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카디프 센트럴 광장 우뚝 솟은 흑인 여성 동상 '베티 캠벨'[통신One]

조아현 통신원 2024. 1. 24.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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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교육 시스템 구축한 교육자…대영제국훈장 수여
"세계 어디서 왔든, 피부색 어떻든 우린 어울려 살 수 있어"
영국 웨일스 카디프 센트럴 광장에 세워진 흑인 여성 베티 캠벨(Betty Campbell) 동상. ⓒ News1 조아현 통신원

(카디프=뉴스1) 조아현 통신원 = 영국 웨일스의 수도 카디프를 찾아오는 여행객들이 카디프 센트럴역에 기차를 타고 도착하면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는 흑인 여성 동상이 하나 있다.

역사 정문으로 나오면 왕복 2차선 너머로 보이는 영국 중앙정부 소속 웨일스 담당 장관 오피스 건물이 있는데 그 앞에 우뚝 솟은 여인의 조각상은 카디프에 도착한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카디프의 현관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센트럴 광장에 세워진 이 동상은 약 4m 높이의 대형 작품이다.

동상을 살펴보면 흑인 여성의 얼굴과 풍성한 머리카락 밑으로 참나무 기둥이 이어진다. 그 주변들 둘러싼 어린 아이들은 책을 보거나 손을 맞잡고 서로의 눈을 바라본다.

베티 캠벨의 얼굴 아래에는 참나무와 이를 둘러싼 아이들의 다채로운 모습이 함께 조각상을 이루고 있다. ⓒ News1 조아현 통신원

나무 뒤편에는 "우리는 어디서 왔든, 피부색이 어떻든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가 됐습니다. (We were a good example to the rest of the world, how you can live together regardless of where you come from or the colour of your skin.)" 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흉상 주인공이 생전에 남긴 말이다.

조각상 뒤편에는 흑인 문화 교육과 다문화 가치를 전파한 베티 캠벨이 생전에 남긴 메시지가 적혀있다. ⓒ News1 조아현 통신원

조각상의 주인공은 영국 웨일스에서 최초로 흑인 여성 학교장이 된 베티 캠벨(Betty Campbell)이다.

평생동안 다문화 교육과 다양성 존중의 가치를 전파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온 교육자이자 지역사회 운동가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넬슨 만델라가 1998년 웨일스를 방문했을 때도 베티와 만나기를 먼저 요청해 둘의 만남이 성사되기도 했다.

베티는 1934년에 타이거 베이라고 불리는 카디프 항만 지역에 자메이카인 아버지와 웨일스계 바베이도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교사를 꿈꿨지만 1940년대에 흑인과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그에게 세상은 냉담했다.

항상 반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던 베티는 당시 교장 선생님에게 자신도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하자 "이런, 그 문제는 네가 극복할 수 없을 거야(the problems would be insurmountable)"라는 대답을 듣는다.

베티는 학교 책상에 엎드려 눈물을 쏟았다. 베티는 과거 BBC를 비롯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 때)학교에서 울기는 처음이었어요. 하지만 그 일이 나를 더욱 결의하게 만들었죠"라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1960년 처음으로 여성을 입학시킨 카디프 교사 훈련대학에 합격했다. 그 해 입학한 여학생 6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교사 훈련대학에 지원할 무렵 베티는 이미 자녀 셋을 둔 엄마였지만 교육자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베티는 꿈에 그리던 교사가 된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인 뷰트타운에 있는 마운트 스튜어트 초등학교에서 28년동안 아이들을 가르친다. 1973년에는 웨일스에서 흑인 여성 최초로 학교 교장직에 오른다.

그는 학교 교육 과정에 흑인 문화 수업을 추가하고 매년 10월을 ‘흑인 역사의 달’로 지정해 교육 캠페인을 추진하는데도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그가 창설한 다문화 교육 시스템은 영국 전역 학교에 본보기가 될 정도로 전국적인 영향을 미쳤고 지난 2003년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왕실로부터 대영제국훈장(MBE)을 수여받았다.

베티는 영국 내무부의 인종 자문위원회와 인종 평등위원회 위원, 웨일스 방송위원회 위원, 카디프 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 사회의 영향력도 키워갔다.

베티는 지난 2017년 82세의 나이에 노환으로 뷰트타운에 있는 자택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생애는 2018년 공공기념물 및 조각협회(PMSA)가 실시한 조사에서 영국 전역에 설치된 조각상 가운데 여성 조각상은 남성 조각상에 비해 규모가 5분의 1에 불과하고 대부분 신화에 나오거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가상의 인물이라는 데이터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재조명 받는다.

2019년 BBC는 더 이상 가상의 인물이 아닌 실존한 여성 동상을 세운다는 취지를 담아 '숨겨진 영웅들'이라는 공개 투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웨일스에서는 업적을 남긴 실존 여성을 모델로 이름이 함께 새겨지는 최초의 동상이었다.

영국 웨일스 카디프 센트럴 광장에 세워진 웨일스 최초의 흑인 여성 교장인 베티 캠벨(Betty Campbell) 동상. ⓒ News1 조아현 통신원

이 프로젝트는 카디프와 웨일스 전역에서 뜨거운 관심을 얻었고 베티는 다른 여성 후보자 4명을 큰 격차로 누르고 공개 투표에서 승리한다. 조각상은 2021년 9월 베티의 자녀들과 손주들도 참석한 가운데 야외 제막식을 통해 공개됐다.

베티 동상 설립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웨일스 정부는 영국 최초로 흑인, 아시아인을 포함한 다양한 소수 민족의 역사와 그들이 사회 공동체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수업을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시키고 이를 의무화했다.

개정된 관련 교육 과정은 지난 2022년부터 시행 중이다.

웨일스와 카디프를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할 베티 캠벨의 동상이다.

도심 속 많은 행인과 여행객들이 조각상 속 여인이 누구인지 궁금해 하다가도 이내 발걸음을 다시 재촉하곤 한다. 하지만 제작 배경과 과정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동상이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다면 그가 생애에 걸쳐 보여준 불굴의 의지와 차별에 맞섰던 열정을 조금이나마 느껴 보길 바란다.

세상이 나에게 안된다고 매몰차게 대할 때 오기가 담긴 행동과 집념이 이처럼 많은 것을 바꾸기도 하니 말이다.

tigeraugen.c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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