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죄에 빠지는 이유
성남에는 김하종 신부님이 운영하는 안나의 집이 있다. 가톨릭 성인 안나의 이름이자 ‘안아주고 나눠주고 의지할 수 있는 집’이라는 뜻의 안나의 집에서는 매일 700여명의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 급식이 운영되고 있고 학교 밖 청소년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여러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성남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소임했던 3년 정도는 필자도 월요일(사제들이 쉬는 날)을 이용해 안나의 집에서 봉사할 수 있었다. 이 글에서는 그때 깨달은 것 중 하나를 나눠본다. 바로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알수록 죄를 피하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흔히 종교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종교에서 죄를 이야기하는 이유가 신이 인간을 감시하기 때문이거나 종교가 죄의식을 자극해 겁을 줘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한데 그런 식의 교리와 행동양식은 종교가 아니라 정확히 사이비들의 것이다. 오히려 가톨릭은 “당신은 죄의 노예가 아닙니다. 당신에겐 귀한 품위가 있어요. 당신은 아름답고 귀한 존재입니다”를 말하려 하기에 죄와의 투쟁(영적투쟁)을 이야기한다.
사실 가난한 사람들과의 만남에 환상은 버릴 필요가 있다. 처음엔 거칠고 공격적인 모습을 오히려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대부분 상처가 있어 그런 것이고 특히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는 것에서 비롯한 것이다.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라 여기기 때문에 ‘막’ 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이해하고 그분들을 귀하게 만나면 어느새 천사 같은 미소를 볼 수 있게 된다.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더 많이 받고 배우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가 깊어져 그분들도 스스로를 ‘아, 나도 사랑받는 귀한 존재구나’ 믿게 되면 더 이상 죄 짓지 않으려 애쓰게 된다. 즉, 사람은 믿음과 사랑을 받으면 자신의 품위를 깨닫게 되고, 자기가 받은 것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이기적 욕망과 싸우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나의 집은 단순히 밥만 드리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한 분 한 분을 아버지 어머니로 부르며 섬겼던 것, 서로가 서로에게 친구가 돼 줬던 것, 때로는 “아이, 아버지! 새치기 하면 안 돼요. 우리 아버지 그런 분 아니잖아요” 하면서 나무라기도 타이르기도 하며 함께 울고 웃은 그 모든 시간은 결국 “당신은 욕망의 노예가 아니에요. 당신은 그보다 귀한 사람입니다”를 말해온 것들이었다.
오늘날엔 위로, 힐링, 사이다라는 핑계로 사람들을 싸구려 거짓 위로에 붙잡아 두는 말들이 많다. “그냥 욕도 좀 하고 살아, 참지 마 되갚아 줘, 네 기분대로 살아, 안 걸리면 그만이지, 사람도 다 동물이야….” 매체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들을 잘 보면 이런 뉘앙스가 깔린 게 많다. 그러나 그건 결국 “너는 고귀한 존재가 아냐”란 말일 뿐이다.
인간 안엔 신의 품위가 있다. 아무리 가난하고 남 보기에 비천한 삶을 살았을지라도 사람은 사랑을 받고 믿음을 받으면 자신의 품위를 깨닫고 변화될 수 있다. 이것이 필자가 안나의 집에서 봤던 것이며, 가톨릭이 죄와의 투쟁을 말하는 이유이고, 신이 우리를 친구라 부른 이유, 십자가를 진 이유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요한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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