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는데 광주에서 “○○○ 후보입니다”…내 번호는 어떻게 알고?

전경운 기자(jeon@mk.co.kr), 구정근 기자(koo.junggeun@mk.co.kr), 박자경 기자(park.jakyung@mk.co.kr) 2024. 1. 2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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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주범 선거 문자
개인 동의 없이 연락처 수집
단체문자 20명씩 쪼개기 발송
느슨한 공직선거법 빈틈 노려
밤낮으로 무제한 메시지 폭탄
“나만 안 보낼 수 없지 않나”
출마자들 수천만원씩 지출

◆ 제22대 국회의원선거 ◆

4·10 총선이 70여 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주요 정당들이 후보자 여론조사를 시작했다. 이에 따라 지지를 호소하는 문자 메시지가 지역 경계를 넘어 무차별로 뿌려지며 그야말로 ‘홍수’를 이루고 있다. 사진은 서울에 사는 A씨에게 전혀 연고가 없는 지역인 전남의 한 예비후보가 보낸 문자. [한주형 기자]
서울에 사는 A씨(42)는 최근 지역번호 062(광주광역시)로 시작되는 전화번호로 오는 선거운동 문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A씨는 “광주에 연고가 전혀 없는 내 전화번호가 어떻게 광주 정치인에게까지 흘러 들어가게 됐는지 도대체 알 길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창원에 사는 B씨의 휴대폰에서는 지역 예비후보들의 선거운동 문자 알림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울린다. 물론 B씨는 문자를 받아도 내용을 읽어보지 않는다. 그는 “평소에는 지역 현장을 잘 찾지도 않는 정치인들이 선거 기간에만 다급한 듯 지역 주민들에게 기계적인 문자 폭탄을 보내니 오히려 기분만 상한다”고 했다.

22대 총선이 다가오면서 폭주하는 금배지 도전자들의 홍보 문자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선거 철마다 시민들의 짜증을 유발하는 선거운동 문자폭탄은 코로나19 이후 더욱 활성화됐다. 오프라인 선거운동에 비해 시간과 공간 제약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선거캠프 관계자는 “95%의 선거사무소에서 선거운동 문자를 보낸다”며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는 것은 알지만 우리만 그만둘 수는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특히 선거운동 문자가 다른 유세 방식에 비해 비용 대비 유권자 도달 정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점도 후보자들이 유권자들의 피로감 호소에도 불구하고 선거문자를 가장 선호하는 이유다.

다만 발송 문자 수가 많이 늘어나면서 정치인들의 금전적 부담은 갈수록 커지는 형국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통상 문자 전송 비용은 단문 한 건당 8~9원, 장문 20~30원, 이미지 포함 문자 60~70원 수준이다.

영남의 한 지역구 예비후보 선거사무소는 올해 1월 1일부터 23일까지 문자 전송비용을 250만원을 지출했다.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문자를 더 많이 보내는 경향을 고려하면 선거 직전까지 문자 비용은 1000만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창원의 한 예비후보 선거사무소 관계자는 “통상 선거운동 문자에 작게는 수백만원에서 2000만~3000만원은 쓰는 것 같다”며 “본선에 진출할 경우 억 소리 나게 드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예비후보자가 사용한 선거비용은 정부의 보전 대상이 아니다. 현재 후보자들이 지출하고 있는 문자 발신 비용은 모두 자비로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선거문자 폭탄 이슈가 선거철마다 매번 반복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제대로 된 규제가 없는 느슨한 공직선거법 때문이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문자메시지 선거운동은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 다만 자동동보통신(20명 초과 동시 수신) 방식은 예비후보와 후보자를 포함해 8회까지 허용된다. 이를 뒤집어보면 20명 이하 송신은 무한대로 가능한 셈이다. 일종의 법의 사각지대다.

또 공직선거법에는 전화번호의 입수 방법에 관한 규정도 없다. 이때문에 총선 예비후보자나 후보자들의 선거사무소에서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연락처를 수집한다. 한 서울 지역구 국회의원의 보좌관은 “지역 유지나 지인들을 통해 얻거나 방명록, 전·현 시·구의원 등을 통해 주로 번호를 수집한다”며 “아무래도 이들이 번호를 모아주는 과정에서 당사자의 동의를 얻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이같은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부 있었지만 대다수 의원들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철저하게 이를 외면했다.

문자폭탄 공해를 막기 위한 법안은 이미 지난 20대 국회에서 이상민 현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바 있다. 법안에는 개인정보보호법이 예비후보자나 후보자의 불법적인 개인정보 수집 행위의 실제 단속·처벌에 적용하는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선거법상에 최소한의 개인정보 수집 근거와 위반 시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처벌 규정이 포함됐다.

또한 전송 방법에 관계없이 예비후보자와 후보자 모두 전송 횟수를 무조건 5회로 제한해 쪼개기 편법 전송을 불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국회에서 단 한 번의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20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처분됐다.

21대 국회에서는 야간부터 새벽시간대에는 문자 전송을 금지하는 선거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현행법은 전화를 통한 선거운동에 대해 오후 11시부터 오전 6시까지 금지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문자는 여전히 시간제한이 없다. 이에 선거전이 과열됐을 때 후보자가 늦은 밤에 문자를 보내는 사례들이 발생하면서 법개정 시도가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이 법안 역시 국회의원들의 무관심 속에 곧 폐기처분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개인정보 제공 동의 절차를 활용해 정당 등에서 연락처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유권자 정보를 당사자 동의를 받고 제공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연락처 수집 활동을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다른 대안으로 선거기간 동안 안심번호 도입을 통해 지역의 유권자 명부를 각 후보들에게 제공하는 방법도 거론된다.

선거운동 기간 내에 제한적으로 해당 지역의 전체 유권자 연락처를 안심번호로 출마 후보들에게 제공하되 보내는 시간과 횟수를 제한하면 지금처럼 유권자의 거주지역과 상관없이 쏟아지는 폭탄 문자 문제 등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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