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동 철공소 다 망해요"…사장도 직원도 이 법에 '덜덜' 떨었다[르포]

이승주 기자, 김지은 기자, 김지성 기자, 이지현 기자 2024. 1. 24.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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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 철공소 내부는 '쿠르릉' 하는 기계 소리와 함께 이미 절단된 자재들이 수십개씩 깔려있었다. /사진=이승주 기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되면 여기 문래동 다 망해요."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 30년 넘게 이곳에서 일했다는 제조업체 대표 이모씨는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앞으로 2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소식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문래동은 대부분이 소규모 사업장인데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면 다 죽는다"고 했다.

이씨가 운영하는 사업장에는 3명이 근무한다. 이씨의 업체에서는 절단기로 스테인리스를 잘라 포스코 같은 철강업체에 제공한다. 철공소 내부에서는 '쿠르릉' 하는 기계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철공소 바닥에는 이미 절단된 자재들이 수십개씩 깔려있었다.

절단기를 이용해 철강 재료를 자르는 작업을 주로 하다보니 손을 다칠 위험성이 크다. 이씨는 이런 사정을 고려해 평소에도 직원들 대상 산재 보험에 치료비까지 제공해왔다. 그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면 또 책임을 져야 하는 건데 비용도 이중으로 들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 거리. /사진=이승주 기자


오는 27일부터는 직원 50인 미만(건설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확대 적용된다. 당초 중대재해처벌법이 2022년 1월27일 시행되면서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선 유예를 뒀는데 2년이 지나 유예가 풀리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소규모 사업장도 안전보건관리자를 최소 1명 이상 둬야 한다. 노동자 사망, 6개월 이상 치료 필요한 부상자 발생 등 중대재해 발생 때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중소기업계 등은 50인 미만 사업장 중처법 적용 유예를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 실정이다.

업주뿐 아니라 직원들도 걱정이 태산이다. 문래동에서 링 부품 제작업체에 5년간 근무했다는 직원 박모씨는 "큰 회사는 사장이 잡혀가도 대체가 가능하지만 이런 작은 곳은 사장이 처벌받으면 문을 닫아야 한다"며 "직원들 목숨도 다 끝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대비는 언감생심이다. 적용이 언제 되는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대다수 철공소 업체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보험 같은 걸 들어야 하느냐", "나만 몰랐느냐", "그런 걸 왜 만드는 거냐"며 되물었다. 그제야 핸드폰으로 급하게 검색하는 사람도 있었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 내부 모습. /사진=이승주 기자


중소 건설업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업계 특성상 적은 인원이 현장 상황에 맞춰 유동적으로 일하는 데다 안전관리 여력이 부족해 자칫 영세 건설사를 중심으로 줄폐업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독주택 등 소규모 건축물을 시공하는 50대 장모씨는 "업주가 100% 책임지는 건 독박을 쓰는 것과 같다"며 "큰 업체는 경제적 여력이 되니 직원도 잘 따르지만 우리 같은 소규모 업체는 인력도 부족하고 항상 '을'이다. 사업주, 현장관리자, 근로자가 함께 책임을 나눠야 부담도 덜하다"고 말했다.

건설 현장에서 안전관리를 담당하는 정모씨도 "지금도 현장에 나온 안전관리자를 보면 건축공학과 나온 사람, 현장에서 반장 생활 10년 한 사람 등 보여주기식으로 세우는 경우가 많다"며 "소규모 사업장은 결국 비용 부담 때문에 자격 없는 안전관리자를 대충 고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전문건설사 설문조사. /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실제 대한건설정책연구원과 대한전문건설협회가 지난해 11월 전문건설사 781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 기업의 96.8%가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을 위한 안전관리 체계 구축, 인력·예산 편성 등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방대한 안전보건 의무와 그 내용의 모호함'(67.2%)이 가장 많았고 '비용부담'(24.4%), '전문인력 부족'(8.4%) 등이 뒤를 이었다.

대한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전문건설사는 대기업과 달리 대표이사가 기술자이자 실제 시공자인 경우가 많고 건설 현장이 생기면 그때그때 기간제 근무자를 채용해 관리하는 구조"라며 "만약 불의의 사고로 대표이사가 형사처벌을 받게 되면 그 업체는 그냥 문을 닫게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종합건설업체에서 도급받아 일을 진행하는 구조상 목적물 완공에만도 예산이 빠듯하다. 소규모 업체에서 안전관리자를 따로 채용할 여력이 안 된다"며 "또 관련 조치를 취하려고 해도 내용이 모호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고 법에서 말하는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 했다고 해도 나중에 가서 충분하지 않다고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어 걱정이 크다"고 했다.

외벽 청소 등 자칫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현장 관계자들도 고민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중대재해처벌법 필요성에 공감은 하지만 법에서 정한 조치를 모두 하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외벽 청소 업체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스카이 작업이나 밧줄을 타고 작업하다 보면 생명과 직결되는 상황이 많다"며 "먹고살기 바빠 안전관리자를 고용하진 못하겠지만 최대한 안전 장비를 챙겨주고 안전 수칙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주 기자 green@mt.co.kr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김지성 기자 sorry@mt.co.kr 이지현 기자 jihyun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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