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자는 비판, 제작진은 반박, 배우는 읍소..환장의 ‘고거전’ [Oh!쎈 이슈]
[OSEN=장우영 기자] ‘고려거란전쟁’이 늪에 빠졌다. 클라이맥스인 귀주대첩으로 가기까지의 추진력을 얻어야 할 시기에 원작자와 시청자의 비판, 제작진의 반박, 배우의 당부가 섞이면서 혼란 그 자체다.
공영방송 50주년 특별 기획 KBS2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최고 시청률 10.2%(15회)를 기록하는 등 뜨거운 관심 속에 방송 중이다. ‘2023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최수종), 작가상(이정우 작가), 남자 최우수상(김동준) 등을 포함해 7관왕에 오르며 그 인기를 입증했다. 시상식 때문에 ‘고려거란전쟁’이 결방되자 “거란이 침입했는데 시상식을 여는 게 말이 되냐”는 귀여운 불만이 속출한 건 그만큼 ‘고려거란전쟁’의 인기가 높다는 점을 증명한다.
하지만 양규(지승현)와 김숙흥(주연우)이 전사하며 2차 전쟁이 마무리된 뒤 이어지는 이야기 전개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호족 혁파 과정에서 현종(김동준)의 캐릭터가 붕괴되고 ‘금쪽이’가 됐다는 것. 현종과 강감찬(최수종)의 대립 후 현종의 낙마는 역사적으로 없는 사실이라는 점에서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졌다.
이를 두고 원작자 길승수 작가와 시청자들은 ‘역사 왜곡’ 논란을 제기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전우성 감독, 이정우 작가는 원작 ‘고려거란전기’와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별개의 작품이라고 강조했고, 직접 출연 중인 배우 김혁은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주시길이라며 당부했다.
▲ 원작자·시청자의 불만 “16화까지 잘 끌어오고 왜 이래”
지난 14일 현종이 낙마하며 정신을 잃은 것으로 마무리된 뒤 ‘고려거란전쟁’의 원작 ‘고려거란전기’를 집필한 길승수 작가는 “18화에 묘사된 현종의 낙마는 원작 내용 중 없다.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숙지하고 자문도 충분히 받고 대본을 썼어야 했는데 숙지가 충분히 안 되었다고 본다. 대본 작가가 교체된 다음에는 전투신 외에는 제 자문을 받지 않아서 내부 사정을 정확히 모른다”며 “대본 작가가 일부러 원작을 피해 자기 작품을 쓰려고 하는 것이 보인다. 원작을 피하려다 보니 그 안에 있는 역사까지 피해서 쓰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사람이 공영방송 KBS의 대하사극을 쓴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현종의 캐릭터를 제작진에 잘 설명해 줬는데 결국 대본 작가가 본인이 마음대로 쓰다가 이 사단이 났다. 한국 역사상 가장 명군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길승수 작가는 20화가 방송된 후에도 “이번 화에서 정체불명의 강씨 문중 어른이 강감찬을 베려는 모습을 보고 식겁했다. 그리고 그 할머니 호족의 정체는 무엇인지. 대하사극인데 제발 생각 좀 하고 대본을 쓰자! 21화 예고편 보니 드디어 거란 황제 야율융서(김혁)가 등장하나 보군요. 외적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어서 침공해서 이 환란을 수습해줘”라고 적었고,
또한 길승수 작가는 KBS가 ‘고려거란전쟁’ 탄생기를 공개하자 “ 2022년 6월 경 처음 참여했을 때, 확실히 제 소설과 다른 방향성이 있었다. 그 방향성은, ‘천추태후가 메인 빌런이 되어서 현종과 대립하며 거란의 침공도 불러들이는 그런 스토리’였다. 화들짝 놀라서 KBS 드라마 ‘천추태후’도 있는데, 그런 역사 왜곡의 방향으로 가면 ‘조선구마사’ 사태가 날 가능성이 있다고 하니 천추태후는 포기됐는데, 그 이야기가 원정왕후(이시아)를 통해 어느 정도 살아 남았다”고 지적했다.
일부 시청자들은 KBS 시청자 청원 게시판에 ‘대본 작가 교체’, ‘완성도 위한 결방의 시간’, ‘이정우 작가가 수상한 작가상 수상 취소 또는 몰수’를 바라는 목소리가 올라왔다. 또한 “원작 작가와 계약본 이후로 스토리가 엉망이다. 전통 대하사극인데 양규 전사 이후 드라마도 무덤으로 가고 있다. 200년대 초반 퀄리티다. 전세계가 다 볼텐데 너무나 창피하다. 대한민국 사극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원작 작가님과 계약 추가해서 종방까지 가길 원한다”는 글도 게재됐다. 두 게시글 모두 1000명 이상이 동의한 만큼 KBS 측이 어떤 답변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 감독·작가의 반박, ‘고려거란전기’와 ‘고려거란전쟁’은 별개의 작품
‘고려거란전쟁’ 측은 길승수 작가의 원작 ‘고려거란전기’와 ‘고려거란전쟁’은 별개의 작품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먼저 KBS는 “역사서에 남아있는 기록들이 조선보다 현저히 적은 고려를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서는 주요 사건들의 틈새를 이어줄 이야기가 필요했고, 드라마의 경우 고유한 영역을 갖고 있는 또 다른 창작물이기에 제작진은 역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보다 상황을 극대화하고 감동을 끌어낼 수 있는 ‘고려거란전쟁’만의 스토리를 구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우성 감독은 길승수 작가가 ‘스토리 텔링의 방향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증과 관련된 자문을 거절해 새로운 자문자를 선정해 꼼꼼한 고증 작업을 거쳐 집필 및 제작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전 감독은 “상황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들에 대해 기초적인 고증도 없이 제작하고 있다는 주장이 당혹스럽다”며 “자신만이 이 분야의 전문가인 것처럼 말하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다. 이 드라마의 자문자는 역사를 전공하고 평생 역사를 연구하며 살아온 분들”이라고 말했다.
이정우 작가 또한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소설 ‘고려거란전기’를 영상화할 목적으로 기획된 게 아니다. KBS의 자체 기획으로 탄생했으며 처음부터 제목도 ‘고려거란전쟁’이었다. 원작 소설을 검토하였으나 저와는 방향성이 맞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고, 그때부터 고려사를 기반으로 처음부터 이야기를 다시 설계했다. 제가 대본에서 구현한 모든 씬은 그런 과정을 거쳐 새롭게 창작된 장면들입니다. 시작부터 다른 길을 갔고 어느 장면 하나 일치하는 것이 없다. 이렇게 처음부터 별개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사실 원작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런데도 원작 소설가가 ‘16회까지는 원작의 테두리에 있었으나 17회부터 그것을 벗어나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의도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특히 이정우 작가는 “자신의 글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면 다른 작가의 글에 대한 존중도 있어야 한다. 원작 소설가가 저에 대한 자질을 운운하며 비난하는 것은 분명 도를 넘은 행동이다. 그런식이라면 저도 얼마든지 원작 소설을 평가하고 그 작가의 자질을 비난할 수 있다. 다만 제가 그러지 않는 것은 타인의 노고에 대한 당연한 존중 때문이다. 이 드라마를 어떻게 구성하고 이끌어가는지는 드라마 작가의 몫이다. 저는 제 드라마로 평가받고 소설가는 자신의 소설로 평가받으면 되는 일이다”고 강조했다.
▲ 배우들을 가시방석 “드라마로 봐주시길”
원작자·시청자, 그리고 제작진의 대립 속에서 배우들이 편하게 연기를 이어갈 수 있을까. 첨예한 대립 속에서 거란 황제 ‘야율융서’로 열연 중인 배우 김혁이 입을 열었다. 김혁은 먼저 “제 의견을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드라마다. 역사적 고증을 토대로 만든 100% 역사 고증 프로그램이 아니라 고증을 토대로 재창조해서 드라마로 만들어 가는 하나의 작품으로서 봐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김혁은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 배우들도 맡은 역할에 몰입해서 연기하기가 마음이 무겁습니다. 1회부터 드라마 시작 전에 양해 멘트를 알리고 시작하는데, 이런 문구가 왜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제 주관적인 생각이오니 비판하시거나 욕을 하셔도 감수하겠습니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김혁은 “수신료를 받아 제작하는 공영방송, 50주년을 기념해서 국민 여러분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드리고자 만들어 가는 드라마입니다. 힘들어도 끝까지 좋은 작품을 위해 ‘고려 거란 전쟁’ 팀은 열심히 만들어 가겠습니다”고 당부했다.
32부작으로 제작되는 ‘고려거란전쟁’은 이제 12화를 남겨두고 있다. ‘고려거란전쟁’ 21화는 오는 27일 오후 9시 25분 방송된다. /elnino8919@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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