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산행기] 양평의 마터호른 백운봉에 오르다

박영민 서울시 강남구 논현로 2024. 1. 24.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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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근 대원(좌측)과 박영민 단장(우측).

2023년 12월 송년 산행은 접근성이 좋은 곳으로 향했다. 해발 900m급 산 중에서 모교 29회 송영악 선배님께서 소개해 주신 양평 백운봉으로 정했다. 이번 산행은 임종근, 노임숙 부부대원과 한 팀이 되어 함께 올랐다.

12월 겨울비가 며칠 내리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간밤에 내린 눈으로 백운봉 산행이 꽤 힘들 것 같아 걱정됐다. 일단 들머리까지 가보기로 하고 토요일 오전 7시 30분 상봉역에서 일행을 만나 양평행 전철에 몸을 실었다. 그들에게 행동식과 핫팩을 나누어 주고 대략적인 백운봉 산행코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토의 끝에 우리는 백운봉 정상에서 사나사 쪽으로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양평역에 도착해 백운봉 들머리인 용문산 자연휴양림 쪽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간단히 몸을 풀고 자연휴양림 옆 새수골을 끼고 산행을 시작했다. 겨울 계곡임에도 수량이 풍부해 놀라웠다. 아마 용문산의 깊고 울창한 숲 덕분에 그런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등산로에는 간밤에 내린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오른 젊은 산객들이 남겨 놓은 발자국을 따라 올랐다. 잠시 후 웅장한 폭포 소리에 놀라 발걸음을 멈췄다. 눈앞으로 사자바위 폭포가 나왔다. 발걸음을 멈춰 잠깐 구경하고 다시 출발했다.

나뭇가지들은 저마다 소복하게 눈옷을 입고 있다. '뽀드득뽀드득' 재밌는 눈 밟는 소리도 들렸다. 얼마쯤 올라왔을까? 고개를 들어보니 정자 지붕이 살짝 보였다. 아! 말로만 듣던 백년약수터가 나왔다.

바위틈에서 맑고 시원한 약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침 목이 말랐던 나는 약수를 한 모금 들이켰다. 순식간에 지친 산객의 갈증이 해소됐다. 우리는 약수터 근처에서 잠깐 쉬며 행동식을 먹었다. 노임숙 대원이 깎아온 생밤을 나누어 먹었는데, 달고 포만감이 있어 무척이나 좋았다.

백운봉 정상까지 1.2km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난다. 잘 정비된 데크 계단길과 바위 계단을 오르고 나니 눈 덮인 편안한 오솔길이 나왔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빠지면 헬기장이었다. 앞으로는 양평의 마터호른 백운봉이 보였다. 산이마에 쌓인 눈이 하얗게 반짝였다.

이때 칼바람이 갑자기 우리를 덮쳤다. 바람과 함께 '쉬~익, 쉬~익' 눈보라도 몰아쳤다. 백운봉 정상을 얼마 안 놔두고 복장을 정비하고 아이젠을 착용했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옮기며 가파른 설사면을 올랐다.

맨살에 닿는 차디찬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얼마 전 결혼식을 올린 지인들의 자녀들 생각이 났다. 이제 막 가족을 이룬 아이들이 좋은 팀이 되어 비, 눈, 태풍이 불어오는 험한 세상을 잘 헤쳐 나가기를 빌었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45분이었다.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고, 하늘은 어느샌가 잿빛으로 변해버렸다. 정상 400m를 남기고 가파른 철계단이 우리를 막아섰다. 뒤를 돌아보니 부부대원이 보이질 않았다.

잠시 숨을 고르며 무전기를 통해 "문제 없냐"고 물었다. 다행히 임종근 대원이 "괜찮습니다. 곧 따라붙겠습니다 오버"라고 답했다. 나는 임종근 대원을 앞으로 보내고 노임숙 대원을 기다린 뒤 함께 올랐다. 눈 덮인 로프를 만지다 보니 털장갑이 젖어서 손이 시렸다.

가슴에 붙여두었던 핫팩을 털장갑에 욱여넣었다.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얼마 안 가 두런두런 산객들의 대화소리가 들렸다. 오전 11시 21분 드디어 정상에 섰다. 백두산에서 가져온 흙과 바위로 쌓은 조형물 뒤로 정상석이 보였다. 젊은 산객에게 우리의 인증사진을 부탁했다. 거칠고 차가운 바람 때문에 몸을 지탱하고 서 있기가 힘들었다.

박영민씨가 작성한 양평 백운봉 산행지도.

백운봉 정상의 조망은 끝내줬다. 용문산 제1봉 가섭봉과 장군봉, 함왕봉이 하나로 이어져 내려오고, 저 멀리 양평읍과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이 내려다 보였다. 날이 추워 오랫동안 풍경을 감상할 수 없었다. 하산을 서둘렀다.

사나사로 내려가는 길. 눈이 덮여 등산로가 보이지 않았다. 노임숙 대원이 말했다.

"단장님, 우리 원점회귀해야겠어요. 길이 안 보여 위험해요."

나는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우리 계획을 틀어 자연휴양림 쪽으로 내려갑시다!"

임종근 대원이 선두에 서고, 노임숙 대원이 잇따라 하산했다. 나는 마지막에서 사나사 쪽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빌었다.

'노사나 부처님, 약사여래 부처님, 아픈 동기들 건강한 몸으로 살아가게 해주소서.'

부지런히 하산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백운봉으로 향하는 산객들을 몇몇 마주쳤는데, 우리는 그들에게 길이 얼어 있으니 아이젠을 착용하라고 당부했다. 백년약수터에 이르러 행동식으로 챙겨 온 크림빵과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추위에 얼었던 몸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치는 새수골을 따라, 소나무 가지 아래로 흘러내리는 눈을 보며 단숨에 하산했다. 오늘도 임종근, 노임숙 부부대원과 나를 품어준 백운봉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따뜻한 전철에 몸을 실으니 온몸이 노곤했다. 전철은 서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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