‘복합 공격’
앞서 지난 9일 후티 반군은 예멘에서 홍해 남부 국제 해상 무역로를 향해 대함 탄도미사일은 물론 대함 순항미사일, 드론(무인기) 등으로 대규모 ‘복합 공격’을 감행했다. 미 중부사령부는 후티 반군과의 교전 뒤 “미 항모 아이젠하워함에서 발진한 FA-18 함재기, 미 해군 그레이블리 구축함 등과 영국 해군 다이아몬드 구축함이 (후티 반군이 발사한) 드론 18대, 대함 순항미사일 2발, 대함 탄도미사일 1발을 각각 요격했다”고 밝혔다.
미국과 영국은 이에 대응해 지난 12∼13일 후티 반군 근거지를 대규모로 공습했지만, 후티 반군의 홍해 선박 공격이 계속되자 지난 22일 밤 후티 반군의 군사시설 8곳을 겨냥한 대규모 2차 공습을 벌였다. 하지만 후티 반군의 공격이 얼마나 약화될지는 미지수다. 후티 반군은 지난달 14일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과 연관된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선언한 뒤 지금까지 홍해를 지나는 선박 최소 10여 척을 공격하거나 위협했다. 여기엔 이스라엘과 무관한 선박도 포함돼 있어 국제사회를 긴장시키고 있다.
홍해는 전 세계 해상 컨테이너 물동량의 30%, 전체 상품 무역량의 12%를 차지하는 해상 교통로의 요충지로 우리나라의 의존도도 높다. 홍해에서 후티 반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민간 상선 피해가 속출하자 다국적 함대도 추진되고 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 장관은 지난 19일 40여 국과 장관급 화상회의를 열고 홍해 항로에서 민간 선박을 보호하는 다국적 함대에 기여할 것을 촉구했다. 오스틴 장관은 앞서 성명을 통해 홍해 안보에 중점을 둔 다국적 안보 구상인 ‘번영의 수호자 작전(Operation Prosperity Guardian)’ 창설을 발표했다. 미국·영국·바레인·캐나다·프랑스·이탈리아·네덜란드·노르웨이·세이셸·스페인 등이 참여해 홍해 남부와 예멘과 가까운 아덴만에서 합동 순찰 등 공동 대응에 나선다는 것이다.
◇청해부대 대함미사일 방어 능력 강화 필요
이에 따라 소말리아 아덴만에 파견돼 있는 우리나라 청해부대 전력을 강화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청해부대에는 41진으로 광개토대왕급(DDH-Ⅰ) 한국형 구축함인 양만춘함이 파견돼 있다. 지난 2009년 창설된 청해부대에는 광개토대왕급보다 큰 충무공이순신급(DDH-Ⅱ) 구축함 1척이 줄곧 파견됐지만 현 정부 들어 대북 대응 위주 정책에 따라 40진부터 광개토대왕급 구축함을 파견하고 있다.
3200t급 구축함인 양만춘함은 대함미사일과 함포, 헬기 등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대함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수단은 시스패로 단거리 함대공미사일(최대 사거리 19㎞)과 30㎜ 기관포(골키퍼)밖에 없다. 이들은 사거리가 짧아 멀리 떨어진 우리 민간 선박을 상대로 한 대함미사일 공격은 막기 어렵다.
반면 충무공이순신급(4400t급)은 광개토대왕급보다 훨씬 강력한 대함미사일 요격 능력을 갖고 있다. 근접 방어 무기로 골키퍼 기관포와 RAM 미사일을 갖추고 있고, 최대 사거리가 167㎞에 달하는 SM-2 블록ⅢA 함대공 미사일 32기도 탑재하고 있다. 미 해군 함정들이 홍해에서 후티 반군의 미사일과 드론을 요격하는 데 주로 활용되고 있는 것도 SM-2 미사일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해상 교통로 보호를 위해선 해군력 강화 등 군사적인 대책과 함께 해운 조선 산업 육성 정책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해운사 대표는 “일본은 2000년대 초반 이후 선박 건조량에서 한국에 추월당했는데, 일본 조선 산업의 실패는 물론 항해사·기관사 등 해기(海技) 인력 양성 실패 사례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가 우수한 해양 기술 인재를 육성해 해운 산업을 발전시킨 덴마크와 노르웨이 등을 모델로 우리도 해양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10배까지 뛴 홍해 통과 선박 보험료
후티 반군들의 잇따른 홍해 통과 민간 선박 공격으로 선박 보험료가 급등하고,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우회하는 항로로 변경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16일(현지 시각) 보험사들이 현재 홍해를 지나는 선박들에 대해 선박 가액의 0.75∼1.0% 상당의 전쟁 위험 보험료를 부과하고 있다면서,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10분의 1 수준이었다고 보도했다. 1억달러(1300여 억원)짜리 선박에 대해 1%의 전쟁 위험 보험료를 부과할 경우, 홍해를 지나는 데 보험료로만 100만달러(13억여 원)가 든다는 얘기다.
로이터통신도 1월 초까지만 해도 전쟁 관련 위험 프리미엄(웃돈)이 선박 가액의 0.7%였지만, 1월 중순 현재 1%가량으로 올랐고 상승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대표적인 컨테이너 운임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도 최근 2개월간 106.6%나 증가했다.
비용과 안전 문제 때문에 홍해-수에즈운하 항로 대신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우회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유럽까지 홍해-수에즈운하 항로로 이동할 경우 거리는 1만5700㎞로 35일이 걸린다. 하지만, 희망봉 항로를 활용할 경우 거리는 2만2000㎞로, 소요 일수는 44일로 늘어난다.
국내 해운업체 고위 관계자는 “우리 회사의 경우 지난달부터 배들을 모두 희망봉 항로로 우회하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상 교통로 차단 때 매일 5조5000억 손실”
“해상 교통로가 차단되면 나라가 주저앉게 되는데 누구한테 의존할 사안이 아닙니다.”
최윤희<사진>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장(전 합참의장)은 최근 홍해 사태와 관련, 지난 22일 본지 인터뷰에서 우리의 생명선인 해상 교통로 보호를 위한 독자적인 해양력 강화와 컨트롤 타워(사령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 회장은 “우리나라 수출입 화물의 99.7%가 해상 운송에 의존하고 있다”며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해상 교통로가 차단될 경우 하루에 5조5000억원의 총산출 감소와 1만6000명의 고용 감소가 초래된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해상 교통로 보호가 중요한데 이는 미국도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두 전쟁에 발목 잡힌 미국이 대신 해상 교통로를 지켜줄 수 없다”며 “이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적용되는 사안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해상 교통로 보호를 위해선 기동함대 건설 등 해군력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최 회장은 강조했다. 기동함대는 2030년대 중반까지 구축함 18척으로 편성된 3개 기동전대로 만들어질 계획이다.
청해부대로 파견됐던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 6척, 세종대왕급·정조대왕급 이지스함 6척, 차기 한국형 구축함(KDDX) 6척 등으로 구성된다. 최 회장은 “군사력 건설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지금부터 기동함대 전력 보강 계획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홍해 사태 등으로 해양 안보가 급박하게 돌아가는데 통수권자가 신속하게 파악하고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채널이 사실상 없다”며 “지난 정부에서 없어진 해양수산비서관이라도 부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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