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1위보다 빛난 꼴찌
“간바레(頑張れ·힘내) 이시카와!”
지난 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전국 남자 역전(駅伝) 경주대회(단체 마라톤)에서 이시카와현 팀 마지막 주자였던 후쿠무라 겐타(29)가 결승점을 넘자, 관중이 이 같은 성원을 쏟아냈다. 이날 이시카와 팀의 성적은 47팀 중 47위. 하지만 관중은 10회째 우승이란 진기록을 세운 나가노현 팀보다 이시카와 팀의 역주에 더 큰 박수를 보냈다. 한 주 전인 14일 교토에서도 전국 여자 역전 대회에서 1위가 아닌 47팀 중 43위 이시카와 팀에 국민 관심이 쏠렸다. 대회 주최사이자 공영방송 NHK도 ‘힘내라 이시카와, 성원을 등에 업고 분투’란 톱뉴스를 내보냈다.
이시카와 팀이 높지 않은 순위에도 전폭적인 응원을 받은 배경엔 지난 1일 이시카와 노토반도를 강타한 규모 7.6 강진이 있다. 평소 재해에 침착히 대응한다는 일본이지만, 새해 벽두부터 발생한 대지진에 국민 대다수가 침울에 빠졌다. 이 가운데 이시카와 팀이 남녀 역전 대회에서 완주에 성공하자, 많은 국민이 감동받고 환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간 대재해가 발생한 일본에서 무너진 지역사회를 일으켜 세우려 정부뿐 아닌 전 국민이 나서 단결하는 모습은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도 일본인들은 ‘먹어서 응원하자’는 정부 캠페인 아래 도호쿠 지역 농수산물을 사 먹었다. 그중에서도 스포츠는 국민을 단결시키는 중요한 촉진제였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10년 지나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슬로건도 ‘부흥’이었다. 한국에서도 2022 카타르 월드컵 때 남자 축구 대표팀의 기적적인 16강 진출이 이태원 참사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달래줬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마라톤은 42.195㎞를 고독하게 달리는 ‘자신과의 싸움’이란 점에서 선수와 관중을 단합시키기 가장 적합한 스포츠로 꼽힌다. 일본 역전 대회는 단체전이고 지역별 순위가 발표된단 점에서 경쟁 요소가 가미돼 있지만, 일본인 대다수는 순위보단 선수들이 부상 없이 완주하는 데 더 큰 박수를 보낸다. 정치나 지역감정으로 찢어졌던 이들도 이때만큼은 분열을 봉합하고 서로를 응원한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양극으로 분열된 한국 사회가 스포츠를 통해서라도 그나마 하나 되는 모습을 보기를 희망한다. 카타르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컵(축구 대회)도 그 한 예다. 한국 대표팀은 20일 상대적 열세로 평가된 요르단에 무승부를 거뒀다. 감독이나 선수 개인을 꾸짖는 반응이 많지만, 비난보단 격려, 때로는 애정 어린 지적으로 이들을 북돋아줬으면 한다. 성적과 별개로 웃으며 이들을 맞이할 포용력을 갖추길 소망한다. 기왕이면 한·일이 결승에서 만나, 승패와 무관하게 서로를 일으켜 세우며 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어떨까. 우리가 져도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 ‘1위보다 빛난 꼴찌’라는 제목에 담긴 스포츠 정신과 휴머니즘을 되새겨보자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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