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간신열전] [220] 희로폭발(喜怒暴發)

이한우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 2024. 1. 2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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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임금 숙종(肅宗)은 탁월한 카리스마로 신하들에게 가 있던 권력을 되찾아 왕권을 확립하고 조선을 화폐 사회로 만들었으며 북한산성을 쌓고 강화도를 요새화함으로써 부국강병의 기초를 닦았다.

강한 임금인 때문인지 그는 희로(喜怒)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신하들도 수시로 “희로의 절제에 부족함이 있음이 크옵니다”, “희로의 너무 급박하심”, “희로가 적중하지 못하시어” 등의 언급을 했다. 실록에는 심지어 이를 희로폭발(喜怒暴發)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숙종의 이런 문제에 대해 어머니 명성왕후는 잘 알고 있었다. 숙종12년 12월 20일 명성왕후의 며느리 인현왕후는 훗날의 장희빈을 조심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주상께서는 평일에도 희로의 감정이 느닷없이 일어나시는데 만일 유혹을 받게 된다면 국가의 화(禍)가 됨은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이다.”

희로폭발에 대해서는 숙종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숙종20년(1694년) 세자에게 경계해야 할 10가지 잠(箴)을 지어서 내려주었는데 그중 하나가 신희로잠(愼喜怒箴), 즉 희로를 신중히 하여 중도(中道)에 맞게 기뻐하고 화를 내야 한다는 잠언이다.

“칠정(七情) 중에 성내는 것과 기뻐하는 것이 있다. 이를 알맞게 하기[中之]는 어려우나 발산하기[散之]는 쉬운 것이다. 이러한 병통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무슨 일을 할 수가 있겠는가! 알맞게 하려면 어찌해야 하겠는가? 반드시 일의 이치를 연구해야 한다[蘊理].”

세자에게 이렇게 간곡하게 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실록을 보면 숙종 자신은 말년까지도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듯하다. 숙종 42년(1716년) 2월 19일 자 홍문관 상소다.

“전하께서는 희로의 절도가 맞지 않아서 처분이 너무 급하고 도량이 넓지 못하여 언로(言路)가 점점 막히며 뛰어난 인재를 좋아하는 열렬함이 한결같지 못해 세도(世道)가 더욱 무너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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