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김 여사 리스크 해법 요구가 사퇴할 일인가
제22대 총선이 70여 일 남은 상황에서 국민의힘에 ‘폭탄급’ 이슈가 터졌다. 윤석열 대통령과 그의 복심이라 불리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한 위원장의 거취를 놓고 정면충돌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으로 변하기 직전 상황으로 치달았다.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는 지난 21일 오후 한 언론에 보도되면서 일파만파 번졌다. 사퇴설 보도가 나온 이튿날 한 위원장은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으로부터 사퇴 요구를 전달받았다는 점과 “제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안다”고 말하며 사실상 사퇴 요구를 거부했다.
대통령실의 사퇴 압박은 표면적으로는 한 위원장이 김경율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를 직접 발표하며 사천 논란을 일으킨 점이지만, 실제로는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한 인식이 대통령과 다르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대통령실은 지난해 11월 말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선물 수수 영상이 공개된 이후 지금까지 공개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으며, 여권에서는 불법 촬영이 사태의 본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여당 내에서 해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랐고, 한 위원장도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며 윤 대통령이나 김 여사의 해명을 촉구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다. 총선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이 문제를 짚어야 한다는 판단에 그간 ‘윤석열 아바타’로 불리던 그가 처음으로 대통령과 다른 목소리를 낸 것이다. 정가에서는 명품 가방 수수는 ‘몰카 공작’이라는 애초 인식과 차이가 있음을 드러낸 이날(22일)을 한 위원장 ‘독립선언의 날’로 여긴다. 하지만 ‘국민 눈높이’가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렸고, 급기야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여겨진 그를 단칼에 내모는 방아쇠가 됐다.
이번 사태를 통해 윤 대통령으로서는 부인 문제에 대해 한 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다는 점과,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 문제는 민생 경제 안보 외교 등 그 어떤 사안보다 우위에 있음을 확인시켰다는 점에서 씁쓸하기까지 하다.
대통령실의 사퇴 압박에 대해 부산지역 한 여권 관계자는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현재의 절대 권력 앞에서는 가는 곳마다 구름 같은 인파를 몰고 다니며 단숨에 차기 대선급 주자로 급부상한 미래권력도 한 방에 날아갈 수 있다는 거다. 이처럼 막강한 힘의 우위에서 비롯된 수직적 당정 관계는 2022년 5월 윤 정부 출범 후 2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이준석 전 대표부터 한 위원장까지 모두 7번의 지도부 교체라는 비상식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파국이냐, 봉합이냐를 놓고 관심을 모았던 당정 갈등은 지난 23일 두 사람이 충남 서천재래시장 화재 현장에서 만나면서 봉합 국면으로 가닥을 잡는 모양새다. 총선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갈등이 격화되면 공멸할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서둘러 악수하는 장면으로 사태를 진정시킨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한 위원장 퇴출 요구가 일일천하로 끝난 데는 여론이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명품백을 받은 김 여사의 잘못을 사과하라는 게 왜 잘못인가.
김 여사 문제는 언제든 다시 불붙을 수 있는 화약고다.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하지 않는 주된 이유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이나 명품백 논란 등 김 여사 문제와 관련한 질문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김건희 특검법’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0~70%가 찬성하고 있지만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며 민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 집권 초기 당 대표직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24일 “한 위원장이 어설픈 봉합으로 진퇴양난에 빠졌다. 김 비대위원이 어떤 식으로든 물러난다면 본인이 위촉한 비대위원을 버리는 것이고, 대통령실이 물러난다면 레임덕”이라고 진단했다. 윤 대통령으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선언한 한 위원장이 집권 여당의 대표로서 오로지 ‘국민 눈높이’에서 다음 행보를 이어가길 바란다.
임은정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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