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계약서’ 도입했지만... 공사비 검증, 믿고 맡길 곳 없다
현실은 “행정력·인력·전문성 부족”
“민간에 위탁” 대안도
조합과 시공사간 공사비 갈등을 예방하기 위한 취지로 정부가 표준공사비 계약서를 마련했지만, 실효성을 거두려면 전문기관의 ‘공사비 검증’ 역량도 한층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사비 세부 내역서 등이 공개되더라도 양측이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결국 객관성·신뢰성을 담보한 ‘검증 결과’가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2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표준계약서가 도입되면 시공사는 공사비 세부 산출내역서를 계약서에 첨부해 조합측에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산출내역서 자체의 적정성은 조합이 알아서 판단해야 한다. 내역서 내용이 복잡하고 전문적이라는 점에서 계약 과정에서 조합측에 자칫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이에 전문기관에 공사비 검증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부동산원에 접수된 공사비 검증 의뢰 건수는 최근 3년간 급증했다. 2019년 3건, 2020년 13건에 불과했던 신청 건수는 2021년 22건으로 크게 증가했고 2022년 32건, 2023년 30건으로 나타났다.
고금리·고물가로 인해 공사비 갈등 이슈가 증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양측이 이미 갈등의 골이 깊어진 상태에서 검증을 의뢰한다는 점에서,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현재 진행형’ 이슈는 보다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공사비 검증을 수행하는 전문기관은 한국부동산원이 유일하다. 도시정비법상 검증기관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도 할 수 있지만 LH에는 별도의 업무팀이 없다. SH는 서울시 정책에 따라 작년 9월 공사비 검증 TF를 신설했다. SH관계자는 “내달 중 첫 시범사업 대상지를 선정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전문 기관의 공사비 검증 역량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부동산원은 5년 전부터 ‘공사비 검증부’를 별도로 두고 경험을 쌓으며 검증업무를 하고 있다. 검증범위는 시공사와 조합측이 합의한 범위 내에서 검증하고 있다. 인력 채용 방향도 관련 경험이 있는 경력직으로 잡고 있다. 다만 본래 부동산 시장을 조사하고 공시하는 통계 전문기관이다 보니 전문성 면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둔촌주공 사태 당시, 부동산원은 추가 공사비 1조1385억원 가운데 15%(약 1630억원)에 대해서만 검증한 바 있다. 정작 추가공사비 갈등의 핵심인 자재값과 금융비융 증가분의 정적성 여부에 대해서는 검증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셈이다.
제도적 기반이나 권한도 부족하다. 일례로 조달청의 경우, 45억원 이상 규모의 공사에 대해서는 구매 권한을 갖고 있어 단가 조사가 자체적으로 가능하다. 단가를 조사하는 인력도 충분히 구성돼 있다.
정비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사비 검증과 관련한 행정력 부족, 인력 부족, 전문성 부족 문제는 특정 기관만의 문제는 아니다”라며 “표준계약서상 세부내역서가 나온다 해도 사실상 서류나 문서만 가지고 검증을 할 수 밖에 없다. 아시다시피 부동산원에 조사나 중재 권한이 없지 않냐”고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공사비 검증 업무 일부를 민간기관에 용역 주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민간투자 사업 타당성 조사 중 세부 내역은 민간에 위탁을 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전영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실장은 “현실적으로 공사비 검증 기관들의 역량을 당장 확대하기 어렵다면, 한시적으로라도 역량있는 민간 엔지니어링사(社) 등에게 위탁을 주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다만 일각에선 표준계약서와 마찬가지로 공사비 검증 의뢰도 강제가 아닌 ‘권고 사항’이라는 점에서 효과를 장담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원도급자의 불공정 지위 남용 방지라는 공익적 목적이 있는 ‘하도급 계약서’ 조차 강제가 아닌 권고사항”이라며 “결국 공사비 갈등은 사인과 사인간 문제라는 점에서 표준계약서든 공사비 검증이든 효과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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