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 기대감에 고심 커진 라가르드[조은아의 유로노믹스]

파리=조은아 특파원 2024. 1. 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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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ECB ‘X(옛 트위터)’ 캡처

지난주 세계 투자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인물은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다. 그는 17일(현지 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블룸버그통신에 ‘올 여름부터 금리 인하가 예상된다’는 의견에 대해 “나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아직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금리 조기 인하론을 부정한 셈이다.

이에 유럽 증시는 출렁였다. 독일 대표지수인 DAX30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0.84% 떨어졌다. 프랑스의 CAC40 지수는 1.07%, 영국의 FTSE 100 지수도 1.48% 하락했다. 라가르드 총재의 신중한 태도에 미국 연준의 조기 금리 인하를 바라보고 있던 투자자들의 심리도 순간 얼어붙었다.

● 시장은 ‘4월 금리 인하’ 기대

시장에서는 ECB의 첫 번째 금리 인하 시기가 3월이었는데 최근 4월로 미뤄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22일 “트레이더들은 금리 첫 인하 시기가 3월에서 4월로 미뤄졌다고 생각한다”며 “ECB가 3월 물가 및 성장 전망을 새로 발표하는데 이는 최종적인 (통화정책) 완화 논의의 시작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3월 발표될 물가 상승률이 둔화되고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예상보다 나쁘면 ECB가 ‘물가가 안정됐으니 경기를 살려야 한다’며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 라가르드 총재로선 ‘난 금리를 내린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시장은 왜 이럴까’라며 억울해 할 수 있다. 라가르드 총재는 지난해 12월 분명히 “절대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며 금리 인하에 신중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 전달에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주최한 한 행사에서 향후 2개 분기(6개월)간 정책 변화가 없을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시장이 라가르드 총재의 발언보다 앞서 가고 있는 이유는 지난해 말 미 연준이 워낙 조기 금리 인하 신호를 세게 울렸기 때문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해 12월 13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금리는 정점을 찍었거나 근처에 다가갔다”며 “오늘 회의에서도 명백하게 (금리 인하 시점이) 논의 주제였다”고 말해 피벗(통화정책 전환)을 선언했다. 이에 연준이 이르면 내년 3월부터 5회 이상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상 ECB 등 타국 중앙은행은 연준의 기조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시장에선 연준이 3월, ECB는 4월 금리를 내릴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게다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에선 경기 침체 조짐이 나타나 금리 인하 필요성이 일찍이 흘러 나왔다. 유럽연합(EU)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유로존의 올해 3분기(7~9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확정치는 -0.1%였다. 미국(5.2%)과 비교해 경기 하강이 이미 가시화한 것이다.

●“물가 아직 안심 못 해”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럽중앙은행(ECB) 건물 야경. ECB ‘X(옛 트위터)’ 캡처

시장을 한동안 들뜨게 만든 조기 금리 인하론 속에서도 최근 연준의 ‘조기 금리 인하’ 철회 전망이 늘면서 ECB의 조기 금리 인하론도 힘을 잃는 분위기다. 경기 침체는 우려되지만 다른 지표들은 ECB의 금리 인하를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중앙은행은 침체가 심각해지면 경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금리를 내릴 수 있지만 물가나 임금이 높으면 고물가가 더 심각해질 수 있으니 금리를 내리기 어렵다.

대표적으로 물가는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유로존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12월 8개월 만에 올라 2.9%로 집계됐다. 물가 전망의 주요 지표인 근원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3%를 웃돌고 있다. 홀거 슈미딩 베렌버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ECB가 물가 상승률을 2%로 낮춰야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봤다. 게다가 최근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예멘의 후티 반군과 서방 국가들의 홍해 긴장으로 물류 대란이 생겨나고 있어 물가가 얼마나 오를지 모를 일이다.

●‘금리 인상 실기론’ 비판

라가르드 총재가 시장의 강한 금리 인하 기대에도 극히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데는 ‘금리 인상 실기론’ 비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고물가가 유럽 전역을 덮쳤지만 ECB는 너무 느리게 대응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라가르드 총재는 지난해 10월 FT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정부 부채 매입을 중단할 때까지 금리 인상을 시작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점을 언급하며 “개인적으로 후회되는 것은 우리의 미래 지침에 구속감을 느꼈던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2022년 첫 6개월간 (금리 인상에) 더 과감했어야 했다”고 금리 인상 실기론에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다.

여기에 ECB 노동조합마저 라가르드 총재의 통화정책 리더십에 낮은 점수를 주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노조는 라가르드 총재의 8년 임기 반환점을 맞아 22일 발표한 조사에서 ECB 고위 경영진에 대해 60%가 부정적이었다고 밝혔다. 이는 물론 직원 급여, 근무조건과 관련된 측면이 있지만 응답자 중 절반가량은 ECB의 주요 목표인 물가 관리에 대한 라가르드 총재의 업무성과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에서 불거지는 경제 이슈가 부쩍 늘었습니다. 경제 분야 취재 경험과 유럽 특파원으로 접하는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 유럽 경제를 풀어드리겠습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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