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욱은 왜 이런 생존법을 김혜준에게 전수한 걸까('킬러들의 쇼핑몰')
[엔터미디어=정덕현] "죽는 건 무서운 게 아니야. 저 사자 보이지? 쟤도 곧 죽을 거야. 근데 봐봐. 죽음을 앞둔 사자는 조용한데 재네들은 시끄럽지? 왜 그런 거 같아? 약한 놈들이 짖는 거야. 강하면 짖지 않아. 강해져야 해. 그래서 상대방이 짖게 만들어야지."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킬러들의 쇼핑몰>에서 어린 정지안(안세빈)에게 삼촌 정진만(이동욱)은 그렇게 말한다. 그들이 함께 보는 TV 동물다큐멘터리에서는 하이에나떼들에게 몰려 죽음을 앞둔 사자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무섭다고 말하는 어린 지안에게 진만은 무서워하지 말라며 "무서울수록 눈을 크게 뜨고 똑바로 바라 보라"고 한다.
이 장면은 <킬러들의 쇼핑몰>이 총알이 날아다니고 칼이 춤을 추며 피가 튀는 액션 스릴러를 통해 하려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건 적자생존의 정글 같은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세상은 도처에서 침을 흘리며 달려드는 하이에나들 같은 킬러들로 가득하고, 그들이 원하면 누구든 죽이고 얻을 걸 얻는 쇼핑몰 같은 곳이다. 그러니 스스로 지키고 살아내야 한다. 저들의 살벌한 이빨 앞에서도 무서워하지 말고 눈을 크게 뜨고 똑바로 바라 봐야 한다.
드라마는 그렇게 살벌한 이빨을 드러낸 일단의 킬러들에 포위당한 채 조금만 움직여도 저격수 이성조(서현우)가 쏜 총알에 죽을 수도 있는 상황으로 문을 연다. 지안(김혜준)은 성조가 쏜 총알이 자신의 얼굴을 스쳐 벽에 걸린 가족사진 액자를 박살내자 공포에 휩싸이고, 어깨에 부상을 당한 또다른 킬러 소민혜(금해나)는 피를 흘리며 떨어뜨린 자신의 총을 바라보고 있으며, 어린 시절 지안의 친구였던 배정민(박지빈)은 거실에 쓰러져 있다.
갑작스런 공격으로 담벼락 하나가 다 무너졌고, 스나이퍼의 공격은 물론이고 일단의 킬러들이 그 집으로 다가오는 절체절명의 상황부터 거두절미하고 드라마가 시작하는 건, 물론 시작부터 시선을 잡아끌려는 목적이 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위급한 상황과 거기에 대처하는 지안의 자세 자체가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라는 걸 말해주기도 한다. 도무지 총알을 피해 움직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순간, 지안에게 들려오는 삼촌 진만의 이야기 또한 그렇다.
"잘 들어 정지안. 니가 잠자리가 아닌 이상 인간의 눈으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볼 수 있다고 착각하면 안돼. 이 모든 공간에는 다 사각이 있어. 저 영화 주인공처럼 사각을 잘만 활용하면 불구덩이에서도 살아 돌아올 수 있어." 함께 영화를 보면서 지안에게 진만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걸 떠올린 지안은 빗자루에 거울을 붙여 내보임으로써 저격수가 그걸 쏘게 만든다. 여러 차례 높이를 바꿔 그걸 반복하면서 저격수의 사각을 찾아내려 하는 것. 그렇게 찾아낸 사각을 이용해 지안은 가까스로 소파쪽으로 몸을 날리고 소파 밑에 놓인 총을 집으려다 소파 아래 준비되어 있는 스나이퍼용 총을 발견한다. 결국 지안은 진만이 어려서부터 해줬던 이야기들 속의 '생존법'을 기억해내며 이 킬러들의 공격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낸다.
살아 남기는 어쩌다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됐다. K콘텐츠로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대부분의 작품들이 모두 생존서사를 담고 있다는 건 우연이 아니다. <오징어게임>이 그랬고, <킹덤>이 그러했으며 <지금 우리 학교는>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디즈니 플러스에서 방영됐던 <무빙> 같은 슈퍼히어로물조차 가족들과 생존하려는 초능력자들의 처절한 사투를 그리지 않았던가. 그 생존이라는 키워드를 두고 보면 <킬러들의 쇼핑몰> 역시 그 계보의 하나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다만 액션 스릴러로서 이 작품은 이러한 메시지를 전면에 꺼내놓기보다는 저 뒤편으로 놔두고 대신 '킬러들의 끊임없는 공격'과 그로부터 살아남는 지안의 구도를 계속해서 세워놓는다. 삼촌과 함께 살았던 집에서의 살아남기가 펼쳐지고, 과거 어린 시절의 지안이 부모를 모두 잃고 킬러들의 표적이 되어 집에서 도망치고, 차에 치어 병원에서 깨어난 후에도 그를 죽이려는 킬러들을 피해 심지어 사체 안치실의 어머니의 사체 옆에 숨어 살아남는 일까지 벌어진다.
물론 어린 지안까지 이런 위험에 빠지게 된 건 삼촌 진만 때문이다. 그는 다크웹을 통해 비밀리에 운영해온 머더헬프라는 무기 쇼핑몰을 운영했고 결국 킬러들과 거래하다 그들의 표적이 되어 버린 것. 그 위험을 알게 된 진만은 지안에게 생존하는 법을 일찍부터 가르친다. 하지만 그렇게 숨어 지내던 그들이 킬러들에게 발각되고 지안은 진만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결국 이제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평범한 인물처럼 보이는 지안이 알 수 없는 킬러들의 공격을 받고, 거기서 생존해가는 과정은 마치 치열한 현실에서의 생존을 은유하는 것처럼 다가오며 그래서 이 작품의 가장 흥미로운 관전포인트가 된다. 그런데 과연 이 치열한 현실을 드라마는 어떻게 살아내야 한다고 말하는 걸까. 드라마는 앞서 사자를 비유해 진만이 말한 것처럼 '피하지 말고 직시해야' 하며 그 누구도 도움을 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부모가 죽는 날, 킬러들이 싸우며 팔뚝이 잘려나가는 장면까지 목격한 어린 아이가 그 충격으로 단기 기억을 상실하고 실어증까지 갖게 되지만, 그래서 학교생활이 어려워 보인다는 선생님의 말에 진만은 하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건 결국 정지안 스스로 해결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실어증으로 벙어리라며 아이들의 놀림을 받던 지안은 혼자 갇혀 있는 공포 속에서 이빨에 잘려진 팔뚝을 물고 다가오는 하이에나의 환영을 보며 결국 굳게 닫혔던 입을 연다. "정진만! 정진만! 정진만!" 삼촌을 애타게 부르며 살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다. 디테일한 생존 액션이 먼저 시선을 잡아끄는 드라마지만, 그 이면에 놓인 현실 은유가 마음까지 잡아끄는 드라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디즈니 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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