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인기, 변주된 ‘막장의 역습’[스경연예연구소]
어려운 처지의 주인공, 그 옆에서 호시탐탐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려는 배우자. 그러다가 사달이 나는 둘의 관계. 그리고 그사이에 끼어있는 배우자의 내연관계.
이는 K-드라마에서 수없이 보아오던 ‘막장 드라마’의 흔한 형식이기도 하지만, tvN 월화극을 오랜 부진의 터널에서 건져준 작품의 줄거리이기도 하다. 한국 드라마에서 ‘클리셰 덩어리’로 치부되며 첨단의 유행 그 한쪽에 비켜서 있던 ‘막장코드’가 역습을 시작했다.
tvN 월화극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새해 벽두 가장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두는 작품 중 하나다. 지난 1일 첫 방송 된 작품은 22일 방송된 7회까지 완만한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닐슨코리아 유료가구 시청률 집계(이하 동일기준)에서 5.2%로 시작했던 수치가 3회 만에 6%, 4회 만에 7%가 넘어선 후 7회는 9.4%까지 나왔다.
이 수치는 tvN의 입장에서는 감격적이다. 지난해 월화극 최고 시청률이 1월31일 ‘미씽:그들이 있었다 시즌 2’의 마지막회 5.9%였다. 이전 최고기록을 따지면 2022년까지 가야 한다. 4월26일 방송된 ‘군검사 도베르만’의 10.1% 이후 처음이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가 이제 서사의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승의 원동력은 충분하다.
작품은 단순히 시청률뿐 아니라 방송가의 ‘젊은 시청자층’으로 불리는 20세에서 49세 타깃의 화제성 지수에서도 굿데이터코퍼레이션 집계 TV-OTT 화제성 지수에도 1위에 올랐다. 전통적 드라마 시청 층은 중년을 상징하는 시청률에, 젊은 층의 화제성도 잡은 모양새다.
이러한 작품의 인기 원인을 분석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의문이 있다. 앞서 밝힌 ‘막장 드라마’의 요소가 드라마 전반에 짙게 배어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낸 주인공 강지원(박민영)이 어렵게 결혼하지만 배우자 박민환(이이경)으로부터 짐짝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다. 오히려 시한부 판정 후 그의 절친 정수민(송하윤)과 불륜을 즐기고, 이 모습이 목격된 후 사고로 보이긴 하지만 우발적으로 살해되고 만다.
이러한 형식은 K-드라마가 태동하던 1980년대부터 수많은 작품에서 보이던 설정이었다. 구시대적인 요소로 보이던 이러한 설정이 오히려 2024년 유행의 최첨단 월화극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것이다. 여기에는 ‘막장 코드’의 변신이 한몫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단순한 ‘막장의 귀환’으로 보기는 어렵다. 보통 막장 드라마에서는 죽을 위기를 넘기는 데서 그치지만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서는 실제 주인공이 사망하기 때문”이라면서 “대중은 충분히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죄의식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운)’를 느끼려하지만 ‘길티’ 즉 죄는 원하지 않는다. 이러한 형식이 ‘회귀물’이라는 수단을 만나 변주하게 된 것”이라고 짚었다.
즉, 단순히 악인이 선인을 괴롭히는 막장 드라마의 주된 서사를 따르는 대신 10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 주인공이 자신을 죽게 한 이들에 통쾌한 복수를 하는 전복적인 서사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벌써 10년 가까이 웹툰 시장에서 주도적인 형식이 되고 있는 ‘회귀물’이 활약한다.
정덕현 평론가는 “회귀물에서 작가가 시간을 돌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설정이 나오면 안 된다. 익숙한 상황에서 피해를 입고, 고난을 겪는 주인공을 초반에 배치해야 한다”면서 “여기서 회귀물 설정으로 막장 코드를 뒤집는데 대중은 쾌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밝혔다.
주로 아침이나 저녁에 나오는 일일극의 주된 소재였던 이러한 ‘막장 드라마’는 최근 인기 작품의 코드로 점점 전면배치되고 있다. 김순옥 작가의 ‘7인의 탈출’은 막장 요소에 선한 사람이 없는 ‘악인극’ 즉 ‘피카레스크’를 들여와 두 번째 시즌 ‘7인의 부활’ 방송을 앞두고 있고, 비슷한 설정의 MBN ‘완벽한 결혼의 정석’ 역시 MBN의 주말 황금시간대인 토, 일요일 오후 10시대에 편성됐다.
이러한 막장 서사에 득세는 장르물과는 다른 이러한 장르만의 장점 때문에 가능하기도 하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막장 코드의 경우에는 장르물의 촘촘한 서사나 CG(컴퓨터그래픽) 등이 포함된 기술의 사용 없이도 시청자를 움직일 힘이 있다. 그러므로 막장 코드를 약간 변주해 트렌디하게 만든 작품들이 훨씬 가성비가 좋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MBC ‘나 혼자 산다’의 샤이니 키 편에서 보였듯,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 막장 드라마를 좋아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처럼 외국인들에게는 독특한 서사로 보인다. 그래서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는 작품에서 ‘막장 드라마’가 한국 드라마의 특징처럼 사용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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