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성 집어삼킨 '레비아탄'… 美 다이내믹 듀오의 승부수 [김기정 컨슈머전문기자의 와인 이야기]

김기정 전문기자(kim.kijung@mk.co.kr) 2024. 1. 2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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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앤디 에릭슨·애니 파비아 부부
캘리포니아의 유명 와인메이커 앤디 에릭슨과 그의 부인 애니 파비아. 부인도 포도재배자로 캘리포니아 와인업계의 '다이내믹 듀오'로 불린다.

와인 제조자의 '명성'에 비해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와인이었습니다. 와인의 전체적인 품질이 떨어진다기보다는 와인 제조자의 이름이 그만큼 기대감을 높여 놓았기 때문입니다. 최정상급의 와인을 만들던 그였지만 정작 그의 와인은 무척이나 대중적이었습니다.

이번주 김기정의 와인이야기는 캘리포니아의 유명 와인메이커 앤디 에릭슨과 그의 부인 애니 파비아, 또 이들 부부의 와인에 관한 스토리입니다.

미국 '나파(Napa)의 다이내믹 듀오'라 불리는 앤디 에릭슨과 애니 파비아 부부가 최근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김기정의 와인이야기 독자들이라면 투 칼론 빈야드 컴퍼니(To Kalon Vineyard Company)의 와인을 소개하면서 와인메이커 앤디 에릭슨에 대해 언급한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앤디 에릭슨은 미국 최고의 컬트와인으로 불리는 스크리밍 이글과 할란 이스테이트의 와인메이커로 명성을 쌓았습니다. 평론가 점수 '100점 제조기'라 불리는 스타 와인메이커입니다.

터프츠(Tufts)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광고회사에서 일합니다. 광고회사는 나파밸리 고객들이 많았는데 앤디 에릭슨은 이때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에 흥미를 느낍니다.

파비아.

자신의 관심사를 찾아 남미로 떠난 그는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포도밭에서 일합니다. 이후 추천을 받아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유명 와이너리 스택스 립 와인 셀라(Stag's Leap Wine Cellars)에서 일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게 1994년이었는데 그 후 앤디 에릭슨은 미국 여러 와이너리의 독립 컨설턴트로 일하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다른 사람의 와인을 만들어주다 보면 자신의 와인도 만들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겠죠. 포도재배업자인 아내 애니 파비아의 성을 딴 '파비아(favia)' 와인을 만듭니다. 그리고 파비아를 만들고 남은 포도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다 자신의 와인을 만듭니다. 레비아탄(Leviathan)이란 이름의 와인인데 처음에는 파비아의 세컨드 와인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런 개념은 아니라고 합니다.

레비아탄은 여러 지역의 포도와 다양한 포도품종을 섞어 만드는 와인입니다. 해마다 포도품종의 혼합 비율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레비아탄 2021년 빈티지는 이름만큼이나 파워풀한 풀보디 캘리포니아 와인입니다. 카베르네 소비뇽 63%, 메를로 12%, 프티 시라 10%, 시라 6%, 프티베르도 6%, 카베르네 프랑 3%를 섞었습니다.

앤디 에릭슨은 "포도품종의 혼합을 달리하더라도 캘리포니아의 대표 와인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레비아탄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단일 포도밭에서 생산되는 단일 포도품종으로 만드는 것보다 여러 포도를 섞어 가장 좋은 와인 맛을 내는 것이 와인메이커에 있어서는 최고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단일 포도품종으로 만드느냐 아니면 여러 포도품종을 섞어 만드느냐의 차이는 위스키로 따지면 맥켈란 같은 싱글몰트 위스키와 조니워커나 발렌타인 같은 블렌디드 위스키와의 차이와 비슷할 것 같습니다. 어떤 방법이 더 좋다고 말하긴 힘들며 취향의 차이일 뿐입니다.

앤디 에릭슨이 자신의 와인으로 만든 '레비아탄'이란 이름이 소비자에게 주는 이미지는 무척이나 강렬합니다. 성경에도 레비아탄은 바다의 용, 바다의 괴물로 묘사됩니다. 레비아탄 와인의 라벨에 그려진 모습도 바다 괴물, 또는 대왕오징어 같은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레비아탄은 대중적인 와인이지만 '스타' 와인메이커의 프리미엄이 붙어 가격은 싸지 않습니다.

와인업계에선 레비아탄을 사려면 지금이 구매 적기라고 평가합니다. 레비아탄의 국내 수입사가 바뀌면서 기존 수입사가 가지고 있던 재고 물량을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시장에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레비아탄의 새로운 수입사는 동원와인플러스입니다.

저는 레비아탄의 잔당(residual sugar)감이 아쉬웠습니다. 개인적으로 달콤한 와인보다는 드라이한 와인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일반 소비자 입맛에는 딱 좋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레비아탄은 태생적으로 대중적인 와인이고 앤디 에릭슨은 그에 걸맞은 와인을 생산한 것 같습니다.

저처럼 레비아탄이 살짝 너무 달다고 느껴지는 소비자들에게는 '파비아'가 좀 더 어울릴 듯합니다.

파비아는 앤디 에릭슨과 아내 애니 파비아가 함께 만든 와인입니다. 가격도 품질도 레비아탄보다는 한 단계 위의 와인입니다. 파비아 카베르네 소비뇽도 좋지만 특히 저는 카베르네 프랑에 도전해 보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유명 포도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은 카베르네 프랑과 소비뇽 블랑이 혼합돼 만들어진 겁니다. 프랑스 보르도 우안(right bank) 지역에서 고급 카베르네 프랑 와인을 맛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숨은 보석'이라 불릴 정도로 카베르네 프랑이 아주 대중적인 편은 아닙니다.

카베르네 프랑은 피망과 같은 피라진 뉘앙스가 특징입니다. 포도가 덜 익었을 때 수확하거나 상대적으로 추운 빈티지의 칠레 카베르네 소비뇽에선 허브향이 올라옵니다. 또 칠레 카르미네르 포도품종과도 맛이 유사합니다.

다만 한국 시장에서 카베르네 프랑은 마니아적 성격이 강한 포도품종입니다. 위스키로 보면 피트향이 강한 라가불린, 아드백, 라프로익 같은 느낌입니다. 호불호가 갈립니다.

레비아탄.

나파밸리 쿰스빌에서 생산되는 파비아 카베르네 프랑은 생산량이 많지 않아 한국에 들어오는 수량이 제한적입니다. 파비아 카베르네 프랑은 저장고(라이브러리)에 보관해 두었던 2014년과 2019년 빈티지가 한국에 들어옵니다.

앤디 에릭슨, 애니 파비아 부부와 한국 시장에서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의 경쟁력에 대한 의견도 나눴습니다. 아무래도 신대륙 와인 치고는 높은 가격대가 걸림돌인데 애니 파비아 씨는 "미국 와인의 전체적인 가격 상승 요인이 있었다"면서 "미국의 높은 인건비가 미국 와인의 생산원가를 밀어올리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 와인이 한국 소비자에게 좀 더 다가서기 위해서는 적절한 스토리텔링과 마케팅 전략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프랑스 와인들은 황제, 교황, 예술가 등 다양한 스토리가 준비된 반면 캘리포니아 와인은 '맛' 외에는 특별한 스토리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테루아를 강조하기 위해 기후와 토양에 대한 설명도 많이 하지만 너무 많은 정보는 일반 소비자들의 머리를 더 복잡하게 만듭니다. 물론 최고급 캘리포니아 와인은 품질 면에서 별다른 스토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우위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일반 캘리포니아 와인들은 소비자들에게 좀 더 직관적으로 다가설 수있는 마케팅 전략 개발이 필요해 보입니다.

[김기정 컨슈머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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