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법’ 업계 우려에 해명 나선 공정위… “제정 늦어지면 ‘역사의 죄인’”이라는 이유
이후 깜깜이 진행 과정에 업계 우려만 무성
‘先지정, 後규제’ 체제… “사전 규제 아니다”
“‘소수’ 거대 플랫폼만 규제 대상 지정될 것”
플랫폼법 제정이 늦어지면 공정위가 마치 역사의 죄인이 될 것만 같습니다.
육성권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
정부가 추진하는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가칭)’에 대한 업계의 우려가 무성하다. 정부가 플랫폼 산업 전반을 옥죄려는 시도라는 비판부터 국내 사업자만 규제해 역차별을 초래할 것이라는 걱정 등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그간 입을 닫았지만, 관계 부처 협의가 막바지에 이른 지금 플랫폼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를 직접 역설하고 나섰다.
육성권 공정위 사무처장은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약식 기자 간담회를 열고 “플랫폼법에 대한 오해가 상당히 많고, 이것이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해 너무 과대 평가되는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현행 공정거래법 집행 체제로 플랫폼 기업의 반칙 행위를 제재하면, 심의를 마치고 시정조치할 즈음에는 시장이 이미 독과점화가 돼서 경쟁 질서 회복이 늦다”며 법 제정이 더는 늦어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제2의 타다’ 아니냐” 플랫폼법 반대 성명 잇따라
지난해 12월 정부의 플랫폼법 제정 방침이 알려지자, 업계에선 반발이 들불처럼 일었다. 지금껏 코리아스타트업포럼과 디지털경제연합, 1500곳의 영세 중소기업으로 구성된 플랫폼입점사업자협회, 소비자 정책 감시 단체인 컨슈머워치 그리고 벤처기업협회까지 줄줄이 반대 성명 등을 냈다.
업계에서 나오는 우려는 크게 자국 기업 역차별 논란, 플랫폼 산업 생태계 위축 등이다. 벤기협 측은 “플랫폼법은 국내 플랫폼 기업에 대한 역차별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며 “국내 플랫폼 기업의 성장을 원천 봉쇄하고 향후 중소·벤처기업들의 투자 활동 동력도 상실케 할 수 있다. 자국 플랫폼의 성장과 혁신을 저해하는 결과만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타다 금지법’처럼 비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팽배하다. 플랫폼법이 ‘사전 규제’의 형태로 알려진 만큼, 스타트업이 혁신을 실험할 경쟁시장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플랫폼 업체의 반칙 행위는 이미 기존의 법으로도 규제되는데, 플랫폼법이 제정되면 ‘중복 규제’라는 비판도 있다.
◇ 조사 후 시정조치하는 동안 이미 점유율 100% 육박
업계의 주장처럼 거대 플랫폼의 반칙 행위는 현행 공정거래법으로도 제재는 할 수 있다. 다만 그때마다 관련 시장에서 ‘시장 지배적 지위’를 가지는 사업자인지를 구분하는 데만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는 맹점이 있다. 육 처장은 “고비고비를 넘어서 시정조치를 한다고 해도, 문제의 사업자는 해당 시장에서 이미 독점화된 이후가 된다”라고 했다.
실제로 토종 애플리케이션(앱) 마켓으로 출발한 ‘원스토어’에 대해서도 과거 구글은 노골적으로 사업을 방해한 일이 있었다. 원스토어에 입점해 앱을 파는 개발자들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해 구글 앱스토어에만 유치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플랫폼법에서 금지할 예정인 이른바 ‘멀티호밍’ 행위다.
2018년 4월 관련 조사에 착수했던 공정위는 5년이 지난 지난해 4월에야 구글 측에 과징금 421억원을 부과했다. 문제는 해당 제재가 이뤄지기까지의 기간 동안 원스토어의 시장 점유율은 19%에서 9%로 쪼그라들었고, 구글 앱스토어는 90%의 독점 사업자로 올라섰다는 점이다.
공정위는 또 2020년 10월 네이버가 검색 알고리즘을 조정해 비교 쇼핑 서비스에서 자사 오픈마켓 입점 업체 상품이 상단에 노출되도록 ‘자사 우대’를 했다는 행위에 대해서도 제재한 바 있다. 네이버엔 과징금 267억원이 부과됐다.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할 당시만 해도 관련 시장에서 네이버의 점유율은 4위였는데, 시정조치 후엔 1위로 올라섰다.
이 밖에 구글의 ‘OS 갑질’, 카카오모빌리티의 자사 가맹 택시 ‘콜 몰아주기’ 등의 사례 역시 사건 조사가 마무리된 이후 각각 이들의 점유율이 97%, 74%로 독과점화해 버렸다는 것이 공정위의 설명이다.
육 처장은 “플랫폼 시장의 특성상, 독점화 속도는 빠른데 해당 시장을 조사하는 데는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다”며 “한번 무너진 시장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독점화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플랫폼 사업자들은 수수료를 높이는 등 결국 소비자들의 피해로 돌아온다”며 “이 때문에 법 제정이 늦어지면 공정위는 역사의 죄인이 되는 것 같단 생각이 든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문제는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 중에서도 반복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 공정위 설명이다. 유럽 등지에서 유튜브는 ‘유튜브 프리미엄’과 ‘유튜브 뮤직’ 서비스를 각각 따로 판매하지만, 한국 시장에서만 결합 판매를 하고 있다. 육 처장은 “해당 사건의 결론은 아마 내년에야 날 수도 있다”며 “내년이 되면 현재 국내 스트리밍 시장에서 1~2위 사업자인 멜론과 유튜브 뮤직의 점유율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 “소수 거대 플랫폼만 규제… 전체 플랫폼 생태계엔 도움 될 것”
공정위는 플랫폼법 제정을 통해 이런 시장 지배적 지위 판단에 드는 기간을 단축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육 처장은 “사전에 거대 플랫폼 사업자를 미리 지정해 두고, 반칙 행위가 발생하면 경쟁 제한성 판단으로 바로 돌입하겠다는 것”이라며 “규제 대상 플랫폼 업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을 것”이라고 했다. 즉 ‘사전 지정, 사후 규제’ 체제다. ‘타다 금지법’처럼 렌터카를 이용해 여객운송업 시장에 들어오려는 것을 사전 금지해 아예 진입을 봉쇄한 것과는 형태가 다르다는 것이다.
다만 어떤 업체가 규제 대상이 될지에 대한 기준은 아직 관계 부처가 정립 중이다. 매출액이나 이용자 수, 시장 점유율 등의 정량 변수들이 한국 시장에 맞게 적절히 조합될 것으로 보인다. 남동일 공정위 경쟁정책국장은 “플랫폼 시장의 형태가 지속해서 변할 테니, 규제 대상 지정 업체는 영속적인 것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시장 상황을 반영해 신규 지정과 제외 등 작업이 수시로 이뤄지는 시스템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 집행은 국내·외 사업자에 차등을 두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육 처장은 “플랫폼 독과점 규율은 국내·외 사업자를 구분하지 않을 것”이라며 “경쟁법의 역외적용은 글로벌 스탠다드이며, 한국 공정위도 구글을 제재하는 등 이미 다수의 집행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법령상 국적에 따른 차별 없이 국내-해외 사업자 간, 해외-해외 사업자 간 동일한 기준·절차를 적용해 ‘내국민 대우’나 ‘최혜국 대우’ 등 논란을 불식시킬 것”이라고 했다.
플랫폼법 적용 대상 사업자로 지정되면, 그 즉시 ▲자사 우대 ▲끼워 팔기 ▲멀티호밍 제한 ▲최혜대우 강제 등 4가지 행위가 금지된다. 육 처장은 “플랫폼 시장 특성상 반칙 행위를 해서라도 시장 초기 선두 사업자가 돼야 한다는 유인이 굉장히 강하게 작용한다”며 “반칙 행위 중 예외 없이 위법성과 경쟁 제한성이 인정된 위 네 가지 행위에 대해선 엄격히 금지할 것”이라고 했다.
공정위는 결국 이런 규제 시스템이 플랫폼 산업 생태계 전반에 도움이 되는 것이란 입장이다. 육 처장은 “반칙 행위를 차단해 자유로운 경쟁과 신규 진입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오히려 성장을 촉진하고 산업 생태계를 발전시키는 것”이라며 “국민들의 상식에 부합하는 소수 거대 플랫폼 사업자에 한한 플랫폼 시장 교란 행위 금지법”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해 12월 19일 국무회의를 통해 플랫폼 독과점 폐해 방지를 위한 플랫폼법 제정 추진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조만간 조문화 작업 등이 마무리돼 구체적인 법안이 베일을 벗을 전망이다. 법 적용 대상이 주로 해외 거대 플랫폼 업체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공정위는 이번 주 중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회원사를 만나 관련 의견을 청취한단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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