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114] ‘빈대떡 신사’의 꿈
지역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빈대떡은 대표적인 명절 음식이다. 비 오는 날이면 괜스레 떠오르는 음식이기도 하다. 오랜 역사 덕분에 민속 음식으로 자리 잡은 빈대떡은 특히 광복 이후에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경향신문 1947년 6월 28일 자 기사에서는 손님으로 미어터지는 빈대떡집을 소개했고, 동아일보 1956년 1월 20일 자 기사에서는 “저녁이라도 되어보면 어느 거리고 늘어만 가는 빈대떡집에 가는 곳마다 초만원을 이룬다”라며 서울의 뒷골목 풍경을 묘사했다. 보통 1970년대 청년 문화의 상징으로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를 들곤 하지만, 가수 양병집은 “생맥주는 어쩌다 큰돈 생기면 모를까, 비싸서 잘 먹지 못했다”라며 종로에서 빈대떡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셨다고 회고했다.
빈대떡 하면 으레 한복남의 ‘빈대떡 신사’를 떠올린다. 그런데 이 노래에 대해서는 잘못 알려진 것이 여럿 있다. 1990년대 신문들에서 한복남이 1943년에 이 노래를 데뷔곡으로 발표했다고 언급한 것에서 빚어진 오류로 보인다. 하지만 친필 악보에는 1946년 5월 20일에 작곡한 것이라 적혀 있다. 국도신문 1950년 4월 12일 자에 이 노래의 음반 광고가 처음 등장한 것으로 보아 이 노래는 이때 비로소 공식 발표된 셈이다. 게다가 광고에 부기된 음반 회사의 주소지를 통해 항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한복남이 도미도레코드사를 부산이 아닌 서울 종로구 와룡동에 설립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연합신문 1950년 2월 26일 자 광고에 따르면, 그의 데뷔 음반은 아세아레코드에서 발매한 ‘저무는 충무로’다.
친필 악보에 “요릿집 문 앞에서”와 “돈 없으면 대폿집에서 빈대떡이나 사서 먹지”라고 적힌 대목이 처음에 발표된 음반에는 “요릿집 문밖에서”와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후 친필 악보대로 녹음한 음반도 발매되는 등 현재 여러 버전의 ‘빈대떡 신사’가 존재한다. 처음 발표된 노래는 스윙 리듬으로 전개되다가 “돈 없으면”부터는 왈츠 리듬으로 변한다. 1절이 끝나면 스윙 리듬으로 다시 돌아오는 등 한 곡에서 다채로운 리듬을 번갈아 사용하여 음악적으로 흥미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이 노래는 돈이 없는데도 요릿집에 가서 허세를 부리는 이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그려 웃음을 자아내나 한편으로는 가난한 시절의 아픔도 배어 난다. 88올림픽을 앞둔 1980년대 초반 한국식생활개발연구회가 외교관 부인들에게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빈대떡은 산적, 구절판, 불고기 등을 제치고 좋아하는 한국 음식 1위를 했다. 김밥과 떡볶이 등이 세계적 인기를 얻는 가운데 빈대떡이 케이푸드로 부상할 날이 올까? 다가올 명절, 빈대떡 부쳐 먹으며 정을 나누어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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