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재개발 시계 빨라진다…노후 아파트·빌라촌 '들썩'

이유정 2024. 1. 2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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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부동산 대책'…규제 대폭 완화
30년 지난 아파트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
강남구 수서동·노원·강서·도봉구 주목
법 개정 사안 많아 '묻지만 투자'는 금물
정부가 발표한 ‘1·10 부동산 대책’으로 재개발·재건축 문턱이 대폭 낮아진다. 재건축의 ‘대못’으로 꼽히는 안전진단 시점을 뒤로 미루고, 각종 인허가 절차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재건축을 추진 중인 서울 노원구 월계동 미성·미륭·삼호 아파트. 최혁 기자


정부가 건설 경기 활성화를 위해 연초부터 파격적인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윤석열 정부 취임 이후 대부분의 부동산 대책이 공급 규제 완화에 집중됐다면 이번엔 수요 활성화 방안이 대폭 담겼다.

정비사업 절차 간소화, 오피스텔 등 소형 주택 규제 완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등의 규제 완화안이 현실화하면 서울 재건축·재개발 시장이 가장 큰 혜택을 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재건축은 노원·강남·강서·도봉구가, 재개발은 노후도 요건을 채우지 못해 모아타운 등을 추진하던 주요 지역 개발이 활성화될 수 있다.

노원·강남구 노후 아파트 개발 속도

우리나라는 도심 주택 공급의 약 70%가 정비사업을 통해 이뤄진다. 정부가 ‘1·10 부동산 대책’에서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에 방점을 찍은 것도 이 때문이다. 택지 개발 등을 통한 신도시 주택뿐 아니라 주거 선호도가 높은 도심 주택 공급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번 대책에서 정부는 재건축 안전진단 폐지를 공언했다. 준공 30년만 넘으면 추진위원회나 조합을 먼저 설립하고, 안전진단은 사업계획승인 전까지만 받도록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개정을 추진한다. 지금까진 수억원의 안전진단 비용을 누가 마련할지 불분명해 사업이 지지부진한 경우가 많았다. 추진위부터 결성되면 이런 문제가 해소돼 사업 기간을 단축할 수 있게 된다. 서울에서는 신속통합기획 제도까지 활용하면 재건축 사업 기간을 최대 5~6년가량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정부는 2027년까지 30년 이상 된 아파트 173만 가구 중 75만 가구를 재건축한다는 목표다.

서울에선 안전진단 허들을 넘지 못한 노원구, 강남구, 강서구, 도봉구 등지의 노후 단지가 수혜를 볼 전망이다. 노원구는 30년 이상 노후 주택 비율이 47.1%(2022년 기준)로 서울에서 가장 높다. 도봉구(38.1%), 양천구(33.4%), 용산구(31.0%) 등이 그 뒤를 잇는다. 현재 노원구에서 재건축을 추진 중인 단지는 44곳이다. 이 중 하계동 극동·건영·벽산(1980가구) 등 안전진단 단계에 머물러 있는 단지 29곳이 규제 완화의 혜택을 볼 전망이다.

강남권에선 강남구 수서동 까치마을(1403가구)과 신동아(1162가구), 일원동 상록수(740가구)와 수서1단지(720가구) 등 12개 단지가 안전진단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경기(1기 신도시 제외)에선 안산시와 수원시, 광명시, 평택시 등이 혜택을 볼 것으로 정비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꺼진 빌라’ 다시 보자…재개발 ‘들썩’

정비업계에선 재건축보다는 재개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더 직접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재건축은 지난해 ‘1·3 대책’에서 이미 안전진단 항목의 비중을 조정해 규제가 크게 완화됐다. 또 안전진단 제도 개선이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의 개정 사안이라 시행 시기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도 한계다.

재개발과 관련해 정부는 노후도 요건을 60%만 충족해도 정비구역 지정이 가능하게 할 계획이다. 노후도 요건은 정비구역 지정을 위해 충족해야 하는 건물의 연식(벽돌 20년, 콘크리트 30년)과 비율이다. 지금은 3분의 2 이상(67%)을 충족해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오는 4월께 시행령 개정을 완료하겠다는 목표다. 정비구역 지정에 걸림돌이 되던 유휴지나 자투리 토지 등에 대한 보완책도 내놨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재개발 추진 지역 가운데 1~2% 차이로 노후도를 맞추지 못해 골머리를 앓는 지역이 많다”며 “7%포인트는 상당히 의미가 큰 숫자”라고 평가했다. 정부는 재개발을 통한 공급 목표치를 2027년 기준 20만 가구로 잡았다.

서울에선 다음달부터 정비계획 입안 동의를 받기가 쉬워진다. 서울시는 지난 18일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정비계획 입안 요건을 완화하는 ‘2025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 변경(안)’을 수정 가결했다. 애초 토지 등 소유자가 ‘3분의 2 이상 동의’해야 했던 기준을 ‘2분의 1(50%) 이상’으로 완화했다. 모아타운 등을 추진하는 곳 중 재개발로 선회하는 지역도 나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재건축과 달리 재개발 시장에선 아직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개발 후보지가 많다”며 “재건축 안전진단은 법 개정이 전제돼야 하는 것까지 감안하면 이번 대책의 수혜를 보는 곳은 재건축보다 재개발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결국 입지…옥석부터 가려야

이번 대책에 법 개정 사안이 많은 데다 공사비 인상 등 대외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점은 주의해야 한다. ‘묻지마 투자’에 나섰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재건축 안전진단 폐지만 놓고 봐도 일러야 연말은 돼야 법 개정이 논의될 것이란 의견이 중론이다. 정부는 일단 2월 도시정비법 개정안을 발의한다는 계획이지만 여소야대 등 상황을 감안하면 4월 총선 전 법안이 처리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안전진단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장애물이 많다. 이미 안전진단을 통과한 단지도 공사비, 원자잿값 상승 같은 악재로 사업 속도가 더디기 때문이다. 입지가 좋고 사업성이 높은 단지만 혜택을 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효선 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입지가 좋은 단지는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겠지만 상당수 단지는 투자 수요가 뒤따르지 않으면 거래량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제경 소장은 “정비사업 규제 완화는 모든 지역에 일률적으로 혜택이 돌아가기보다는 지역과 단지별 사업성 편차에 따라 추진 속도가 다를 것”이라며 “보수적인 투자 전략 아래 ‘옥석 가리기’ 작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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