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존의 窓] 스마트폰 없이 떠나는 1년간의 해외여행

에릭 존 보잉코리아 사장·前 주태국 미국 대사 2024. 1. 2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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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최근 전 세계적으로 긴장 상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문화적 간극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이를 좁히려는 의지조차 찾기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에 씁쓸할 때가 있다. 가장 적절한 예로 1990년대 외교관으로서 북한을 상대하는 공식 회담과 협상을 주재했던 때가 생생히 떠오른다. 북한은 유구한 역사, 언어, 그리고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유사해 보이는 협상 스타일을 한국과 공유하지만, 세계관은 그 뿌리부터 본질적으로 달랐다. 미북 양자 회담에서 북한 측 외교관들을 만나보면, 아무리 뉴욕에 장기간 체류하며 유엔에서 근무했던 이들이라 할지라도 북한에 대한 미국 및 국제사회의 인식에 대해 지극히 왜곡된 이해를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미국 측 외교관도 서울에서 수년 주재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북한의 정치∙사회적 관습, 당위에 대한 이해가 사실상 전무했다. 이 때문에 공식적 합의에 도달한 뒤에도 실행 단계로 넘어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양측 합의 내용을 명확하게 서면으로 기록했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공통 이해가 부재한 상황이었다.

그동안 미국 내 다양한 지역 및 세계 각지에서 정부나 민간 부문에 종사하면서 일관되게 가장 어렵게 느낀 부분은 바로 다른 문화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었다. 미국 대학을 나온 유학생 중에도 학창 시절 도서관에만 처박혀 미국 문화를 제대로 경험해 본 적 없는 이가 많듯, 외교관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공관 밖을 나서서 파견된 국가의 숨은 매력을 찾아 탐험해 본 적 없는 이도 있다. 이들과 교류하면서 본인의 심리적 안전지대를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것에 뛰어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반복적으로 지켜봤다.

나이가 들수록 누구나 동질 집단 속 안정감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공통 관심사를 지닌 동질 집단의 일원으로서 본인이 주창하는 사고와 신념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결코 본질적으로 나쁜 것이 아니다. 사실 스트리밍 플랫폼, 뉴스 채널, 니치(틈새시장) 음악 서비스와 소셜미디어의 확산 등으로 오늘날 사회에서는 취향을 공유하는 개인들이 모여 더 쉽게 집단 내 결속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 나 역시 비틀스(Beatles) 광팬으로서, 다른 팬들과 비틀스 음악과 역사에 대해 소통하며 상상한 그 이상으로 ‘심도 깊게’ 덕질을 하고 있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한국 전역의 가보지 않은 곳, 심지어 서울 도심 속 익숙하지 않은 동네를 탐방하는 시간이 점점 줄고 있음을 느낀다. 아마 이처럼 편안함을 주는 영역에서 벗어나 이질성을 경험하고 수용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최근 폴 서루(Paul Theroux)의 ‘중국 기행(Riding the Iron Rooster: By Train Through China, 1988년)’을 완독했다. 저자가 무려 1년간 중국 전역을 기차로 돌며 도시와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대화에 관한 기록이다. 녹음과 사진 촬영 등에 스마트폰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오직 방대한 대화와 날카로운 관찰만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아마도 저자가 스마트폰에 의존하지 않았기에 이토록 세세하고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었으리라 확신한다.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없던 1980년대에 처음 한국에 와서 오직 활력과 호기심으로 무장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과 교류하며 시간을 보내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오늘날까지도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의 토대가 되어주는 경이로운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회는 예전과 많이 다른 것 같다. 국가, 정당, 직장 내 파벌을 막론하고 모든 집단에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고갈되어 있다. 그러한 기본적 이해 없이는 우리의 행동에 대한 다른 이의 반응을 점점 더 예측하기 어렵고, 더 나아가 행동하기에 앞서 다른 이의 시선을 과도하게 신경 쓰게 된다. 고뇌와 응징이 연속되는 악순환이 고착화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지금 바로 기차에 올라타 인터넷을 끊고 옆자리 승객과 대화하며 1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열린 마음으로 본인의 삶에 대한 진취적 모험 정신을 일깨울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정이나 일터에서, 혹은 단순히 읽을거리를 찾을 때도, 개방적이고 겸손한 자세와 화합 정신으로 다른 문화를 대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분명 본인의 삶과 커리어를 항행하는 데 귀중한 자산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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