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타워] 영화입장권 부과금 폐지, 신중한 접근을

엄형준 2024. 1. 24.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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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주로 사업 예산과 관련해서 욕을 정말 많이 먹었습니다. '왜 더 적극적으로 예산 방어를 하지 못했느냐'부터 '무능한 놈이 자리만 지킨다'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욕을 먹었습니다.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은 것 같습니다. 억울한 면이 없지 않지만 한국 영화 진흥을 책임지는 기관의 수장으로서 당연히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번 달 말 퇴임하는 박기용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3일 진행된 '2024 영진위 지원사업 설명회'에서 그간의 고뇌가 담긴 속내를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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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등 다양한 시도 가능한 환경이 K콘텐츠의 힘

“그동안 주로 사업 예산과 관련해서 욕을 정말 많이 먹었습니다. ‘왜 더 적극적으로 예산 방어를 하지 못했느냐’부터 ‘무능한 놈이 자리만 지킨다’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욕을 먹었습니다.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은 것 같습니다. 억울한 면이 없지 않지만 한국 영화 진흥을 책임지는 기관의 수장으로서 당연히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번 달 말 퇴임하는 박기용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3일 진행된 ‘2024 영진위 지원사업 설명회’에서 그간의 고뇌가 담긴 속내를 털어놨다.
엄형준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올해 영진위는 정부의 긴축 기조에 따라 지난해 850억원(사업비 729억4000만원)이던 예산을 올해 589억6600만원(사업비 463억7700만원)으로 크게 줄였다. 박 위원장은 문화체육부로 이관된 투자 출자 사업 예산 250억원을 제외하고 200억원가량 감액돼 전년 대비 (예산이) 38.5%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 여파로 지역 영화 문화 활성화, 한국 영화 창의적 기획 개발, 첨단 영상 특성화 지원이 사라졌고 국제·국내 영화제 지원과 독립영화제작 지원사업은 대폭 축소됐다. 24개 소규모 국내영화제에 6억원, 중소 국제영화제에 7개 5억원, 8개 대형 국제영화제에 39억원 등 지난해 영화제에는 50억원이 지원됐는데, 올해는 국제·국내영화제를 통틀어 10개 내외에 39억원 지원이 전부다. 독립예술영화 지원사업도 자격 요건이 까다로워졌고, 특히 저예산인 단편 부분의 지원 편수는 지난해 46개 작품에서 올해 15편으로 눈에 띄게 줄어든다.

이처럼 영진위가 예산난을 겪고 있는 건 영화 입장권 부과금(티켓 가격의 3%)에 의존하는 영화발전기금(영발기금)이 바닥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영진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당시 지원을 확대하며 이후 기금 회복을 기대했지만, 지금까지도 극장 관객이 늘지 않으면서 기금은 되레 빠르게 줄고 있다. 다행히도 지난해 12월 ‘서울의 봄’이 대흥행 하면서 40억원의 기금이 남았는데, 이것만으로는 영진위 운영이 불가능하다. 결국 정부에 손을 벌린 영진위는 긴축 압박에 예산을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영발기금 고갈은 건실한 운영을 못한 영진위에 책임이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상황을 겪고 한국 영화가 정체에 늪에 빠진 지금, 정부의 영화 진흥 예산 축소가 올바른 방향인지는 의문이 든다.

더 큰 문제는 그간 영발기금 원천이었던 입장권 부과금에 대한 정부의 폐지 검토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91개에 달하는 현행 부담금을 전수 조사해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고, 정부는 극장 입장권 부과금을 사라져야 할 대표적인 ‘그림자 조세’로 거론했다.

그런데 국민이 알았든 몰랐든 이 돈을 안 걷는다고 국민에게 어떤 혜택이 돌아갈 것 같진 않다. 영화 관계자들은 입장권 부과금이 사라진다는 이유로 관람료가 낮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 극장 관계자는 영발기금 수익원이 다각화돼야 한다면서도 대안 없는 부과금 폐지는 신중히 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영화의 기반이 무너지면 장기적으론 티켓값 3% 이상의 손해가 극장에 부메랑이 돼 돌아갈 수 있다.

한국 영화를 비롯한 영상 콘텐츠가 오늘날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건 풀뿌리 독립영화부터 다양한 시도를 하며 인재를 길러낸 결과다. 당장 돈이 되지 않는다고 씨앗 심기를 게을리한다면 몇 년 후 수확할 과실은 없다. 재원 조달이 용이하다는 이유로 부담금을 남발해선 안 된다. 그렇다고 대책 없이 무조건 없애고 줄이는 게 능사는 아니다. 부담금 폐지에 앞서 영화산업 육성을 위한 보완 대책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

엄형준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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