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산 수출 따낼 땐 박수치더니…정책금융 반년째 ‘못본 척’ 하는 국회
문제는 현행 수은법상 특정 개인·법인에 대한 신용공여 한도가 자기자본의 40%로 제한됐다는 점이다. 지난해 수은의 자기자본은 자본금 15조원을 합쳐 18조4000억원으로 개별 기업에 부여할 수 있는 정책금융 한도는 7조4000억원이다. 수은 법정자본금(15조원)도 98%가 소진돼 추가 자금 공급 여력이 없어진 상태다.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등 방산기업이 폴란드에서 딴 계약 물량만 30조원대로 지원 한도를 훌쩍 넘어선다.
하지만 해외 대형 수주를 지원하기 위해 수은 자본금을 25~35조원으로 확대하는 수은법 개정안은 지난해 7월 발의된 후 6개월째 국회에서 헛돌고 있다.
특히 정책금융 지원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K방산이 이뤄놓은 기존 계약마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2022년 폴란드 정부는 현대로템 K2 전차 1000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K9 자주포 648문과 천무 다연장 로켓 288문, 한국항공우주(KAI)의 FA-50 경공격기 48대를 구매하기로 했다. 같은해 1차 계약을 통해 FA-50 48대, K9 212문 등 124억 달러(약 17조원) 어치 무기를 사들였다. 수은과 한국무역보험공사가 6조원씩 12조원을 수출금융으로 지원하며 힘을 보탰다.
하지만 잔여 물량이 걸린 30조원대 2차 계약부터 수은 정책금융 한도가 발목을 잡았다. 2차 계약 중 일부인 K9 자주포 152문 추가 수출이 지난해 말 성사됐으나 이는 금융지원을 전제로 한 ‘조건부 계약’이라 최종 수주가 불확실한 상태다. 이번 수출 계약 시한이 6월 말인 점을 감안하면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방산업계는 수은법 개정이 불발돼 2차 계약이 무산되면 향후 유럽 시장 공략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우려한다. 폴란드의 대규모 무기 구매로 유럽 각국이 무기 구입처로 한국을 주목하는 상황에서 금융지원 미비로 계약이 파기될 경우 신뢰도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루마니아 정부는 2조 5000억원 규모 자주포 도입 사업에 독일, 터키와 함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를 입찰 적격 후보로 선정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폴란드 구매 사례를 보면서 비슷한 안보 상황에 있는 동유럽, 북유럽 국가들이 한국 제품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금융지원 부족으로 계약이 깨지면 신뢰도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잇딴 대형 수주에 탄력이 붙었던 방산업체들의 실적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24일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국항공우주(KAI), 현대로템, LIG넥스원 등 방산 ‘빅4’ 올해 예상 매출액은 20조5076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12% 늘어날 전망이다. 영업이익(11조8199억원)은 27% 급증할 것으로 분석됐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부와 시중은행은 집단 대출(신디케이트론)을 통해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금리와 보증 측면에서 수출금융보다 불리한데다, 지원 한도도 약 13조5000억원으로 2차 계약 물량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신임 총리가 지난해 말 “한국의 융자금 제공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히면서 이같은 우려가 현실화되는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이 수은법 개정을 해서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달라는 이야기를 돌려서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2030년까지 수은에 현물 10조원, 현금 5조원 출자하는 방안을 마련한 것에 대해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15조원 규모 현물·현금출자 구상은 시장의 예상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지난해 보스턴컨설팅그룹은 “향후 수주산업의 초대형화 등에 대비해 2030년까지 수은에 최소 7조원 규모의 증자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기획재정부에 전달했다.
박지형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빠르게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는 방산 분야 수출을 크게 늘리기 위해서는 정책금융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폴란드와 무기 수출 계약이 걸려 있고 글로벌 불안 요인이 산재해 방산 관련 수요가 많은 지금이 수은 자본금 한도를 올릴 타이밍”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의 경쟁국들은 방산 수출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은 무기 수입국에 차관 형식으로 최대 100% 금융지원을 한다. 중국은 최장 30년간 저리로 무기 구입 대금을 빌려주고, 프랑스도 금융지원과 신용보험을 제공한다.
다만 자본금과 신용공여 한도가 올라가더라도 정부 출자는 단기간 급격히 늘려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규모 출자로 거액의 금융지원이 일시에 이뤄질 경우 자금을 회수하지 못할 위험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김현욱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계약을 맺을 다른 국가의 여력에 따라 리스크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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