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예산이 어린이도서관을 잡아먹었다
[세상읽기] 임재성│변호사·사회학자
한국은 폐회로티브이(CCTV)의 나라다. 2002년 서울 강남구에 방범용 시시티브이 5대가 설치된 것이 공공기관 운용 시시티브이의 시작이었다. 5대로 시작한 공공 시시티브이는 불과 20여년 만에 150만대를 넘어섰다. 시시티브이 최대 감시국이라 알려진 중국, 영국에 비견되는 세계 최상위권 수준이다.
‘다른 나라도 다 이렇게 하는 거 아니냐?’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의 지독한 시시티브이 선호는 예외적이다. 한국과 비슷한 엄벌주의 형사정책을 시행하는 미국도 이런 정도는 아니다. 뉴욕은 서울 2배 크기이지만 공공 시시티브이 수는 서울보다 적다. 한국은 왜 이렇게 시시티브이를 사랑할까?
한국 사회에서 시시티브이 확산의 가장 큰 동력은 범죄 예방에 대한 ‘믿음’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2018년 보고서에 실린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9%가 ‘공공 시시티브이가 범죄 예방 효과를 가진다’라고 응답했다. 지난 20년간 시시티브이는 한국 범죄 예방 정책의 상징이었다.
시민들의 압도적 믿음에 부응하며 정책결정권자들도 시시티브이 확대를 외쳐왔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8월 서울 신림동 등산로에서 발생한 강간살인 사건 현장을 찾아 “감시 사각지대를 없애고 범인들의 범죄 욕구가 자제되도록 인공지능 시시티브이 등을 최대한 많이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배포된 서울시 보도자료 내용이다. “공원·등산로 등 안전취약 지역에 (…) 시시티브이 1만여대 신규 설치” “묻지마 범죄 막는다.” 그런데 차분히 생각해보자. 무차별 범죄자가 시시티브이를 신경 쓸까?
필자는 우리 사회의 시시티브이 만능주의에 반대한다. 통념과 정반대로 시시티브이의 범죄 예방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데다,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시시티브이에 예산이 과도하게 쏠려 다른 정책들이 희생되기 때문이다.
먼저, 범죄 예방 효과 측면. 범죄가 일어난 뒤 범인 체포에 시시티브이가 효과적이라는 점에 이견이 있을 리 없다. 문제는 예방이다. 국내외 많은 실증적 연구들은 절도와 같은 재산범죄에는 시시티브이가 어느 정도 예방효과가 있지만, 폭력범죄 특히 성범죄에 있어서는 예방 효과가 없다고 분석한다. 신림동 강간살인 사건 유족과 시민들은 범인을 잡으라는 것이 아니라 성범죄를 막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앞선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서울시장 등 정책결정권자는 엉뚱한 해법을 내놓고 있는 꼴이다.
같은 범죄이지만, 절도와 성범죄는 동기와 구조가 전혀 다르다. 재산범죄를 막는 수단으로 모든 범죄에 대응할 수는 없다. 현장 정책만 해도 조도를 높이거나, 순찰을 강화하거나, 자율방범대를 증원하는 등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그러나 시시티브이 만능주의 속에서는 성범죄 역시 시시티브이 증설로 대책이 귀결되고, 필요한 조치가 끝났다는 인식이 만연해진다. 사회는 실패하고, 비극이 반복된다.
다음으로, 과도한 시시티브이 선호 문제. ‘예방 효과가 증명되진 않았어도 시시티브이 있으면 좋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정책은 결국 돈이고 기회비용이다. 한정된 자원의 투입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정치고 정책이다.
서울 관악구는 지난해 말 관내 ‘책이랑 놀이랑’이라는 도서관을 폐쇄했다. 관악구에 2곳뿐인 아동놀이공간(키즈카페)이 딸린 도서관이었기에 많은 유아와 아동들이 찾던 곳이다. 지난해 7~8월 신림역 무차별 살인 사건과 신림동 등산로 강간살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관악구청은 시시티브이 증설을 추진했고,그 결과 어린이도서관이 폐관돼 시시티브이 관제센터로 바뀌었다. 관악구는 2027년까지 시시티브이 8천여대를 추가하겠다고 한다. 개당 구매·설치 비용이 2천만원이라면 1600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이 든다.
앞서 언급한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보고서의 결론 부분 한 대목. “우리 사회의 엄청난 자원이 시시티브이에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고 있다 보니 우리가 범죄 예방과 안전을 위해 더 나을 수 있는 사업과 정책을 개발하고 시행하는 데 투입할 자원이 고갈되고 크게 부족해지는 문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신림동 등산로 강간살인 사건 피해자 유족 또한 최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오세훈 시장이 말한 시시티브이 증설은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쉽게 무언가 한 것처럼 보이는 관성을 돌아봐야 한다. 시시티브이 만능주의 20년을 차분히 점검해야 한다. 시시티브이가 더 많은 어린이도서관을 잡아먹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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