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처법 확대적용 유예 한목소리] "이대로면 동네빵집도 처벌"… 중처법 유예따라 中企 존폐달려

박은희 2024. 1. 2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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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시행… 정부·경제단체 등 읍소
"영세기업 부담커져 폐업·실직 초래"
중소기업 87% "법 의무 준수 어렵다"
이정식(가운데) 고용노동부 장관, 박상우(왼쪽) 국토교통부 장관,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추가 유예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대로면 사흘 뒤인 오는 27일부터 50인 미만 중소기업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다. 동네 빵집이나 중국집, 커피숍 등을 운영하는 영세 사업자들이 처벌 대상에 다수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영세 건설업체나 자동차 부품 등을 만드는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 규모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법이 제정된 탓에, 50인 미만 기업 10곳 중 9곳은 중대재해법 대응을 준비하지 못한 상황이다. 대다수의 국내 50인 미만 사업장은 생산부터 경영·기획·영업·안전관리 등을 사장이 혼자 도맡고 있다. 경기침체에 금리 부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까지 떠안고 있는 대다수의 영세기업들은 안전관리 담당자까지 고용할 여력이 없다.

정부 여당과 경제계는 24일에도 유예기간 연장을 위한 법 개정을 거듭 촉구했다. 하지만 안전 사각지대에 있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생명권도 중요한 만큼 법 시행을 더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노동계와 야당의 주장도 만만찮다.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는 가운데, 이대로 법이 시행되면 수많은 전과자와 실업자들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우려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법이 확대 시행되면 상시 근로자가 5명 이상인 동네 음식점이나 빵집도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 된다"며 유예를 호소했다.

이 장관은 "동네 개인 사업주가 대기업도 어려워하는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인력과 예산을 확보하고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며 "현장에서 영세·중소기업은 대표가 생산부터 기획, 영업, 안전관리까지 모든 역할을 담당하기에 중대재해로 대표가 처벌받으면 경영이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고 한다"고 전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기업 1053곳을 대상으로 중대재해법 이행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94%는 아직 법 적용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적용 시한인 오는 27일까지 의무 준수가 어렵다고 답한 기업 비율도 87%에 달했다.

2022년 1월 27일 시행된 중대재해법은 50인 이상 사업장(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에서 노동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 등을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상시 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과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건설 현장에는 유예기간을 거쳐 27일부터 적용될 예정인데 정부와 대통령실, 국민의힘은 유예기간을 2년 더 연장하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이날 국회를 찾아 여야 원내대표에게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법 적용 유예를 호소하는 중소기업계의 입장을 전달했다. 그는 "고용이 있어야 노동이 있는데, 한 쪽(국민의힘)은 기업을, 다른 한 쪽(더불어민주당)은 노동계를 의식하는 상황이어서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도 성명을 내고 "건설업계는 최근 고금리, 자재·인건비 급등에 따른 공사비 상승,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 등에 따라 2중, 3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며 "이런 가운데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대표이사가 처벌받게 돼 기업의 정상적 경영이 어려워 폐업으로 이어지고 근로자 또한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은 전날 국회 소통관에서 유예 촉구 공동성명을 내놓았다. 이들 단체는 "중대재해법 근본 목적은 기업경영인 처벌에 있지 않고, 산재 예방을 통한 중대재해 감축에 있다"며 "법률의 즉각 시행으로 처벌을 강화하는 것보다 유예기간을 통해 보다 많은 정부지원과 사업장 스스로 개선방안을 찾도록 논의하는 것이 재해예방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향"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영세 중소기업의 여건이 열악해 준비가 아직 부족하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며 "개정안은 재해 예방보다는 범법자만 양산해 기업의 존속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현장의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고 유예 법 개정안을 신속하게 처리해줄 것을 국회에 당부했다.

경제계·정부·국민의힘은 이대로 중대재해법이 시행되면 사업장 폐업과 근로자 실직 등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50인 미만 기업 83만7000곳이 안정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면 피해가 그곳에서 일하는 근로자 800만명의 고용과 일자리에 고스란히 미칠 것이라는 우려다.

더불어민주당은 산업안전보건청의 연내 설치 요구가 수용돼야만 유예 여부를 논의해보겠다는 입장을 지키고 있다. 노동계는 "노동자 권리와 안전을 가장 앞장서서 보호해야 하는 고용부가 본분을 망각하고, 노동 현장의 절박한 호소를 외면한 채 경제단체만을 대변한다"며 중대재해법 확대 적용 유예에 반대했다.

박은희기자 eh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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