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백인 ‘미스 일본’ 소동

김태훈 논설위원 2024. 1. 2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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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훈

프랑스 축구는 오랜 기간 유럽의 2류였다. 지역 예선도 못 넘곤 했다. 1998년 월드컵 대표팀 감독을 맡은 에메 자케가 “이래야 우승한다”며 내놓은 대표 선수 명단은 충격적이었다. 22명 중 12명이 이민자 후손이거나 이중국적자였고 상당수는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이었다. 프랑스가 이민에 너그럽다지만 국민 80%가 백인이다. 당장 “백인 위주로 대표팀을 다시 꾸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자케는 거절했고 그 대회에서 처음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국가 대표는 피를 나눈 동포여야 한다는 오랜 믿음이 깨졌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때는 한발 더 나갔다. 국가 대표 가운데 14명이 음바페·움티티·망당다 같은 이름을 쓰는 아프리카 출신 흑인이었다. 아르헨티나와 맞붙은 2022년 대회 결승전에서 프랑스팀은 거의 흑인이었다. 프랑스만큼은 아니어도 피부색과 핏줄이 다른 외국인을 국가 대표로 기용하는 사례가 확산되고 있다. 우리도 국적법 개정을 통해 10년 전 귀화한 백인 아이스하키 국가 대표가 탄생하며 ‘푸른 눈 태극 전사’ 시대를 열었다.

▶그런데 미인을 뽑아 국제 대회에 내보내는 미인 대회만큼은 이 흐름에서 벗어나 있었다. 실력을 닦아 국가 대표가 되는 스포츠 선수와 달리 미인 대회는 거의 순전히 외모로 평가한다. 그러니 혈통이 국가 대표의 중요한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와 핏줄이 다른 백인이나 흑인이 미스 코리아로 뽑히는 것을 상상하기 힘든 이치다. 다인종 국가인 미국조차 흑인 미스 아메리카는 1980년대 들어 처음 나왔다.

▶지난해 미스 짐바브웨 우승자는 부모가 영국에서 이주해 온 백인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어떻게 백인을 대표 미녀로 뽑느냐”는 비난이 일었다. 짐바브웨엔 백인 국민도 많이 있지만 흑인이 다수다. 우승자는 “나는 짐바브웨에서 나고 자란 짐바브웨 국민”이라고 반박했다. 2021년 미스 아일랜드 대회에선 정반대로 남아공 출신 흑인이 왕관을 썼다. 미인 대회조차 혈통의 중요성은 점점 옅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일본에 그 변화가 상륙했다. 22일 푸른 눈의 미스 일본이 탄생했다. 우승자는 다섯 살 때 일본으로 이주한 우크라이나인이다. 동양인 국가에서 서양인이 미인 국가 대표가 된 것이다. 일본에선 “이게 뭐냐”는 논란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승자는 “20년 넘게 일본에서 살았는데도 피부색 때문에 차별받았다”며 “이제야 진짜 일본인이 된 느낌”이라고 했다. 이 쪽 말도 맞는 것 같고, 저쪽 말도 맞는 것 같다. 백인 미스 코리아가 나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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