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 사업장 중대재해법 유예 합의 실패…중소기업 절규도 안 통했다
국회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만 미뤄달라는 중소 상공인들의 절규를 외면했다. 야당은 무리한 조건을 고집했고 여당은 야당 설득에 실패했다.
영세 사업장에 대한 시행 전 유예를 위한 마지막 기회인 25일 본회의에 법안이 올라가려면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여야는 이날까지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여야는 본회의 직전까지도 협상을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만약 타결에 실패하면 전국 80만여곳의 상시 근로자 50인 미만(공사금액 50억원 미만) 중소사업장들도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된다.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김진표 국회의장의 중재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 등 민생입법 현안에 대한 협상을 벌였다. 하지만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등 민주당이 요구한 조건을 두고 첨예하게 입장이 갈리면서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윤 원내대표는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나 "아직까지 여야가 입장 차이가 있어서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2년 1월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노동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 등을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 제정 당시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2년간 시행을 유예하기로 했고, 중소·영세사업장 등에 대한 법 적용은 오는 27일부터 이뤄질 예정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상시 근로자가 5명 이상인 동네 음식점이나 빵집 사장님도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 대상이 된다"며 "건설현장은 공사금액의 제한이 없어져 사실상 모든 건설현장에 중대재해처벌법이 확대 적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장 영세·중소기업은 대표이사가 생산부터 기획?영업?안전관리까지 모든 역할을 담당한다"며 "중대재해로 대표이사가 처벌을 받을 경우 경영이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83만7000개의 50인 미만 기업이 안정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곳에서 일하는 800만명 근로자 고용과 일자리에 미칠 것이 자명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여야는 수차례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에 대한 협상을 벌였지만 번번히 합의에 실패했다. 정부·여당과 재계, 야당과 노동계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이어서다. 정부·여당은 중소·영세사업장의 준비 부족 등을 이유로 유예 기간 연장을 촉구해왔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2년 재유예안을 대표로 발의했고, 당정은 1조5000억원을 투입해 50인 미만 사업장의 안전관리체계 구축을 지원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민주당은 중소·영세사업장의 준비 부족은 정부가 지난 2년의 유예 기간 동안 제대로 된 지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당정이 발표한 대책 역시 미흡하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추가로 유예를 해야 할 뚜렷한 이유나 근거를 발견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동계와 정의당 등은 노동자 목숨이 거래 대상이 아니라며 예정대로 법을 시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여기에 민주당은 지난 16일 산업안전보건청 연내 설립과 산업재해 예방 예산을 1조2000억원에서 2조원으로 늘릴 것을 조건으로 추가 제시했다.
이날 여야가 협상에 실패하면서 50인 미만 중소기업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유예할 시간적 여유는 거의 사라졌다. 유일한 방법은 25일 내일 본회의 직전 여야가 극적으로 합의해 임시로 법사위를 열고 개정안을 처리한 뒤 본회의에 상정하는 것이다. 윤 원내대표는 "내일 오전까지라도 계속 협의를 이어가도록 논의했다"고 말했다.
한편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이날 국회를 찾아 여야 원내대표에게 영세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를 호소했다. 김 회장은 양당 원내대표들에게 "중대재해법 (적용 유예안) 관련 이번 국회에서 꼭 통과시켜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만남에서 윤 원내대표는 김 회장에게 "문제 해결을 위해 그간 저를 수차례 찾아왔고 많은 현장 목소리를 전달했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어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 원내대표는 여당이 산업안전보건청 설치만 수용한다면 유예안을 통과시키도록 노력하겠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동훈 기자 mdh5246@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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