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이견 조율할 산경장 '개점휴업'···금융위·금감원 역할도 뒤바뀌어
옛 서별관 벗어나 협의체 꾸렸지만
1년 넘도록 회의없이 기재부 뒷짐
큰그림 그려야할 금융위 발빼고
금감원이 전면 나서는 모습 반복
"총선앞 눈치보기 대신 적극 대응을"
문재인 정부 초대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던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2018년 산업 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산경장)를 통해 한국GM과 STX조선해양·성동조선해양 문제 등을 처리했다. 한국GM에 7억 5000만 달러(약 8048억 원)를 투입하면서 ‘먹튀’를 막기 위한 장치를 마련했고 STX는 자구계획안에 맞춰 처리 방침을 정했다. 성동조선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택했다. 당시 결정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기재부가 중심을 잡고 공식 협의체인 산경장을 통해 구조조정을 해나갔다는 점은 높이 쳐줄 만하다는 게 관가의 시각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구조조정 컨트롤타워의 역할이 아쉽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산경장만 해도 2022년 12월 추경호 전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우조선해양 정상화를 위한 전략적 투자 유치 진행 상황을 논의한 것이 마지막이다. 1년 넘게 열리지 않고 있는 셈이다. 산경장 회의는 윤석열 정부 들어 두 번만 열렸다.
당초 산경장은 2016년 6월 조선·해운사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신설됐다. 이전까지는 청와대 관계자와 금융위원장, 금감원장, 한국은행 총재가 참석하는 서별관 회의를 진행했는데 법적 근거가 없는 밀실회의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 때문에 공식 협의체인 산경장으로 바뀌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역시 산경장 출범 당시 기재부 1차관으로서 예산·세제 지원을 담당하는 경쟁력강화지원 분과를 맡은 바 있다.
산경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구조조정을 1차로 책임지는 금융위는 뒤로 빠져 있다. 교체설이 있던 김주현 위원장이 유임된 후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는 가운데 검찰 출신 이복현 금감원장이 연일 초강경 발언을 이어가면서 구조조정과 금융정책 전반을 이끌어가는 모양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 금융위와 금감원 역할이 역전돼 있는 상태”라며 “금융위는 큰 그림을 그리고 금감원은 이를 이행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거꾸로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금융위가 이슈를 끌고 가는 힘이 많이 약하다”며 “구조조정 프로세스가 보다 순탄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조금은 더 강한 힘을 가진 컨트롤타워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HMM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 HMM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과정이 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파열음을 내면서 공회전을 거듭했음에도 제대로 된 이견 조율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대통령실이 나서서 HMM과 해진공 등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일까지 벌어졌다. 지금도 매각 측과 하림 간의 이견으로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정책을 원활히 조정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인수합병(M&A) 업계의 시각이다. 투자은행(IB) 업계의 고위 관계자는 “HMM 매각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는 산은과 산업 논리를 앞세워 이를 방어하는 해양진흥공사가 맞부딪히면서 우협 선정이 상당 기간 늦어질 정도로 문제가 많았다”며 “지금도 금융위와 산은은 시장 논리에 기울어져 있고 해수부는 공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데 누구 하나 명확히 정리해주는 곳이 없다”고 밝혔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증권사들을 향해 강도 높은 자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부실 사업장의 빠른 구조조정을 재차 주문하고 있지만 태영건설 워크아웃 이후 지금까지 별다른 진척이 없다. 전국 3000여 개 PF 사업장 가운데 실제 대주단을 구성하고 구조조정에 들어간 현장은 지난해 8월 말 기준 187개에 불과하다. 상당수 PF 사업장은 시행사의 상황 호전을 기대하면서 만기만 연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구조조정 컨트롤타워를 분명히 하고 산경장 같은 공식 회의체를 통해 구조조정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 기재부와 한국은행·금융위·금감원 수장이 만나 비공개로 정책 현안을 논의하는 이른바 ‘F4(Finance4)회의’가 있지만 공식 협의체가 아닌 한계가 있다. ‘F4’ 회의는 속기록도 남기지 않는다.
정부 안팎에서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가 예상과 달리 올 3분기로 더 늦어질 수 있는 만큼 구조조정을 미루고 금리 인하만 기다리기보다는 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금융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공직자들이 크게 다치는 관행이 형성돼 있다”며 “총선을 앞두고 몸 사리기가 더 심한데 공무원들이 소신 있게 판단할 수 있도록 국회에서 관련 법률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우영탁 기자 tak@sedaily.com세종=심우일 기자 vita@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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