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순의 느린 걸음] 단통법 폐지, 후속대책이 먼저다

이구순 2024. 1. 24.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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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순 디지털본부장
정부가 단통법(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을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국민의 스마트폰 구입비용을 줄여주기 위해서란다. 이동통신 회사들이 스마트폰을 싸게 팔기 위한 보조금 경쟁을 하지 못하도록 단통법이 막고 있어 국민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게 정부의 인식인 듯하다. 틀린 인식은 아니다.

2014년 단통법을 만들 당시 현장을 취재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경제·정보기술(IT)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단통법은 한시적으로만 유지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놨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민간기업인 이동통신사의 마케팅 경쟁을 법률로 제한하면 시장이 침체되고 소비자 편익이 줄어든다는 원칙 때문이다. 그럼에도 단통법이 만들어진 데는 국민 대다수의 박탈감을 해소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당시 이동통신 3사의 휴대폰 보조금 총액은 연간 약 3조원이었다. 국내에서 1년에 700만명 정도가 휴대폰을 교체하는데, 이 중 100만원쯤 되는 최대 보조금을 받는 사람은 100만명 남짓으로 정보에 밝은 사람들이었다. 휴대폰 교체수요의 85%는 쥐꼬리 보조금을 받거나 아예 못 받았다. 정보에 어두운 어르신이나 정보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인터넷과 언론에서는 '100만원짜리 고가 스마트폰이 버스폰(스마트폰 값이 버스비와 같다는 의미)이 됐다'거나, '공짜폰이 극성을 부린다'는 소식들이 쏟아졌지만 정작 본인은 보조금을 한푼도 받지 못한 85% 이동통신 소비자의 박탈감이 결국 단통법을 만들 수밖에 없게 했다. 100만명만 100만원씩 받도록 할 것이냐, 700만명이 25만원씩 받도록 할 것이냐 중 당시 정부는 후자를 선택한 셈이다.

'한시적' 꼬리표가 10년이나 달려 있었으니 윤석열 정부가 단통법의 필요성이 다했다고 판단하는 것도 마땅하다. 그런데 단통법만 달랑 없애는 것은 위험하다. 단통법이 필요했던 이유, 없어지면 개선될 국민의 편익, 시장에 미칠 부작용 같은 정책의 영향을 촘촘히 살피고 대책을 먼저 세웠으면 한다.

우선 단통법을 폐지해 국민 통신 소비비용 중 어떤 부분을 줄이려 하는가에 대해 정부가 스스로 묻고 답해 봤으면 한다. 통신비용을 비용 주체에 따라 나누면 단말기 구입비와 통신서비스 이용료, 부가서비스 이용료로 나눌 수 있다. 정부는 어떤 부분을 경감하려 하는가? 단말기 구입비는 애플, 삼성전자 같은 단말기 업체를 째려봐야 한다. 통신서비스 이용료는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같은 이동통신 회사들을 압박해야 한다. 부가서비스 이용료는 넷플릭스, 유튜브 같은 회사들이 대표적으로 돈을 받아간다. 정부가 단통법 하나 없애 세가지 항목 모두를 줄이겠다는 욕심을 부리는 것은 아닐 거다. 단통법을 폐지해 어떤 효과를 얻고자 하는 것인지, 그 효과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지 국민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줬으면 한다.

두번째, 10년 전처럼 특정 소비자의 보조금 독식을 막을 대안을 먼저 세워야 한다. 적어도 단통법이 유지된 지난 10년간 나는 언제라도 어떤 대리점에 가더라도 다른 사람과 동일한 보조금을 받는다는 신뢰가 있었다. 남보다 더 받는 것은 안 바라지만, 남보다 덜 받게 되는 배아픔은 못 참을 것이다.

세번째, 지난해 통신 카르텔이라며 3사 체제의 통신시장 비판으로 인해 진행되고 있는 제4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은 어떻게 진행할지 미리 알려줘야 한다. 단통법 폐지로 보조금 무한경쟁이 이뤄지면 자금력이 부족한 제4 이동통신사업자는 경쟁조차 못하고 고사당할 게 뻔하다. 이를 방지할 대책을 보여줘야 자본시장이 움직일 것이고, 새 사업자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책은 그 자체로 옳고 그른 것이 아니다. 정부가 철학에 맞춰 선택하는 것이다. 단통법을 유지하거나 폐지하거나는 윤석열 정부가 선택할 정책의 방향이다. 그러나 결정된 정책으로 인해 국민의 삶과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예측하고,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계획을 촘촘히 세우는 것, 그 계획을 국민에게 납득시키는 것은 정부의 의무다.

cafe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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