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게 웃던, 차태현 닮았던 도미니카 소년 벨트레, 메이저리그의 역사가 되다[스경XMLB이슈]
한국 국민들이 IMF 사태로 힘들어하던 1998년, 먼 미국 땅에서 들려오는 박찬호의 호투 소식은 국민들의 시름을 덜고, 한편으로 희망을 안기는 기쁜 소식이었다. 그 해 박찬호는 데뷔 후 첫 15승과 200이닝을 던지는데 성공하며 LA 다저스 선발진의 한 축을 당당하게 차지했다.
그 해 다저스에는 만 19세 나이로 데뷔한 아드리안 벨트레(45)도 있었다. 늘 벤치에서 해맑게 웃는 모습이 화면에 잡혀 호감을 받았고, 한국 배우 차태현을 닮아 한국 야구 팬들로부터 ‘벨태현’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그는 26년이 지난 올해 메이저리그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가 24일 공개한 2024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입회자 선출 투표 최종 집계에서 벨트레는 총 385표 가운데 366표(95.1%)를 얻어 입회 기준선인 득표율 75%를 훌쩍 넘기며 자격을 얻은 첫 해 입성하는 영예를 안았다. 벨트레와 함께 2000년대 최고의 포수였던 조 마우어 또한 292표(76.7%)를 받아 벨트레와 함께 첫 해 입성에 성공했으며, 이번이 6번째 도전이었던 토드 헬튼 또한 307표(79.7%)를 얻어 함께 입성했다.
<2024 MLB 명예의 전당 투표 결과>
아드리안 벨트레(3B) : 366/385(95.1%)
토트 헬튼(1B) : 307/385(79.7%)
조 마우어(C) : 293/385(76.1%)
빌리 와그너(RP) : 284/385(73.8%)
개리 셰필드(OF) : 246/385(63.9%)
앤드류 존스(OF) : 237/385(61.6%)
카를로스 벨트란(OF) : 220/385(57.1%)
알렉스 로드리게스(SS/3B) : 134/385(34.8%)
매니 라미레스(OF) : 125/385(32.5%)
체이스 어틀리(2B) : 111/385(28.8%)
오마 비스켈(SS) : 68/385(17.7%)
바비 아브레유(OF) : 57/385(14.8%)
지미 롤린스(OF) : 57/385(14.8%)
앤디 페티트(SP) : 52/385(13.5%)
마크 벌리(SP) : 32/385(8.3%)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RP) : 30/385(7.8%)
토리 헌터(OF) : 28/385(7.3%)
데이빗 라이트(3B) : 24/385(6.2%)
※주황색은 입성, 파란색은 10번째서도 실패.
지금까지 기자단 투표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선수는 총 137명. 이들 중 3루수는 벨트레를 포함해 10명 뿐이다. 그리고 이 10명 중 벨트레와 마이크 슈미트, 조지 브렛, 브룩스 로빈슨, 치퍼 존스 5명 만이 첫 해 입성에 성공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타격과 수비가 모두 완벽했던 3루수를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548개의 홈런과 골드글러브 10회 수상을 자랑하는 슈미트를 꼽는다. 그리고 벨트레는 ‘이 시대의 슈미트’였다. 통산 477개의 홈런은 슈미트, 에디 매튜스(512개)에 이은 3루수 역대 3위에 해당하며, 안타(3166개)와 타점(1707개)은 1위다. 또 골드글러브도 5번이나 수상했다.
벨트레가 데뷔를 앞두고 있던 1990년대만 하더라도 중남미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서 뛰기 위해 실제 나이보다 1~2살 어리게 나이를 속이는 일은 다반사였다. 그런데 1994년 만 16세의 나이로 다저스에 입단한 벨트레는 계약 당시 1978년생으로 알려졌으나, 1999년 언론을 통해 1979년생인 것으로 드러났다. 다시 말해 계약 당시 나이가 만 15세로, 오히려 나이를 부풀린 것이었다. 메이저리그는 만 16세 미만의 선수와 계약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불법이었다. 결국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다저스에게 1년 동안 도미니카 공화국에서의 스카우팅 활동을 금지하는 징계를 내렸지만, 벨트레에게는 아무런 징계가 주어지지 않았다.
징계를 감수할 만큼 다저스는 벨트레의 재능을 굳게 믿고 있었다. 1998년 벨트레가 데뷔하고 나서 얼마지나지 않아 다저스는 또 다른 3루수 유망주인 폴 코너코를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했다. 이런 다저스의 기대와는 달리, 벨트레의 성장 속도는 다소 더뎠다. 초창기 극단적인 풀 히터였던 벨트레는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변화구에 속수 무책으로 당했을 뿐 아니라, 수비에서도 악송구 문제가 계속해서 발목을 잡았다.
그런데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기 직전 시즌인 2004년 거짓말처럼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48개의 홈런과 121타점을 쏟아내며 내셔널리그 최우수선수(MVP) 투표 2위에 올랐다. 그 해 벨트레는 발목 부상에 시달리며 이전과 같이 바깥쪽 공을 힘있게 잡아당기기 힘들게 되자 어쩔 수 없이 바깥쪽 공을 밀어치기 시작했는데, 이게 큰 효과를 봤다.
FA 자격을 얻어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한 벨트레는 시애틀에서 5년을 뛰며 수비가 눈에 띌 정도로 좋아지기 시작, 2007~2008년 2년 연속으로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하지만 투수 친화적인 구장이었던 시애틀의 홈구장 세이프코 필드(현 T-모바일 파크)에서 벨트레의 타격 성적은 다시 나빠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당시 시애틀의 핵심 선수였던 스즈키 이치로와 갈등까지 빚어졌다.
시애틀에서의 마지막 시즌을 망친 벨트레는 보스턴 레드삭스와 1년 계약을 맺고 FA 재수를 선택, 보기 좋게 성공하면서 자신의 마지막 팀인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해 추신수와 한솥밥을 먹게 됐다. 텍사스 이전까지 30홈런-100타점 시즌이 한 번 밖에 없었던 벨트레는 텍사스에서만 3번을 더 만들어냈고, 골드글러브도 3개를 추가했다. 특히 2016년 만 37세 나이로 37개의 홈런과 104타점을 만들어내 역대 3루수 최고령 30홈런-100타점 기록을 달성했다.
선수 생활 내내 단 한 번의 추문도 만들어내지 않을 만큼 자기 관리에 철저했던 벨트레는 박찬호 시절부터 메이저리그를 봐왔던 한국의 올드 팬들은 물론 류현진과 추신수의 활약이 국내에 방송 중계로 전해지면서 메이저리그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 젊은 팬들에게도 친숙한 선수다. 벨트레의 명예의 전당 입성이 한국 팬들에게도 낯선 뉴스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다.
슈미트 : 0.267/0,380/0.527 2234안타 548홈런 1595타점 1883삼진 1507볼넷 GG 10회 SS 6회 bWAR 106.8
브렛 : 0.305/0.369/0.487 3154안타 317홈런 1596타점 908삼진 1096볼넷 GG 1회 SS 3회 bWAR 88.6
로빈슨 : 0.267/0.322/0.401 2848안타 268홈런 1357타점 990삼진 860볼넷 GG 16회 bWAR 78.4
존스 : 0.303/0.401/0.529 2726안타 468홈런 1623타점 1409삼진 1512볼넷 SS 2회 bWAR 85.3
벨트레 : 0.286/0.339/0.480 3166안타 477홈런 1707타점 1732삼진 848볼넷 GG 5회 SS 4회 bWAR 93.5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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