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민일보가 만난 사람] 16. 권혁승 백교효문화선양회 이사장
은퇴 후 강릉 귀향 다양한 사업 전개
어머니 그리는 ‘사모정’ 공원 조성
평창올림픽 성화봉송 발원지 주목
효 사상 주제 ‘사친문학’ 장르 정립
‘백교효문화선양회’ 창립 활동 활발
장기·공익적 사업 추진 효 저변 확대
어버이날 법정 공휴일 지정 건의 눈길
2023년도 자랑스러운 강원인 선정
“효향 강릉 세계화 적극 동참 해주길”
‘십 리 장터 길을 오고 갔던 / 어머니의 작은 발이 피곤에 지치고 / 질끈 동여맨 무명치마 허리끈이 숨을 들이쉬면 / 성황당에 올려놓은 조약돌이 꿈을 꾸고 있다 // 젊은 내 어머니와 소 몰던 까까머리 소년이 / 나무 지게 지고 거닐던 핸다리 그 길에는 / 오늘도 어머니가 아련한 고택으로 돌아온다’(권혁승 ‘고향길’ 중)
고향과 어머니를 동일시하는 정서를 통해 효(孝)의 아름답고 순수한 가치를 엿볼 수 있는 이 시는 원로 언론인, 권혁승(91) 백교효문화선양회 이사장이 어머니를 떠올리며 지은 것이다.
권 이사장은 효향(孝鄕)·예향(禮鄕)·문향(文鄕)을 갖춰 3향(三鄕)의 고장이라고 불리는 강릉 출신이다. 3향 중에서도 효를 단연 으뜸의 가치로 삼고 살아왔고, 또 계속해서 정진하고 있는 원로다. 평생을 언론계에 몸담아 온 그가 은퇴 후 고향에 돌아가 사비를 들여 강릉 핸다리마을에 사모정(思母亭)이라는 이름의 공원을 세운 것은 유명한 일화다. 사모정은 권 이사장이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는 공간이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사적인 공간에 묶어두지 않고 공적으로 발현한 곳이자, 효 사상을 주제로 한 ‘사친문학(思親文學)’ 장르가 태동, 정립된 곳이기도 하다.
강원특별자치도민회중앙회는 이같은 공을 인정, 2023년 자랑스런강원인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구순(九旬)이 넘는 나이에도 서울과 강릉을 오가며 효 사상 고취에 매진 중인 권 이사장을 지난 22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나, 효 사상과 관련한 그의 철학을 들어봤다.
- 백교효문화선양회에 대해 소개해 달라.
“사단법인 백교효문화선양회는 나날이 퇴색 소멸되어 가고 있는 효 사상의 선양과 효 문화의 함양을 위해 설립된 법인이다. 우리나라 정신문화의 뿌리이자 효와 경로사상의 근본인 전통문화를 바로 세우고 퇴색되고 있는 효 사상을 되살리기 위해 문화예술 및 대중문화 활동을 통한 인성교육을 실천하는 것이 우리의 가치다. 또 오랜 시간 사비로 추진해 오던 모든 효 문화 선양사업을 비영리 공익법인인 사단법인으로 추진함으로써, 선양사업이 장기적이고 공익적으로 꾸준히 추진될 수 있도록 효의 저변을 확대시켰다는 점에 큰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지난 14년간 이룩한 효 사상 함양과 세계화를 위한 활동·업적을 참고해 어느 누구나 손쉽게 배울 수 있도록, 효와 관련된 문화사업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 효 사상에 대한 각별함이 느껴진다.
“강릉 죽헌동 핸다리 마을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서울에 갔다. 어려운 형편에 키우던 소를 팔아서 입학금을 냈고, 졸업 후에는 신문사에 취직하면서 본격적인 서울살이가 시작됐다. 그때 어머니께서 서울로 올라와 함께 자취하며 뒷바라지를 해주셨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고향에 대한 정도 깊어져만 갔다. 늘 애절하고 그리웠다. 고향 산천에 묻히신 부모님과 고향에 늘 죄스러움과 빚진 사람 같은 부족함이 느껴지다 보니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나에겐 각별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 시대의 흐름 속에 효가 점점 흐려져 가는 요즘, 강릉에서 시작된 ‘효 문화 선양운동’이 더욱 값지다는 평가다.
“2006년부터 평생 구상했던 효문화 선양사업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어머니가 강릉 장을 보고 오시는 길에 피곤한 다리를 쉬고 싶어 하셨을 성황당 근처 핸다리 마을 어귀에 정자를 세웠다. 시비(詩碑)를 세우고 시목(市木) 백일홍을 심어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어른에 대한 공경의 정신을 느끼도록 했다. 2009년 사모정이 완공된 뒤에는 이를 강릉시에 헌정했다. 이어 그곳에서 사친문학의 장을 열었는데, 2011년 수필의 날 당시 한국문인협회와 국제펜클럽 한국지부 전현직 이사장을 비롯해 원로문인 등 400여 명의 문인들이 사모정을 다녀갔다. 작은 시골 마을에 그렇게 많은 문인들이 전국에서 찾아온 일은 전무후무하다. 사친문학의 요람으로 자리매김 하고자 하는 염원의 첫 단추를 끼운 것 같은 기쁨을 느낀 순간이었다. 이같은 노력이 효 문화 확산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어 더욱 뜻 깊고 기쁜 마음이다.”
- 사모정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소개해 달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성화 봉송이 사모정 공원에서 진행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강릉은 대현 율곡 이이 선생과 그 어머니 신사임당을 배출한 고장이다. 신사임당은 노모를 곁에서 극진히 모셨고, 율곡은 서울에서 고향으로 내려와 병석의 어머니를 정성껏 간호하는 등 실천적 효의 전범(典範)이다. 이같은 역사적 배경에서 당시 성화봉송을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했다. 강릉을 세계적인 효의 성지로 널리 알리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에 힘입어 영문으로 ‘올림픽 도시 강릉, 전통문화 숨 쉬는 효향’이라는 제목의 책자를 발간해 선수단과 외국기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신사임당과 율곡이 태어난 오죽헌에서 사모정 공원까지 이어진 ‘어머니 길’을 따라 모자가 함께 뛰어가는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 정부에 어버이날 법정 공휴일 지정을 건의해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5월 어버이날(5월8일) 법정 공휴일 지정의 필요성이 담긴 건의문을 정부와 국회에 전달했다. 어버이날을 공휴일로 지정, 젊은이를 비롯한 온 가족이 효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받아 들이도록 하자는 뜻이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저출산이 지속되는 동시에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전 국민의 20%에 육박하고 있다. 인구 감소와 함께 우리나라 정신문화의 뿌리인 효사상 역시 퇴조 일로에 놓이게 됐다. 부모님을 모시는 자녀들도 줄어들었고 효심도 찾아보기 어려운 세태가 된 것이다. 이런 사회 변화 속에서 어버이날 공휴일 지정은 사라져가는 효사상을 살리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 세상을 다스리는 근본은 바로 효사상이다. 우리의 전통문화 정신이 살아 숨쉬게 하고 부모님에 대한 효심을 일깨워 효사상이 퇴조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앞선 노력의 결실일까, 강원특별자치도민회중앙회가 시상하는 ‘2023년도 자랑스러운 강원인’에 선정됐다.
“‘자랑스러운 강원인’에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1980년대 강원도민회중앙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당시 서울에서 활동하는 재경 시군민회는 춘천과 영월 단 2곳 뿐이었다. 그리고 3번째로 탄생한 재경 시군민회가 1996년 7월 출향 강릉시민들의 화합과 단합을 위해 출범한 재경 강릉시민회였다. 당시 나는 초대 회장을 맡아 서울과 강원, 강릉을 잇는 가교역할을 했다. 많은 출향 강원도민·강릉시민과 소통하면서 고향의 현안을 접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방으로 발벗고 나섰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나의 청춘과 열정을 쏟았던 강원도민회중앙회가 시상하는 큰 상을 받게 되어 너무나 영광스럽다.”
- 앞으로 목표와 더불어 강원도민들에게 한 말씀을 부탁드린다.
“지난해 사모정 공원에 시비 2개와 현판 1개를 추가적으로 조성했다. 사모정이 미래의 등불인 젊은이들에게 효사상을 함양시키는 정신적 문화공간으로 계속해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또한 사모정 공원이 효사상 세계화의 발원지로 거듭난 지금, 강원도는 강원효도(江原孝道)로 그 길을 넓힐 때가 됐다. 효향(孝鄕) 강릉을 세계의 효향으로 널리 알리는 데에 많은 강원도민과 강릉시민 여러분들께서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다.” 이세훈
■ 권혁승 백교효문화선양회 이사장은 ?
1933년 강릉에서 태어나 강릉상고와 서울대 상과대를 졸업했다. 한국일보 편집국장과 서울경제신문 대표로 일했다. 재경 강릉시민회 초대 회장과 강원경제인회 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백교효문화선양회를 창립한후 백교문학상을 제정·시상하는 등 효(孝)문화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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