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 또 감세’에… “재정 악화할 뿐 vs 성장 위해 필수” 논란
올해 비슷한 재정상황인데 연말연시 감세안 줄줄이
정부 “부담 작다, 경기 활성으로 세수 확충 꾀한 것”
전문가 “선순환 효과 검증 차치, 건전재정 물 건너가”
정부가 연거푸 ‘감세’를 중심으로 한 민생 대책들을 발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증세 없이 감세책만 내놓는 것이 재정 악화를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가 커져서다. 정부는 투자 확대나 소득·소비 증가 등이 추후 세수 증가로 이어지는 효과가 있는 것이며, 재정 대응 여력이 크지 않은 현 상황에서 쓸 수 있는 최선의 경기 부양책이라는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
◇ 작년 11월 지출 진도율 85.9%… 2013년보다 낮아
24일 기획재정부의 ‘월간 재정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국세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49조4000억원 감소한 324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아직 집계되지 않은 12월분을 포함하면 연간 ‘세수 펑크’ 금액은 이보다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의 말을 참고하면 연 55조원 안팎이 될 것이란 추산이 나온다.
통상 세입은 나라의 경제 규모에 따라 커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지난해의 경우 2021년도 수준으로 후퇴했다. 지난해 11월 국세 수입은 2022년 11월(373조6000억원)보다 작았고, 2021년 11월(323조4000억원) 수준과 비슷했다. 세외수입·기금수입 등을 포함한 총수입은 529조2000억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씀씀이를 크게 줄였던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기준 총지출 진도율은 85.9%에 불과했다. 총지출 예산인 638조7000억원 대비 548조6000억원 밖에 집행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과거 역대 최대의 세수 결손이 발생한 해로 꼽히는 2013년의 1~11월 진도율(87%)보다도 낮다.
아직 12월 집행 분이 남아있긴 하지만, 진도율을 크게 높이지는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추경호 전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과거 “(강제적인 불용은 아니지만) 자연스러운 불용은 활용하겠다”는 언급을 한 적 있을 정도로, 어느 정도의 불용을 기정사실화한 바 있다.
정부는 지난해 세수가 부족했던 것이 부동산 거래 위축, 기업 영업 이익 부진 등 경제 상황 악화에 따른 불가피한 수순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부의 감세 조치로 인한 영향도 상당하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법인세를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서 1%포인트(p) 인하하고, 종합부동산세 공제금액을 9억원으로 상향하는 등의 감세책을 지난해부터 시행한 바 있다.
◇ 감세안 줄줄이 “연 5兆 세수감”… 정부 “2차 효과 봐 달라”
문제는 세수 여력이 충분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올해에도, 감세 논란이 또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올해 예산안에서 국가 총수입을 10년 만에 전년 대비 2.2% ‘마이너스’인 612조1000억원으로 편성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최근 경제정책방향과 민생토론회 등을 통해 연달아 약 10건에 달하는 굵직한 감세안을 발표했다.
기업 투자 분야에서 ▲임시투자세액공제 1년 연장 ▲연구개발(R&D) 세액공제 공제율 상향 ▲국가전략기술 및 신성장·원천기술 범위 확대, 민생 안정 분야에서 ▲할당관세 ▲신용카드 공제율 상향 ▲노후차 교체 개별소비세 인하, 자산 형성 분야에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 완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비과세 및 납입한도 확대 등이다.
물론 상당 부분 법 개정 사안이지만, 만약 이들 감세 정책이 일시에 시행되면 당장 내년부터 수조원의 세수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금투세 폐지로 약 1조5000억원, ISA 세제 지원 확대로는 2000억~3000억원의 세수가 감소할 것으로 관측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증권거래세 인하 조치로 연평균 2조원가량(2023~2027년 10조1491억원)의 세입 감소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더불어민주당 유동수 의원은 주식 양도세 대주주 기준 완화에 따른 세수 감소액을 7000억원으로 계산했다. 대략적으로 잡아도 연간 4조~5조원의 손실이다.
하지만 정부는 세 부담 완화가 당장 가져올 세수감 효과가 일각의 우려처럼 그리 충격적인 것은 아니며, 불가피하게 줄어든 세수 ‘실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선 세 부담 경감책이 현재로선 최선의 경기부양책이 될 수 있다고 반박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21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정부 세제 지원 규모가 많이 커서 세수에 큰 부담이 되지 않느냐는 걱정을 하지만, 큰 규모는 아니다”라며 “그 효과도 몇 년에 걸쳐서 나타날 것이다. 정부가 희망하는 것은 경기 활성화를 통해 세수 기반을 확충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세수를 많이 감소시키지 않는 세원을 중심으로 정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 전문가들 “‘선순환’ 효과 있든, 없든 이대로는 건전재정 파탄”
정부가 주장하는 감세의 ‘선순환’ 효과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우선 세수 감소가 가져올 혜택이 크지 않다는 주장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과거 내놓은 세수 예측 규모를 뒤집으면서까지 세수 감소 효과가 별로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게다가 세수 감소가 크지 않단 이야기는 혜택도 크지 않다는 이야기다. 긍정적인 선순환 효과를 내세우는 것은 양두구육(겉으로 보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속은 그렇지 않음)일 뿐”이라고 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대외 경제와 수출, 세수 상황이 새해에도 여전히 불투명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선순환 효과에 대해 기본적으로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선거를 앞둔 정부 여당의 선심성 정책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했다.
반면 선순환 효과에 대해 동의하는 의견도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에 대해 감세 정책을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미래 먹거리를 개발하고 성장 동력을 확충하는 데 있어서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데 동의를 한다”며 “또 이런 것이 결국엔 소득세수를 늘린다는 점은 최근 결과로 입증된 메커니즘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선순환 효과의 논박을 차치하고서라도 ‘건전 재정’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인다. 석 교수는 “정부의 올해 부가가치세, 교통에너지환경세 등 세수 추계 역시 너무 낙관적이라는 점을 토대로 생각할 때 올해도 세수 결손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본다”며 “이런 상황에서 선거를 앞두고 감세 공약을 쏟아내는 동시에 향후 의무 지출을 키우는 복지 정책에 대한 공약도 남발하는 상황인데, 이런 의무 지출 구조조정 작업을 병행하지 않으면 재정 건전성을 크게 훼손하고 말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세제 개편 논의의 순서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 교수는 “나라 살림을 사는 문제이기 때문에 세제는 원래 신중하게 건드는 것이다. 3~4월쯤 공청회를 하고 신중한 연구를 토대로 ‘세제 개편안’의 형태로 추진하는 것”이라며 “지금은 검증되지 않은 미성숙한 상태로 세제 개편이 진행되고 있어 혼란스럽다”고 했다. 그는 “정무라인이 경제라인을 압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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