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윤석열의 길, 한동훈의 길

박창억 2024. 1. 24. 22:4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년간 동고동락하며 무한 신뢰
갈등 봉합했으나 불씨는 그대로
韓 위원장은 유력한 ‘미래 권력’
‘2인3각 체제’ 얼마나 갈지 주목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5부 요인 등을 초청해 마련한 신년 인사회. 국민의힘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한 후 윤 대통령이 한동훈 위원장을 처음 만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 행사에서 한 장의 사진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한 위원장이 발언에 나서자 맞은편에서 윤 대통령이 미소를 머금고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에게 얼마나 애정과 신뢰를 갖고 있는지 잘 보여 준다.

윤 대통령에게 한 위원장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후배였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2003년. 검찰에서 영광과 시련을 함께하며 두 사람은 사선을 뛰어넘은 전우이자 동지가 됐다. 한 위원장에 대한 윤 대통령의 믿음은 초대 법무부 장관 인선으로 이어졌다. 21년간의 신뢰는 지난달 26일 한 위원장이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맡으며 정점에 달했다. 그러나 김건희 여사 ‘명품 백’ 논란 대응 방식을 놓고 26일 만에 두 사람은 파열음을 냈다. 윤 대통령은 ‘가장 아끼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느냐’는 심정까지 피력했다는 후문이다. 사람을 너무 의심하지 않고 썼던 자신의 잘못인가 싶은 생각마저 했다는 것이다.
박창억 논설위원
김 여사의 명품 백 논란은 여권 전체를 공멸의 위기로 몰아넣을 만큼 악성이다. 시간이 지나면 대충 뭉개고 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국민의힘은 대통령 선거, 지방선거에 연거푸 승리했음에도 세 번이나 비대위를 꾸려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악재에 제대로 대응을 못해 세 번째 비대위 체제마저 무너진다면 그 끝은 낭떠러지일 것이다. 가뜩이나 힘을 합쳐도 어려운 형국인데, 지도부 내분이 불거졌으니 설상가상이다.

이번 논란은 한 위원장 등장 때 최대 과제로 여겨졌던 수직적 당정 관계가 교정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더욱 유감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계속 여당 대표와 불화를 빚었다. 이준석 전 대표를 축출했고, 나경원 전 의원을 압박해 대표 경선 출마를 포기하게 하였다. 지난해 연말에 김기현 전 대표가 물러날 때도 파열음이 나왔다. 이번에 당정 관계를 바라보는 검사 출신 대통령의 비민주적 인식이 거듭 확인된 셈이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정면충돌 양상을 빚은 지 이틀 만인 지난 23일 봉합의 장면을 만들어냈다. 두 사람은 충남 서천 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점검하는 자리에서 일정을 조정하면서까지 대면했고, 서울로 오는 열차 안에서 대화를 했다. 한 위원장은 “대통령에 대해 깊은 존중과 신뢰의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게 변함이 전혀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사태의 근본 원인인 김 여사의 명품 백 수수 논란의 해법을 두고 양측 갈등이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 한 위원장에 대한 윤 대통령의 사퇴 압박은 김 여사 리스크 해법에 대한 이견을 본질로 한다. 윤 대통령은 이번 사건이 기본적으로 ‘몰카 공작’이며 김 여사가 피해자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한 위원장은 ‘국민 눈높이’를 강조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국정과제를 완수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면 된다. 하지만 한 위원장은 선거를 치르기 위해 민심과 여론을 각별히 신경 써야 하는 처지다.

국민의힘에 소방수로 긴급 투입된 한 위원장은 지난 22일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에 자신의 정해진 임기를 강조했다. ‘홀로서기’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한 위원장은 지난달 20일 비대위원장 임명설이 나돌 때도 “누구에게도 맹종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여당 비대위원장은 대통령이 맘대로 바꿀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한 위원장은 더는 윤 대통령의 부하가 아니다.

윤 대통령 임기가 3년이나 남았지만, 한 위원장은 떠오르는 ‘미래 권력’이다. 중도 확장성은 검증 안 됐지만, 보수표 결집에 한 위원장은 대단한 능력을 보여 주고 있다. 환호를 받으며 여권 내 비중도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역사가 말해 주지만,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갈등은 피해 갈 수 없다. 이번 김 여사 논란을 둘러싼 충돌에서 우리는 그 우려를 확인해야 했다. 앞으로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얼마나 더 ‘2인3각 체제’를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

박창억 논설위원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