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오늘] 현대미술관에 기생하는 근대미술

기자 2024. 1. 24. 20:2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웬만한 선진국과 달리 한국엔 근대미술관이 없다. 1952년 개관한 일본 도쿄의 국립근대미술관을 비롯해 19세기 작품을 집중 소장한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반백년 이상 20세기 유럽의 미술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 파리 시립 근대미술관, 미국이 자랑하는 뉴욕의 근대미술관과 같은 독립적인 근대미술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술관의 역사를 보면 대부분 근대로부터 현대가 나왔다. 영국의 현대미술관인 테이트모던은 근대미술관인 테이트브리튼에서 분리됨으로써 근·현대를 잇는 계보를 완성했고, 일본 현대미술관을 잉태한 건 도쿄와 교토의 근대미술관이었다. 그러나 우린 거꾸로 근대를 건너뛰고 현대부터 출발했다. 바로 1969년 총독부미술관 건물이었던 경복궁 별관에서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이다.

근대보다 현대가 앞선 배경에는 식민과 전쟁, 분단이라는 혼란 속에서 빚어진 근대미술의 이념 및 양식에 관한 굴절, 근·현대라는 시대 구분에 대한 논의 부재 등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주관한 미술공모전인 조선미술전람회 후신) 개최 목적이 가장 컸다. 한마디로 정체성에 대한 고민 없는 관료들의 무지와 졸속이 낳은 결과였던 것이다.

가치 유효한 근대미술 작가가 풍부하고, 그들로부터 비롯된 변화와 혁신의 시대는 분명한 실체였음에도 근대가 누락된 상황은 현재진행형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 한국의 근대미술을 맡고 있지만 속은 상당히 기형적이다. 독자적인 발굴, 조사 및 소장 기능이 없다. 예속을 벗어난 법적·제도적 위상 또한 갖춰지지 않았다. 현대미술(동시대미술)을 다루는 미술관에 근대미술이 ‘기생’하는 형국을 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미술계는 그동안 별도의 국립근대미술관 설립을 촉구하거나 국립현대미술관 명칭을 변경하자고 말해왔다. 미술평론가 이경성은 1955년 조선일보에 기고한 ‘국립근대미술관 설치’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정부에 의한 근대미술관 창설을 제안했다. 제1대 서울시립미술관장을 지낸 유준상은 과거 국립현대미술관 명칭을 근대미술관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성과는 없었다. 1990년대 초 정부는 미술인들의 의견을 수렴해 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을 용산 미8군 기지 일대로 옮긴 후 그 자리를 국립근대미술관으로 사용할 계획을 밝혔으나 유야무야됐고, 김대중 정권 시절에도 국립근대미술관 설립을 추진했지만 끝내 취소됐다.

그럼에도 미술계는 국립근대미술관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피력했다. 2007년에 이어 2008년엔 덕수궁 석조전 서·동관을 합친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도모했다. 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세워진 2013년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이 ‘이건희 컬렉션’을 기증한 2021년 당시에도 미술계는 근대미술관이 먼저라는 주문을 했다. 하지만 역시 결과는 좋지 못했다.

최근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요구하는 미술인들의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지난 19일 미술사학자 최열을 포함해 정준모, 최태만, 김복기, 김영동, 조은정 등 전문가들과 지자체 관계자들은 ‘2024 국립근대미술관 설립 추진을 위한 전국포럼’을 개최하며 근대미술관 설립 당위성과 방향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펼쳤다. 향후 전 국민 근대미술작품 기증의향서 제출 운동도 전개할 계획이다.

눈여겨 볼 점은 국립근대미술관을 만들어 역사의 ‘공백’을 채우고 국민국가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는 미술인들의 염원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데 있다. 정부는 미술계 열망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