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짝도 안 맞던 중국차, 수출 세계 1위 비결은 '차이나 스피드' [박일근의 이코노픽]
전기차 대전환 전략
부품 업체 10만 개
R&D 인력 700만 명
기업가 애국심도 한몫
편집자주
다양한 경제, 산업 현장의 이슈와 숨겨진 이면을 조명합니다.
“문짝도 안 맞아요. 운전 중 바퀴가 빠질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중국 자동차는 이런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어느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동차를 수출하는 나라가 됐다.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19일 “지난해 자동차 수출이 전년 대비 58% 증가한 491만 대를 기록, 세계 1위에 올랐다”고 공식 확인했다. 그동안 이 자리를 지켜온 일본의 작년 자동차 수출은 430만 대에 그쳤다.
물론 착시도 있다. 중국 수출 실적에는 외국 브랜드가 중국 공장에서 생산해 수출한 것까지 포함돼 있다. 테슬라가 중국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차만 30여만 대다.
그럼에도 중국 자동차를 더 이상 얕잡아 봐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세계 자동차 역사에서 이렇게 단기간에 수출 1위 자리에 오른 전례는 없다. 일각에선 ‘차이나 스피드’란 평가도 나온다. 10여 년 전 현대자동차가 중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려갈 때 나온 ‘현대속도’가 떠오르는 표현이다. 중국 자동차 굴기의 비결은 무엇일까. 우린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1. 전기차 대전환 전략
선택과 집중이 주효했다. 중국 정부는 전통적인 내연기관으론 독일 일본 한국 미국 등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보고 대신 전기차를 집중 육성하는 전략에 승부를 걸었다. 2007년부터 10년 넘게 과학기술부장(장관)으로 이 과정을 주도한 이가 완강 중국과학기술협회 주석이다. 중국 경제를 도약시키면서 석유 수입을 줄여 달러도 아끼고 환경까지 지킬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에너지 절감 및 신에너지차 산업발전 계획’이 발표된 건 2012년이다.
이후 배터리와 전기차 업체엔 막대한 정부 보조금이 지급됐다. 업계에선 총 64조 원도 넘는 것으로 추산한다. 나아가 번호판 발급을 통해 전기차 구매를 유도했다. 중국에서 자동차를 살 때 가장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번호판이다. 베이징 등에선 내연기관 자동차에 대한 번호판 발급은 까다롭게 제한하는 반면 전기차 번호판은 곧바로 발급하는 식으로 전기차 수요를 진작했다.
이 결과 중국은 지난해 총 3,016만 대의 자동차 생산 중 신에너지차(순수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수소연료전지차)가 무려 959만 대에 달하는 전기차 천국으로 변신했다. 이는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최대 자동차 수출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전기차 덕분이다. 2023년 중국 자동차 수출량 491만 대 가운데 120만 대가 신에너지차다. 일본의 전기차 수출은 미미하다.
중국 전기차 굴기를 대표하는 기업은 비야디(BYD)다. 이미 2년 전 내연기관차 생산 중단을 선언한 뒤 순수 전기차와 하이브리드만 생산하고 있는 비야디의 지난해 판매량은 302만 대에 달했다. 지난해 4분기에 이어 2024년 연간 기준으로도 미국의 테슬라를 넘어 세계 1위 전기차 업체가 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2. 차 부품 업체 10만 개
경쟁력은 경쟁에서 나온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가격은 떨어지고 품질은 올라간다. 특히 자동차는 1만~3만 개의 부품을 조립해야 하는 만큼 부품업체의 경쟁력이 완성차의 격을 좌우한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업계에선 우리나라 전체 자동차 부품 업체를 1만1,000개 안팎으로 보는데 중국은 10만 개도 넘는다”며 “더구나 이 가운데 미래차 부품을 만드는 비중이 우린 5%인데 중국은 14%나 된다”고 밝혔다. 단순 계산하면 중국의 미래차 부품 업체 수는 1만4,000개, 우리나라는 550개 안팎이다. 중국의 미래차 부품 업체가 우리나라 전체 자동차 부품 업체보다 많다.
중국의 완성차 업체 수도 150개가 넘는다. 시장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수많은 글로벌 기업과의 합작을 통해 성장해 온 결과기도 하다. 중국은 자동차 선진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 외국 회사의 100% 지분 투자 진출을 막고 중국 현지 업체와의 합작 투자만을 허용했다. 2년 전 이를 폐지한 건 그만큼 자신감이 생겼다는 반증이다. 이어 자동차 산업 구조조정에 착수, 효율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올해 중국에서 나올 신차는 160종이나 된다.
3. R&D 인력 700만 명
양적 성장뿐 아니라 질적 성장에도 힘을 기울였다. 연구개발(R&D) 인력과 투자 규모는 인해전술을 방불케 한다. 중국 국가통계국과 업계에 따르면 2006년 150만 명이었던 전체 연구개발 인원은 2020년 523만 명까지 급증했고 지금은 700만 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의 연구보조원을 포함한 R&D 인력은 총 81만3,763명(2022년 기준)이다.
더구나 지난해 중국의 전체 R&D 투자는 3조3,378억 위안(약 620조 원)을 기록했다. 이 중 자동차 산업의 정확한 R&D 인원과 투자 규모를 확인하긴 어렵다. 다만 2022년 자동차제조업 R&D 투자는 1,652억 위안(약 30조 원), 계산기및통신기타전자설비제조업은 4,099억 위안(약 76조 원)으로 발표된 바 있다. 미래 자동차엔 다양한 분야의 최첨단 기술이 모두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막대한 중국 R&D 투자는 예의 주시해야 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비야디의 R&D 직원만 해도 9만 명에 달한다. 더 무서운 건 R&D 투자 증가 속도다. 2021년 비야디의 R&D 투자는 100억 위안(약 1조8,000억 원)을 넘었는데 왕촨푸 비야디 회장은 16일 “향후 1,000억 위안(약 18조 원)을 투자, 스마트화 전환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4. 업종 간 경쟁과 협력
업종 간 장벽을 뛰어넘는 경쟁과 협력이 활발하다는 점도 주목된다. 가성비 휴대폰과 정보기술(IT) 제품들을 통해 ‘대륙의 실수’로 불리는 샤오미가 지난달 중국 베이징에서 첫 전기차 SU7을 공개한 게 대표적 사례다. 올 상반기 중 출시될 SU7은 한 번 충전으로 800㎞를 주행할 수 있고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에 도달하는 제로백이 2.78초에 불과하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사실 전기차는 ‘바퀴 달린 스마트폰’이나 마찬가지인 만큼 휴대폰 업체나 IT 기업이 진출하는 게 이상할 건 없다. 애플도 이미 전기차를 개발하고 있다. 중국 통신설비업체 화웨이도 2021년 자동차 브랜드 아이토를 발표하고 화웨이 운영체제(OS)를 탑재한 전기차 M5, M7, M9을 출시했다. 자동차 생산은 철수 의사를 밝혔지만 OS 사업과 중국 전역에 10만 개 이상의 초고속 충전기를 설치하는 계획은 확대하고 있다.
중국 최대 검색 서비스 업체 바이두도 10년 이상 자율주행차와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바이두의 기술력은 인텔과 구글에 이어 세계 3위로 평가된다. 이미 중국 10개 도시에선 자율주행 택시까지 운행되고 있다.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는 다시 자율주행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데 활용돼 중국 차의 경쟁력을 높여주고 있다. 테스트베드가 넓고 업그레이드도 빠르다.
리샹, 샤오펑, 웨이라이 등 전기차 스타트업들의 성장세도 놀랍다.
5. 광물에서 시장까지
중국 전기차 산업은 광물부터 시장까지 모든 걸 갖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전략 광물인 리튬 니켈 망간 흑연 코발트 인광석 등 대부분은 중국에서 생산된다. 우리나라도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자동차 배터리 제조 강국이긴 하나 배터리 4대 소재 원재료의 중국 의존도는 90% 안팎으로 심하다. 중국이 갑자기 공급을 끊으면 대체할 방법이 없다.
닝더스다이(CATL)는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 30%를 자랑한다. 테슬라뿐 아니라 현대차에도 납품한다. 비야디는 CATL과 함께 중국 배터리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비야디는 원래 배터리 회사로 출발, 배터리는 물론 모터, 전자 제어에 이어 완성차까지 직접 생산하는 수직 계열화를 구축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
더 중요한 건 시장이다. 중국은 이렇게 만든 전기차를 팔 충분히 큰 내수 시장도 있다. 그럼에도 해외 200여 곳으로 수출한다. 미국과 유럽이 관세 장벽으로 방어에 나섰지만 가격이 30% 이상 저렴해 관세를 물어도 경쟁력이 있다. 현지화나 자유무역협정을 통한 우회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6. 기업가 정신과 애국심
중국 전기차 창업주의 기업가 정신과 애국심도 빼놓을 수 없다.
1966년 중국 안후이성에서 태어난 왕촨푸 비야디 회장은 중난대에서 야금물리학을 전공한 뒤 1995년 사촌형에게 자금을 빌려 회사를 세웠다. 주로 휴대폰 배터리를 생산하던 왕 회장은 2003년 정부 방침에 호응해 국영기업 시안진촨자동차를 인수하며 차 산업에 뛰어들었다. 마침 왕 회장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지분 10%를 투자한 게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다. 왕 회장이 2022년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 중단을 선언한 것도 정부 정책에 맞춘 행보였다.
중국의 스티브 잡스와 애플을 꿈꾸며 샤오미를 세운 레이쥔 회장도 애국심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 1969년 후베이성 출생인 레이 회장은 우한대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한 뒤 2010년 7명의 파트너와 샤오미를 창업했다. 좁쌀을 뜻하는 샤오미가 사명이 된 건 마오쩌둥과 인민해방군이 대장정 기간 묽은 좁쌀죽과 소총으로 온갖 어려움을 견뎌내고 대륙을 통일한 정신을 본받자는 뜻이 있다. 샤오미가 인민해방군 상징 별과 군복을 입은 마스코트를 사용하는 것도 이런 배경이다.
한국, 차 소프트웨어 강화해야
어느새 우뚝 선 중국 전기차는 이제 전 세계에서 한국 자동차와 진검 승부를 벌일 기세다. 중국의 인해전술과 규모의 경제로 볼 때 객관적 상황은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전기차로 대전환을 이뤘지만 우린 전기차에만 올인해도 부족한데 내연기관, 전기차, 하이브리드, 수소연료전지차까지 다 하겠다고 한다”며 “국내 시장은 사실상 현대차·기아의 독점 구조라는 점도 한계이고 공대 이기주의와 소프트웨어 세력의 밥그릇 싸움에 대응이 늦어지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 원장은 “앞으로는 전기차가 하나의 플랫폼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서 중국이 앞서가고 있다는 게 큰 위협”이라며 “전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보면 미국 비중은 10%밖에 안 되는 만큼 미국에만 올인하지 말고 민관이 모두 정신 차리고 힘을 합쳐 새로운 전략과 경로, 고급화와 차별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필수 한국전기자동차협회장(대림대 교수)은 “중국 자동차 중엔 이미 우리나라 부품과 내장재를 쓰는 차도 많아 가격은 물론 품질, 성능까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고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 적용 등은 우리보다 앞서 있다”며 “허용되는 것만 나열하는 규제 일변도의 포지티브 정책을 금지된 것 외에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정책으로 전환해 혁신을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중국 자동차 산업은 과감한 R&D 투자를 통해 급성장했는데 우린 미래차부품산업특별법을 제정하면서도 R&D 예산을 줄여야 한다며 미래 모빌리티 현장인력 양성 프로그램까지 없애는 모순되고 미련한 짓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미래 자동차는 결국 소프트웨어의 싸움인 만큼 이 부분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한국 자동차는 결국 하청 기업이나 변방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박일근 논설위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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