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기시감? 총선 후 윤석열·한동훈은 제 갈 길로?[여의도앨리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갈등 국면에서 ‘일단 멈춤’을 택했다. 한 위원장은 지난 23일 윤 대통령과 충남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함께 방문한 뒤 ‘갈등이 봉합된 것이냐’는 질문에 “저는 대통령님에 대해서 깊은 존중과 신뢰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게 변함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24일에는 갈등 원인이 된 ‘김건희 여사 리스크’ 대응에 관한 질문에 “제 생각은 이미 충분히 말씀드렸다” “지금까지 말씀드려온 것에 대해 더 말하지 않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하지만 여권에서 두 사람의 갈등이 완전히 해소됐다는 시각은 많지 않다. 임박한 총선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임시 봉합한 것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현재 권력’인 윤 대통령과 보수진영 차기 대선 선두주자인 ‘미래 권력’ 한 위원장이 언제든 다시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안에선 총선 공천 과정에서 대통령실·정부 출신 인사들을 당에 심으려는 윤 대통령과 원활한 대선 도전을 위한 당내 독자세력 확장을 염두에 둔 한 위원장 간 알력 다툼으로 2차전이 벌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더 큰 충돌은 총선 후에 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총선 승리라는 공통 목표가 있어서 갈등이 봉합됐지만 선거가 끝나면 노골적으로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를 전후한 윤석열·이준석 갈등이 대표적 선례다. 이 때문에 ‘윤·한 갈등’을 두고 “기시감이 든다”는 반응도 나온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지난 22일 시사인 유튜브에 출연해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한 위원장을) 물러나게 할 순 없으니 외견상으로는 윤 대통령이 물러서는 것처럼 할 것”이라며 “하지만 이준석의 선례를 보라. 선거 끝나면 해코지하러 달려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한 위원장을 향해 “원래 (선거에서) 이겨도 쫓아내는 게 이 당(국민의힘)인데, 지금 선거(총선)는 이기기도 쉽지 않다. 지금 상황에서는 무조건 36계가 답”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에 공헌했음에도 이후 윤 대통령에 의해 당 대표직에서 쫓겨났다는 것이다.
2022년 3월 대선을 앞두고 각각 국민의힘 대표와 대선후보였던 이준석·윤석열은 계속 파열음을 냈다. 이 대표와 윤 후보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선거대책위원회 내 지위와 역할, 선대위 인선 등을 두고 이견을 보였다. 거기에 이른바 ‘윤핵관(윤 후보 측 핵심 관계자)’ 논란이 불거지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이 대표는 잠행을 택했다. 그리곤 나흘째 날인 2021년 12월3일 이 대표와 윤 후보는 이른바 ‘울산 회동’으로 극적으로 갈등을 봉합했다. 둘은 서로 끌어안는 모습을 연출하며 “한 치 흔들림 없이 일체가 되자”고 선언했다.
일단락되는 줄 알았던 갈등은 그 후로도 계속됐다. 같은 달 21일 이 대표는 상임공동선대위원장직을 사퇴했다. 조수진 당시 최고위원의 “나는 후보 말만 듣는다”는 발언이 발단이었지만, 선대위 구성과 의사결정 체계에 대한 이 대표와 윤 후보 간 갈등이 본질이었다. 김종인 당시 총괄선대위원장도 선대위 합류 33일 만인 2022년 1월5일 같은 이유로 윤 후보와 결별했다. 이 대표와 윤 후보는 ‘이철규 전략기획부총장 인선안’을 두고도 충돌했다.
당시 상황을 두고 이 대표는 “이준석이 울산 회동이나 이런 데서 1차전, 2차전은 승리를 한 것처럼 보였지만 저 사람(윤 대통령)은 일기장에 써 놓는다. 저는 (대선에서) 지면 난리 칠 것 같았는데, 이기고 저러는 사람 처음 봤다”며 “‘이준석 때문에 0.7%포인트밖에 못 이겼다’는 말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당장은 총선 때문에 윤 대통령이 물러서고 한 위원장이 승리한 듯 보이지만, 총선이 끝나면 윤 대통령이 이번 일을 잊지 않고 한 위원장 축출에 나설 거란 뜻이다. 한 국민의힘 의원도 통화에서 “대선 당시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이) 정말 마음을 풀었나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윤 대통령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라며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서로가 서로를 죽이지 못하니까 잠시 휴전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번 일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간 윤 대통령 심기를 거슬렀던 인사들이 모두 ‘제압당한’ 사실을 보면 이런 주장에 힘이 실린다. 지난해 3·8 전당대회 때도 윤 대통령은 안철수·유승민·나경원 등을 모조리 눌러 앉혔다. 심지어 한 위원장 취임 직전엔 전당대회에서 자신이 민 김기현 당시 대표마저도 당 대표직에서 사실상 물러나게 했다.
이들과 한 위원장은 경우가 다르다는 반박도 나온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검찰에서 20년간 이어진 선후배 관계여서 인간적 신뢰가 남다르다는 것이다. 한 위원장이 보수 진영 내에서 현재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윤 대통령이 다른 인사들처럼 쉽게 쳐낼 수 없을 거란 전망도 제기된다. 특히 총선 후면 윤 대통령 임기가 중반에 접어드는 만큼 정권 초반과는 달리 윤 대통령 의지대로 여당을 좌지우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미 이번 갈등 사태에서도 윤석열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이 사실상 한 위원장 편을 들며 침묵했다. 유력한 미래권력에게 찍히지 않으려 한 것이다.
“무조건 36계가 답”이라는 이 대표의 충고가 적절했는지는 총선 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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