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묻지 마라" 섬뜩한 가해자의 용어 [전쟁과 문학]
5편 사유하지 않은 죄
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
서독 청년 마이클과 한나의 인연
나치 협력자로 재판장에서 조우
문맹이던 한나 아우슈비츠 자원
독일의 기성세대 전후세대 상징
몰랐단 이유로 면죄부 얻는 가해자
“과거 묻어둔 채 미래 바라보자”
이 말은 가해자가 쓰는 언어
과거를 따져 묻지 않은 채 미래를 지향할 수 있을까. '그땐 몰랐다'는 말이면 그게 뭐든 면죄부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과거를 따지지 말고 미래를 바라보자는 말은 가해자들이 즐겨 구사하는 언어다. 자국이든 타국이든 과거를 '묻어놓고' 미래를 보자는 사람들의 생각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그 여자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독일의 법대 교수이자 소설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대표작 「책 읽어주는 남자(1995년)」는 10대 소년과 30대 여인의 파격적인 사랑을 다룬 소설이다.
1958년 서독 노이슈타트. 비 오는 어느 날 마이클이라는 15세 소년이 길거리에서 쓰러진다. 전쟁으로 국가 전체가 폐허로 변했고, 전상자가 넘치는 시기였기에 사람들은 쓰러진 소년을 보고도 무심하게 지나간다. 한 여자가 그를 일으켜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돌봐 준다. 마이클은 이름도 모르는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육체관계를 맺고 연인이 된다. 두 사람 사이에는 기이한 질서가 생긴다. 여자는 마이클과 사랑을 나누기 전 책을 읽어 달라고 말한다. "네가 읽어 줘. 잘하더라, 책 읽는 거."
처음엔 장난처럼 시작한 소설 낭독은 곧 하나의 통과의례가 됐다. 호메로스, 안톤 체호프, 프리드리히 실러, D. H. 로렌스, 톨스토이…. 마이클은 여자에게 날마다 책을 읽어준다. 여자는 마이클의 낭독에 웃고, 흥분하고, 눈물을 흘린다. 마이클은 낭독을 좋아하는 이유를 물었으나 그녀는 답하지 않는다.
마이클이 알게 된 것은 그녀의 이름이 '한나'라는 사실뿐이다. 책을 함께 읽으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깊어진다. 소심했던 마이클은 한나와 지내면서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해 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갑자기 사라진다. 마이클은 한없이 기다렸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한나를 다시 봤다. 그것은 법정에서였다." 몇년 후 마이클은 법대에 진학한다. 한나와의 경험 탓에 마이클은 또래 여학생들에게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마이클은 법정 견학을 갔다가 그곳에서 한나를 보게 된다.
그녀는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당시 독일에선 나치 협력자 처벌 문제로 연일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나는 수용소에서 감시원으로 일한 죄목으로 검사의 심문을 받았다.
그녀가 맡았던 업무는 수용자들을 선별해 아우슈비츠로 보내는 일이었다. 한나는 자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녀는 판사에게 단지 생계 때문에 감시원으로 자원했다고 답한다. 마이클은 날마다 재판을 보러 법정에 나갔다. 한나는 검사들의 질문에 솔직하게 답변하면서 자신의 형량을 늘리는 일을 반복했다.
며칠 후 검사는 감시원들이 수감자들을 교회에 가둔 채 불을 지른 사건을 파헤쳤다. 피의자들은 마치 입을 맞춘 듯 한나가 명령서를 수령했고, 모든 지시를 내렸다고 진술했다. 한나는 자신의 죄를 쉽게 인정했다. 마이클은 그런 한나의 모습을 보며 순식간에 진실을 파악한다. 그녀는 문맹이었던 것이다.
마이클은 그녀가 자신이 책을 읽어 주는 것을 그토록 좋아했던 이유를 깨닫는다. 그녀가 명령조의 말투를 구사한 이유도 깨닫는다. 그녀는 철저하게 규칙과 통제의 언어에 길들여진 사람이었다. 한나는 자신의 문맹을 치욕스러워했고, 그 비밀을 들키지 않으려고 침묵을 선택했다.
들을 줄은 알지만 읽을 줄 몰랐던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사유하는 방법을 몰랐다. 마이클은 교수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법정에서 그녀가 범죄를 인정한 이상 도울 길은 없었다. 결국 마이클은 그녀의 비밀을 지켜 주기로 결심한다.
한나를 다시 떠나보낸 후 마이클은 평범한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그는 타인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사람이 됐다. 아내와 이혼하고 짐을 정리하던 중 마이클은 한나에게 읽어 줬던 책 「오디세이」를 발견한다.
그는 책을 낭독한 녹음테이프를 교도소로 보낸다. 한나는 마이클이 보낸 테이프를 들으며 글을 배우고, 마침내 직접 편지를 쓸 수 있는 수준에 이른다. 문맹에서 깨어난 한나는 자신이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뒤늦게 깨닫는다. 그녀는 교도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한나는 자신의 예금과 노역으로 번 돈을 피해자들에게 전달해 달라는 유서를 남긴다.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이 소설에서 나이를 뛰어넘은 사랑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한나와 마이클은 각기 독일의 기성세대와 전후세대를 상징한다. 소설에서 마이클이 한나의 재판을 참관한 시기는 1960년대 초반이다. 1961년 예루살렘에서 아돌프 아이히만(나치 친위대 장교로 유대인 학살의 실무 책임을 맡은 전범)의 재판이 열린 시기와 맞물린다.
유대인들을 관리하고, 아우슈비츠로 보냈던 한나의 업무는 바로 아이히만의 업무였다. 또한 "단지 맡은 업무에 충실했을 뿐"이라는 한나의 대답은 당시 아이히만이 재판 때 했던 말과 흡사하다. 한나의 '문맹'은 전쟁에 가담했던 자들의 '자발적 무지'를 상징하고, '한나'의 이름은 아이히만 재판을 참관한 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년)」을 저술한 철학자 '한나 아렌트'를 연상케 한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소설에 얽힌 개인적 기억을 털어놨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한 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했었다. 그러나 나치 청산작업으로 밝혀진 선생님의 과거는 충격적이었다. 그 선생님은 전쟁 중 게슈타포 요원으로 활동했었다.
"우리 세대는 아버지나 삼촌, 목사, 교수처럼 가까운 사람들이 홀로코스트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책임질 만한 일을 했다는 경험을 거의 모두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 그런 이질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상당한 정신적 에너지를 요하는 작업이다." 법학과 문학을 공부한 작가는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던 기성세대의 죄악과 상처를 동시에 응시한다.
이 소설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다시 보게 한다. 학살과 고문에 앞장섰던 자들은 대개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하거나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그들은 사유하지 않았다는 사실 앞에서 지나치게 당당하다. 그들은 법의 힘을 빌려 면죄부를 얻거나 피해자를 겁박한다. 그들의 당당함은 피해자의 명백한 경험조차 논쟁거리로 만든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미래를 기대하며 질주하는 세계에서 고통스러운 과거는 거추장스러운 장애물로 전락한다. 하지만 인간은 미래를 보지 못한다. 그리스 서사시인 호메로스의 말처럼 인간은 과거와 현재를 보면서 미래로 뒷걸음질하는 존재다.
과거를 따지지 말고 미래를 바라보자는 말은 가해자들이 즐겨 구사하는 언어다. 한나는 감옥에 갇혀 자신의 죗값을 치르고 있었지만, 문맹을 벗어난 이후에 자살했다. 어떤 시대에는 무지(문맹)도 죄가 된다. 법은 죄의 무게를 따지지만, 문학은 사유할 의지를 묻는다. 사유란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선택하는 능력이다.
이정현 평론가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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