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 근로조건 실질 지배 땐 사용자 해당”
법원 ‘사용자 개념’ 넓게 해석
노란봉투법 거부권 상황 속
대법서 확정 땐 파장 적잖아
택배사인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들의 실질적 사용자이기 때문에 택배노조와 단체교섭할 의무가 있다는 서울고법 행정6-3부(재판장 홍성욱)의 24일 2심 판결은 원청기업에 대한 하청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근래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노사 분쟁 대부분은 하청노조와 원청 간의 갈등이다. 이번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면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이 사용자 책임을 강화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터라 이날 판결은 더욱 의미가 크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택배기사와 CJ대한통운 사이에 직접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없는데도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들과 단체교섭을 해야 하는지 여부였다. CJ대한통운을 비롯한 경영계는 원청기업이 사업 일부를 떼주는 것은 기업의 자유 영역이고, 원청기업이 하청노동자까지 책임질 이유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중앙노동위원회는 2021년 6월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와 단체교섭할 의무가 있는 사용자이고, CJ대한통운이 단체교섭을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했다. CJ대한통운이 불복해 소송을 냈다. 지난해 1월 1심 법원이 중노위 손을 들어줬고, 이날 2심 법원 판단도 같았다.
이날 판결에서 재판부는 노동조합과 단체교섭할 의무를 지는 사용자에는 노동자와 직접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있는 사업주뿐 아니라 “근로조건 등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노동조합법상 사용자 개념의 해석은 법원이 할 수 있다고도 했다. ‘사용자 범위 확대는 입법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CJ대한통운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재판부는 각종 택배터미널이 CJ대한통운의 경제적 이해에 따라 전국적 배송물류 시스템에 편입돼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터미널의 작업환경 개선 등 의제를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와 단체교섭으로 풀어야 한다고 했다.
CJ대한통운은 “기존 대법원 판례에 반한 무리한 법리 해석과 택배 산업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판결로 동의하기 어렵다”며 “면밀하게 검토한 뒤 상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결국 최종 결론은 대법원이 낼 것으로 보인다.
이날 판결이 확정되면 그 의미와 파장은 택배업무 영역에 국한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원청기업에 대한 하청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기준 판례가 될 수 있어서다. 대법원은 같은 쟁점의 현대중공업 사건도 심리 중이다.
이번 판결로 노란봉투법 필요성이 재확인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개정안 2조는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사용자로 본다”고 돼 있다.
이혜리·김혜리·김지환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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