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택배노동자 원청 교섭’ 힘 실은 항소심, 노동권 지평 넓혔다
택배노동조합의 단체교섭을 거부해온 CJ대한통운이 ‘부당노동행위’라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24일 2심에서도 패소했다. 서울고등법원은 CJ대한통운이 실질적인 사용자로서 하청기업 택배노동자들과의 단체교섭에 응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원·하청이 늘어나는 산업구조에서 사회적 시대상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매우 상식적이고 온당하다. 또 하청노조가 원청기업에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고 한 항소심 첫 판결이어서 노동권의 지평을 한층 넓혔다.
노동조합법 제2조 2항의 ‘사용자’ 규정을 놓고 CJ대한통운은 집배점 택배기사들과 직접 근로계약 관계를 맺지 않아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이렇게 원청 택배사는 사업 이익은 맘껏 누리면서 노동자에 대한 법적 책임을 회피해온 것이다. 당초 지방노동위는 CJ대한통운 입장에 손을 들어줬으나, 중앙노동위는 재심 판정에서 부당노동행위가 맞다고 뒤집었다. 노동계·산업계의 뜨거운 관심이 1·2심 판결에 모아진 이유다. 택배노동자들은 2심에서도 단체교섭권을 확인했다. 사실심이 끝난 마당에 CJ대한통운이 대법원에 상고해 또 시간을 끄는 것은 대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저버리는 행위다. 실질사용자로서 택배노조와 직접 단체교섭에 나서야 한다.
원·하청 구조가 만연한 사업장에서 ‘사용자’ 해석을 놓고 매번 법원 판결을 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해 11월 초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한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안)이 윤석열 정부에서 그대로 공포됐다면 이런 논란은 애당초 생기지도 않았다.
법 개정안 2조는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사용자로 본다”고 규정해 놓았다. 이 법안은 지난해 12월 초 윤석열 대통령이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하고 국회 재투표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하청노동자 보호 필요성을 무시한 윤석열 정부의 재의요구권 행사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판결에서 보듯 법원은 근로계약 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단체교섭권을 부정하면 하청노동자들이 노동3권을 제대로 누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이번 판결 의미를 무겁게 새겨, 조속히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내놓길 기대한다. 택배를 비롯한 여러 사업장은 하청노동자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성실하게 단체교섭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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