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안 따랐다? '고거전'이 비판받는 진짜 이유
아이즈 ize 이덕행 기자
KBS 2TV '고려 거란 전쟁'을 둘러싼 원작자와 제작진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원작자인 길승수 작가는 하루 만에 두 차례 입장을 밝히며 제작진에게 "사태를 거짓으로 덮으려 하지 말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KBS 측은 '고려거란전쟁' 탄생기를 공개하며 길승수 작가의 '고려거란전기'와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별개의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시청자들은 제작진보다 길승수 작가의 의견에 더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그러나, 단순히 원작 소설을 따라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원작자의 손을 들어주는 건 아니다.
'고려거란전쟁'은 2차 여요 전쟁이 마무리된 16화를 기점으로 크게 변화했다. 양규와 김숙흥의 강렬한 최후는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이후 펼쳐질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이후의 전개는 시청자들의 예상과 달랐다. 몽진에서 돌아온 현종은 호족 세력 개혁에 나섰는데 이 과정에서 현종, 강감찬, 원정왕후 등 주요 캐릭터들이 이전과는 다른 행동을 보인 것이다.
이에 길승수 작가가 자신의 블로그에 작심한 듯 비판의 글을 남겼다. 길 작가는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숙지하고 자문도 충분히 받고 대본을 썼어야 했는데 숙지가 충분히 안 되었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제작진은 곧바로 이를 반박했다. 전우성 PD는 "'고려거란전기'는 이야기의 서사보다 전투 상황의 디테일이 풍성하게 담긴 작품이다. 꼭 필요한 전투 장면을 생생하게 재현해 보고자 길승수 작가와 원작 및 자문계약을 맺었고 극 중 일부 전투 장면에 잘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정우 작가 역시 "원작 계약에 따라 원작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이 소설은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태동시키지도 않았고 근간을 이루지도 않는다. 이 드라마는 분명 1회부터 원작에 기반하지 않은 별개의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제작진보다는 길승수 작가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길 작가의 의견에 동조하는 이유는 단순히 원작 소설의 내용을 따라가지 않아서가 아니다. 길 작가 역시 '드라마가 원작의 내용을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다는 게 기본적인 소신'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건 역사 왜곡에 가까운 내용들이 추가되면서 불필요하게 분량이 늘어지며 그동안 쌓아왔던 캐릭터들의 특징이 무너져 내린 데에 있다
최근 가장 많은 비판을 받은 장면은 호족 세력 개혁과 관련된 부분이다. 몽진 과정에서 당한 수치로 인해 현종이 지방 자치 제도 확립에 대한 의지를 다진다는 스토리라인은 개연성이 충분하지만, 이를 지나치게 확장하다 보니 여러 인물들의 캐릭터성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황위에 등극했지만 자신의 뚜렷한 소신을 가지고 있던 현종은 '금쪽이'가 됐고 현종과 몽진길을 함께하고 아이를 유산하는 아픔을 겪었던 원정황후는 질투심에 눈이 멀어버렸다. 신하들을 규합하기 위해 자신을 내치라고 청했던 유진의 충심도 희미해졌으며, 강감찬 역시 전쟁밖에 모르는 바보가 돼버렸다.
시청자들의 반발이 더욱 거센 건 '고려거란전쟁'이 가진 장르의 특수성 때문이다. '고려거란전쟁'은 퓨전 사극이 아닌 대하사극이다. 작가의 상상력에 따라 여러 갈래로 바뀔 수 있는 퓨전사극과 달리 대하사극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한 철저한 고증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바탕에 깔려있다. 실제로 '고려거란전쟁'이 방송 초반 화제성을 모을 수 있던 건 철저한 고증과 역사적 사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황후들의 궁중암투, 전국의 호족이 모인 비밀 결사 등 지나친 각색이 들어가며 실망을 안겼다.
원작 소설과는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제작진의 주장과 드라마가 원작의 내용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원작자의 의견에는 하나의 대전제가 깔려있다. 기본적으로 대하 사극은 역사적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의 '고려 거란 전쟁'은 충실하게 역사를 담아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도 설득시키지 못하고 있다.
'고려거란전쟁'은 2차 전쟁을 이끌었던 양규가 작품의 초반부를 담당하고 작품의 하이라이트인 귀주대첩을 이끄는 강감찬이 작품의 후반부를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전쟁과 전쟁 사이인 지금 시점에는 현종이 성군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지금의 서사는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김훈·최질의 난, 3차 전쟁 이전 거란과의 국지전, 개경까지 밀고 들어온 거란군과 몽진대신 항전을 택한 현종 등 귀주대첩 이전에 보여줘야 할 이야기가 많이 있고 이를 통해서도 현종의 성장을 보여줄 수 있음에도 많은 캐릭터를 뒤틀면서까지 호족 개혁의 비중을 높였어야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제작진은 여러 차례 제작비와 분량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극 초반에는 시청자들 역시 이를 이해했다. 일부 장면이 생략되고 전투신의 규모가 빈약해 보였을 때는 제작진보다 더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시청자들에게선 불필요한 부분에 제작비와 분량을 투입하면서 왜 제작비와 분량을 걱정하냐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내용이 서사에 꼭 필요하다는 것을 설득시키지 못한다면 제작비와 분량에 대한 제작진의 아쉬움은 공허한 외침이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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