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지구온도 상승폭 ‘1.5도’ 넘는다는데, ‘파리협정’ 실패한 건가요?

박기용 기자 2024. 1. 2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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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쫌’ 아는 기자들
게티이미지뱅크

A. 2024년이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가 될 것이란 전망이 많습니다. 지난해 지구 기온은 세계기상기구(WMO) 관측치 기준, 산업화 이전 시기인 1850~1900년보다 1.45도 높았습니다. 직전 기록인 2016년을 제치고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로 기록되기도 했죠. 인류가 초래한 기후변화에 엘니뇨가 더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지난해 5월부터 발달한 엘니뇨는 올해 초까지 이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올해는 지구 기온 상승폭이 1.5도를 넘을 것이 거의 확실시 됩니다.

‘1.5도’는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을 피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정한 일종의 마지노선입니다. 2015년 체결된 파리기후협정으로 전 세계는 힘을 합쳐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치를 1.5도 이내로 제한하자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2016년 이후 2017년, 2019년, 2020년, 2023년에도 지구 기온 상승폭은 산업화 이전보다 1.5도를 넘은 기간이 한 달 이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파리협정에서 정한 1.5도 내 억제 목표 달성은 이미 실패한 걸까요?

파리협정엔 ‘기온 상승을 1.5도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추구한다’라고 돼 있을 뿐, 지구 기온의 상승폭, 즉 지구 온난화의 수준을 정의하는 공식적 합의 방식이 없습니다. 1.5도를 넘는다는 게 대체 어떤 경우를 말하는지가 없는 것이죠. 올해가 지나면 아마도 1년 단위로 1.5도를 넘는 경우가 잦아질 겁니다. 세계기상기구 예측으로는 향후 5년 간 1.5도를 1년 이상 초과할 확률이 66%라고 합니다. 이러니 누군가 기준을 세워 기후협약이 정한 1.5도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래서 지금 그 수준을 넘긴 것인지 아닌지를 명확히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가장 최근 발간한 6차 평가 보고서(AR6)를 보면 지구 기온 상승폭을 ‘20년 평균으로 계산한다’고 정의합니다. 1년 단위로 계산하면 여러 이유로 수치가 오르락내리락하니 적어도 20년 정도는 두고 봐야 한다는 겁니다. 실제 엘니뇨 같은 기상현상이나 대규모 화산폭발이 일어나면 그해 기온은 튀기도 하고 다시 내려오기도 합니다. 이런 일시적 자연현상과 분리해 인류가 초래한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선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죠.

문제는 이러면 ‘경보’ 역할을 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지구 기온이 계속 상승한다고 보면, 어떤 해에 1.5도를 넘긴 뒤 그 추세대로 10년이 더 지나면, 그 10년 뒤의 시점에서 지난 20년을 평균했을 때 그 값이 1.5를 넘겼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1.5도를 넘긴 해는 그 20년의 중간지점이 되는 것이죠. ‘평균’이니까. 올해 1.5도를 넘길 가능성이 높은데, 이대로 향후 10년 동안 계속 1.5도를 넘긴다면 우리는 10년이 지난 2034년에야 1.5도라는 지구 한계점을 2024년에 넘어섰다는 ‘확실한 결론’을 얻게 됩니다.

인지와 대응에 있어 그만큼의 지연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책적 목적으로 기후변화의 수준을 판단할 다른 지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 지표는 과학적 신뢰를 위해 기존 아이피시시의 관행(20년 평균)과 일치해야하며, 국제사회의 공인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1.5도라는 지구 한계를 지체 없이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와 관련 영국 기상청 해들리센터의 센터장이자 엑세터대 교수인 리처드 베츠 박사 등은 지난해 12월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쓴 기사에서 지난 10년의 관측치와 향후 10년의 기후모델 예측치를 혼합해 평균한 값을 ‘현재 지구 온난화 수준’(CGWL)이라는 지표로 제안했습니다. 지난 10년은 세계기상기구의 세계기후현황보고서에 담긴 관측 자료를 쓰고, 향후 10년 예측치는 아이피시시가 평가한 온난화 속도와 세계기상기구의 10년 예측치를 사용하는 겁니다. 이를 통해 1.5도를 넘긴 해에 향후 10년 기후모델 예측값을 따져 그 해를 중심으로 20년 평균치가 1.5도를 초과할지 계산해내는 것이죠. 이렇게 하면 누군가가 ‘현재 지구 온난화 수준이 1.5도에 도달했거나 이를 초과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 향후 몇 년 뒤 지구 온난화 수준은 1.5를 초과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고 발표할 수 있을 겁니다. 베츠 박사는 이 지표 개발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불필요한 1.5도 초과 논쟁이 시작되기 전에 말이죠.

기후변화 ‘쫌’ 아는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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