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AI 반도체 기업의 도전…"올해 글로벌 시장서 성과낸다" [긱스]
리벨리온, 해외 데이터센터 공략
퓨리오사AI, 2세대 AI 반도체 생산
딥엑스, 고객사 40곳과 제품 검증
하이퍼엑셀, LLM 반도체 개발
2년내 기업 성패…시장 검증 앞둬
기술력 더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인공지능(AI) 반도체는 글로벌 정보기술(IT)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분야로 꼽힌다. 생성형 AI를 필두로 다양한 AI 서비스 수요가 급증한 영향이다. 미국의 엔비디아가 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A100과 H100을 앞세운 엔비디아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90%에 달한다. 국내에서는 스타트업이 AI 반도체산업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은 올해를 ‘수확기’라고 얘기한다. 그동안 투입한 노력의 결실이 올해부터 가시화된다는 설명이다.
“올해는 해외에서 성과 기대”
KT의 투자를 받은 리벨리온은 올해부터 본격적인 상용화 작업에 들어간다. 이 회사는 지난해 AI 반도체 기술력 검증 테스트 엠엘퍼프(MLPerf)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성적표를 받았다. 리벨리온의 AI 반도체 아톰은 컴퓨터 비전의 처리 속도 면에서 엔비디아 제품(GPU T4)보다 3.4배 빨랐다. 언어모델(BERT) 분야에서도 퀄컴과 엔비디아 제품보다 1.4~2배 이상 성능이 앞섰다.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는 “지난해 인정받은 글로벌 수준의 제품 기술력과 KT 클라우드 데이터 센터에 상용 제품을 납품한 경험, 정부의 ‘K-클라우드 프로젝트’ 참여 등을 바탕으로 해외 데이터 센터를 공략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리벨리온은 대규모언어모델(LLM)에 특화된 차세대 반도체 ‘리벨’을 삼성전자와 공동 개발해 올해 내놓을 계획이다. 박 대표는 “리벨리온은 첫째도, 둘째도 글로벌 시장이 목표”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AI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해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의 실력을 증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AI 반도체 스타트업 퓨리오사AI는 지난해 1세대 AI 반도체 ‘워보이’ 생산에 성공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AI 바우처 지원 사업 선정 기업의 절반(15곳)이 워보이 NPU(신경망반도체)를 사용하고 있다. 정부의 고성능 컴퓨팅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100여 개 업체 중 60곳도 워보이를 선택했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데이터센터에서도 워보이가 쓰인다.
퓨리오사AI는 올해 2세대 AI 반도체인 ‘레니게이드’의 생산에 집중할 예정이다. 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는 “추론 부문의 NPU 중 최초로 고대역폭메모리(HBM3)를 사용해 챗GPT 수준의 LLM 구동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퓨리오사AI는 상반기에 레니게이드를 양산하고, 하반기에는 국내 주요 고객사의 평가와 검증을 받을 예정이다. 백 대표는 “퓨리오사AI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서버 전용 추론 부문 AI 반도체를 계속 개발하고 공급하는 반도체 기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양한 반도체 스타트업의 도전
딥엑스도 올해 AI 반도체 상용 제품을 고객사에 본격적으로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딥엑스는 전자 기기에서 사용하는 일명 온디바이스 AI 반도체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딥엑스가 제조한 DX-V1, DX-M1 등 다양한 AI 반도체는 모두 객체 인식, 음성 인식, 이미지 분류, 화질 개선 등의 AI 알고리즘 연산 처리를 지원한다. 딥엑스의 반도체는 AI가 필요한 서비스의 대규모 연산을 빠른 속도에 적은 전력 소모로 처리하는 것이 강점이다.
현재 이 회사는 컴퓨터 비전용 AI 반도체에 집중하고 있다. 김녹원 딥엑스 대표는 “딥엑스의 제품으로 만든 AI 솔루션은 로봇, 모빌리티, 영상 보안, 서버 등의 기업 40여 곳에서 사전 검증 테스트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 초 150개 이상의 고객사와 학계에도 관련 제품을 제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딥엑스는 이달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를 시작으로 ‘MWC 바르셀로나’, ‘시큐테크 타이베이’, 미국 보안 전시회(ISC West), 중국 선전 하이테크 전시회 등에도 참여해 고객사 확보에 나선다.
망고부스트, 하이퍼엑셀 등 지난해 대규모 투자를 받은 초기 반도체 스타트업도 올해 한 단계 도약을 노린다. 망고부스트는 DPU(데이터처리가속기)를 개발하는 반도체 기업이다. DPU는 데이터센터에서 대규모 데이터의 효율적인 처리를 돕는 반도체를 뜻한다. 망고부스트는 기술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시리즈A(사업화 단계)에서 5500만달러(약 714억원)를 유치했다. 작년에 미국으로 본사를 옮겼고 올해에는 해외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할 계획이다.
하이퍼엑셀은 최근 AI 서비스 수요 급증에 따라 늘어난 서버 비용을 줄이는 반도체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하이퍼엑셀은 지난해 AI 맞춤형 반도체인 하이퍼엑셀 오리온을 개발했다. 챗GPT처럼 AI 연산에 비용이 많이 드는 LLM에 최적화돼 있다. 메모리 대역폭 사용을 극대화해 비용 효율성을 높여준다. 하이퍼엑셀은 지난해 60억원 규모 시드(초기) 투자를 유치했다.
엔비디아 대항마 될까
업계에서는 국내 AI 반도체 스타트업의 성패가 1~2년 안에 갈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해당 업체들이 제조한 반도체의 시험 결과는 대부분 엔비디아 등 글로벌 테크 기업을 앞선다. 하지만 엄중한 시장의 검증이 남아 있다. 상용 제품을 내놓은 곳도 있지만, 고객사가 투자사나 정부라는 한계가 있다.
기술 수준을 더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도체 전문 벤처캐피털(VC)의 한 심사역은 “일부 기업은 해외 업체보다 기술이 뛰어나다고 주장하지만 자세히 보면 모호한 구석이 있다”며 “전체 10개 항목 중 1개 정도는 뛰어날 수 있지만 종합 점수로 보면 글로벌 상위권 기업과의 격차가 여전하다”고 설명했다.
다른 빅테크 기업과의 경쟁도 넘어야 할 ‘허들’로 꼽힌다.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 오픈AI 등도 AI 반도체를 직접 개발하기로 했다. 구글과 인텔 역시 관련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네이버가 삼성전자와 AI 반도체를 만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 고객사를 확보한 AI 반도체 스타트업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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