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와의 전쟁서 이길 수 있을까
지난 2009년 노벨화학상은 ‘단백질 제조 공장’이라고 부르는 생체 분자 복합체인 리보솜의 구조를 밝힌 과학자 세 사람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그나마 덩치가 작은 박테리아 리보솜을 연구했는데 그럼에도 RNA 3개와 단백질 50여 개로 이뤄져 구성 원자 개수가 무려 22만여 개에 이르는 초거대 복합체다.
리보솜은 큰 단위체와 작은 단위체로 부르는 두 덩어리로 이뤄져 있다. 수상자 가운데 미국 예일대 토머스 스타이츠는 2000년 큰 단위체 구조를,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의 아다 요나스와 영국 MRC분자생물학연구소의 벤카트라만 라마크리슈난은 같은 해 작은 단위체 구조를 밝혔다. 참고로 전체 리보솜의 구조는 2005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도드너 케이트 교수팀이 규명했다.
국내에서는 리보솜 구조 연구의 원조이자 노벨상 수상자로 드문 여성 과학자인 요나스 박사가 화제가 됐고 그래서인지 여러 차례 방한하기도 했다. 그런데 세 사람 가운데 가장 늦게 리보솜 구조규명 경쟁에 뛰어들었고 따라서 인지도도 낮은 라마크리슈난 박사가 2018년 ‘Gene Machine(유전자 기계)’이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펴냈다. DNA 구조 연구 상황을 그린 제임스 왓슨의 ‘이중나선’이 연상돼 읽어보려고 했지만 차일피일하다 잊어버렸다.
● 항생제 결합한 구조 밝힌 덕 봐
그런데 얼마 전 한 논문을 보다 참고문헌에서 이 책을 발견했고 읽을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사봤다. 책 내용은 ‘이중나선’만큼이나 흥미로웠는데 다만 전자가 냉소적인 시선에서 유머러스한 에피소드를 많이 담고 있다면 이 책은 연구 진행 과정 위주라 군데군데 어려운 내용도 꽤 있다(그래서인지 5년이 지났음에도 한글판이 나오지 않았다).
리보솜은 각 단위체가 따로 있다가 번역(단백질 제조)할 때 합쳐지므로 각각의 구조를 밝힌 한 사람씩 뽑아 노벨상을 주면 좋은 그림이 되겠지만 독자적으로 작은 단위체 구조를 밝힌 두 사람이 다 받고 대신 리보솜 구조를 밝힌 사람은 못 받은 건 그만큼 라마크리슈난의 업적이 뛰어남을 보여준다(만일 각 구조에 한 명씩 줬다면 작은 단위체 몫은 원조인 요나스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요나스 팀은 2000년 9월 1일자 학술지 ‘셀’에 작은 단위체 고해상도 구조규명 논문을 발표했고 라마크리슈난 팀은 20일 뒤인 9월 21일자 학술지 ‘네이처’에 논문을 실었다. 라마크리슈난 팀의 결과는 해상도가 3옹스트롬으로 요나스 팀의 3.3옹스트롬보다 좋았고 전체적인 완성도도 높아 그 뒤 작은 단위체 구조의 표준이 됐다. 지금까지 논문 인용 횟수도 2000회에 이른다(요나스 팀 논문은 1400회).
게다가 작은 단위체 구조규명 논문을 발표할 때 동시에 항생제 3종이 붙어 있는 상태의 구조를 밝힌 논문도 나란히 실어 깊은 인상을 줬다. 그리고 3개월 뒤 학술지 ‘셀’에 또 다른 항생제 3종이 붙어 있는 작은 단위체 구조를 실은 논문을 이어서 발표했다. 참고로 요나스 팀은 이듬해에야 항생제 2종이 붙어 있는 구조를 밝힌 논문을 발표했다.
리보솜 구조를 밝히는 건 생명과학의 위대한 성취이지만 의학에서도 중요한 업적이다. 항생제 절반이 박테리아의 리보솜에 작용해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구조 연구로 특정 항생제가 리보솜의 어느 부위에 개입해 기능을 교란하는지 명쾌히 밝히면 항생제 내성이 생기는 이유와 새로운 항생제 분자를 설계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보면 2000년 좋은 논문을 냈음에도 라마크리슈난은 여전히 신참자로 여겨져 노벨상 후보로 꼽히지 못했다(대신 오랫동안 리보솜 연구를 했고 2001년 리보솜 중해상도(5.5옹스트롬) 구조를 밝힌 산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 해리 놀러가 스타이츠, 요나스와 함께 받을 것으로 보였다).
만일 놀러가 리보솜 고해상도 구조까지 밝혔다면 그렇게 됐을 것이다. 책에서 라마크리슈난은 2001년 놀러 팀의 논문 내용이 실은 스타이츠의 큰 단위체 구조 데이터와 자신의 작은 단위체 구조 데이터를 짜깁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던 라마크리슈난이 리보솜 구조 연구의 권위자로 인식된 계기가 2001년 미국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에서 했던 대중강연이다. 연구소는 항생제 관련 연구가 대중의 관심을 끌 것이라는 판단에 리보솜 구조 관련 최초의 대중강연 연사로 라마크리슈난을 선택했다. 그 뒤 라마크리슈난은 mRNA와 tRNA가 달라붙은 리보솜 구조를 밝혀 번역의 분자 메커니즘을 제시하는 등 후속 연구를 이어갔고 결국 놀러를 제치고 수상자가 됐다.
● 그람음성균이 더 문제
항생제와 박테리아 리보솜의 관계가 분자 수준에서 밝혀졌음에도 새로운 항생제 개발에 획기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소위 슈퍼박테리아라고 불리는 항생제 내성균의 문제는 나날이 심각해져 이로 인한 사망자도 계속 늘고 있다. 특히 그람음성균 병원체가 골치다. 이들이 내성을 지니면 퇴치할 마땅한 항생제가 없기 때문이다.
박테리아는 그람염색이라는 처리를 통해 보라색을 띠는 그람양성균과 분홍색을 띠는 그람음성균으로 나뉜다. 이는 세포벽의 구조 차이에서 비롯한다. 그람양성균은 세포막 바깥에 펩티도글리칸으로 이뤄진 두꺼운 세포벽이 감싸는 단순한 구조다.
반면 그람음성균은 세포막 바깥에 얇은 세포벽이 있고 다시 외막이 감싸는 복잡한 구조다. 많은 항생제가 그람음성균의 이중으로 된 막을 제대로 뚫지 못한다. 리보솜은 세포 안에 있는 복합체이므로 이를 표적으로 삼는 항생제 역시 그람음성균에서는 효과가 미미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1968년 퀴놀론계 항생제가 나온 이래 지난 50여 년 동안 그람음성균에 효과적인 새로운 메커니즘을 지닌 항생제로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신약이 하나도 없다. 제약회사들이 연구를 게을리했다고 볼 수도 없는 게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무려 50만 가지 합성 화합물에서 대장균(그람음성균으로 대부분은 무해하지만 O157 같은 변종은 치명적이다)에 효과적인 분자를 찾았지만 실패했다.
슈퍼박테리아 가운데서도 CRAB(carbapenem-resistant Acinetobacter baumannii)로 불리는, 카바페넴 내성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가 특히 악명이 높다. 카바페넴은 페니실린처럼 박테리아의 세포벽 합성을 방해해 작용하는 항생제로 여전히 효과적이라 최후의 항생제로 불린다.
그런데 여기에도 내성이 있는 CRAB가 나타나면서 특히 면역력이 약한 입원 환자가 병원에서 감염되면 폐렴이나 패혈증으로 진행해 사망률이 50%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이다. 필자 주변에도 다른 병으로 입원했다가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례가 몇 건 있는데 CRAB와 관련된 경우도 있지 않을까 싶다.
● 지질다당류 수송 방해
지난주 학술지 ‘네이처’에는 CRAB에 효과적인 새로운 계열의 항생제 약물을 찾았다는 논문 두 편이 나란히 실렸다. 둘 다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와 미국 하버드대 공동 연구팀의 결과로 하나는 약물의 약리 효과를 다뤘고 이어지는 논문은 작용 메커니즘을 분자 수준에서 규명했다(앞서 라마크리슈난의 구조 연구와 같은 맥락이다).
연구자들은 묶인 MCP로 불리는 구조를 지닌 분자 4만5000여 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CRAB에 효과가 있는 분자를 발견했다. 이를 출발 물질로 삼아 구조를 조금씩 바꿔가며 효과는 커지고 동시에 용해도 등 물성이 개선된 분자들을 만들었고 최종적으로 선정된 분자를 조수라발핀(zosurabalpin)으로 명명했다.
조수라발핀은 특이하게도 아시네토박터에만 효과가 있고 세포 안이 아니라 밖(정확히는 세포막과 외막 사이의 공간인 주변세포질)에서 작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본 결과 조수라발핀의 공격을 받은 아시네토박터는 외막에 문제가 생긴 게 확인됐다. 그람음성균 외막 표면에 분포하는 지질다당류(LPS) 분자가 거의 없었다. 반면 세포막과 내부에 LPS가 잔뜩 있었다.
그람음성균은 세포막에서 만들어진 LPS를 단백질 사다리를 통해 외막으로 운반해 표면에 배치한다. 비유하자면 세포막과 외막이 각각 1층 침대와 2층 침대이고 둘 사이에 사다리가 놓인 셈이다. 조수라발핀은 LPS를 운반하려고 하는 단백질 사다리에 달라붙어 작동을 멈추게 한다. 그 결과 LPS가 세포막에 쌓이면서 생리가 교란돼 결국 아시네토박터가 죽는다.
연구자들은 단백질 사다리의 일부인 LptB2FG에 LPS와 조수라발핀을 넣고 극저온저온현미경으로 구조를 분석해 조수라발핀이 단백질과 LPS에 달라붙어 수송을 방해하는 메커니즘을 밝혔다. 약물이 아시네토박터에만 효과가 있는 이유는 인식하는 단백질 부위가 아시네토박터에 고유한 서열을 지녔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병원에서 감염된 환자에서 채취한 CRAB 시료 100여 개를 대상으로 약효를 시험했고 대부분 큰 효과를 보였다. 그러나 하나에서 효과가 미미했고 분석 결과 단백질 사다리 유전자의 변이로 아미노산 하나가 달라졌다는 걸 확인했다. 우연한 변이로 조수라발핀에 내성을 지닌 게 된 CRAB가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만 자연계에는 조수라발핀에 해당하는 천연 분자가 없어 반복된 노출로 인한 내성균이 나온 건 아니다. 따라서 조수라발핀을 잘 통제해서 쓰면 CRAB로 인한 죽음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현재 조수라발핀의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박테리아와 항생제(인간)의 싸움에서 결국은 박테리아가 이길 것이라고 말하고 실제 그런 쪽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박테리아에 감염하는 바이러스인 박테리오파지를 치료제로 쓰는 파지요법 같은 대안도 연구해야겠지만 더 해볼 게 없다는 항생제도 이번 연구처럼 여전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제2, 제3의 조수라발핀을 기대한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10권), 《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 《식물은 어떻게 작물이 되었나》가 있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