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원의 기후 close-up ] “트럼프가 온다, 지구는 두렵다”
트럼프가 온다.
아무래도 불안하다. 설마, 설마했던 일들이 세상에는 종종 벌어진다. 올해 그 ‘설마’ 중 하나는 바로 도널드 트럼프다. 2024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현직 대통령 조 바이든과 전직 대통령 트럼프가 맞붙을 가능성이 높아졌고 그가 다시 백악관 주인이 될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공화당 경선에 니키 헤일리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등이 도전장을 내밀고 있지만 트럼프는 코웃음을 치며 TV 토론조차 나가지 않았다. 이미 압도적인 1위인데 굳이 다른 경쟁자와 말을 섞을 필요가 없다는, 지극히 트럼프다운 행동이다. 실제 1월15일 열린 첫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 51%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1위를 확인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11월, 2024년의 가장 큰 위험으로 다름 아닌 트럼프를 꼽았다.(“Donald Trump poses the biggest danger to the world in 2024”)
“기후변화는 중국이 미국의 산업을 훼손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속임수다.” (2016년)
“무자비하고 긴 한파가 모든 기록을 다 갈아치울 수도 있다. 지구온난화는 어떻게 된 거지? (2018년)
“곧 더 시원해질 겁니다. 두고 보세요...“ (2020년 캘리포니아 화재 현장)
대표적인 ‘기후 악당’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트럼프가 다시 당선된다면 가장 타격받을 부문 중 하나는 기후다. 단 몇 문장만 들어봐도 그의 생각은 명확하다. 대통령으로 취임한 첫 해인 2017년 12월 그는 “동부지역은 기록적으로 가장 추운 새해 전날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다른 국가들은 안 하는데 우리나라가 수 조 달러를 내가며 맞서려 했던 그 잘난 지구온난화를 조금 이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트윗을 남겼다.
2018년 11월 21일에는 “무자비하고 긴 한파가 모든 기록을 다 갈아치울 수도 있다. 지구온난화는 어떻게 된 거냐?“고 조롱했고, 며칠 뒤에는 기후변화로 인해 초래될 엄청난 경제적, 사회적, 인적 피해 등을 경고한 미 연방의 ‘기후변화 보고서’를 ”믿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참고로, 당시 1600 페이지 분량의 보고서 작성에는 무려 300명의 과학자와 1000여 명의 방대한 분석 인력이 투입돼 ‘2015년 이후 4,500조 원 이상의 물적 피해를 야기했고,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최대 10%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는 한 발 더 나갔다. 2020년 9월 대규모 산불 피해를 입은 캘리포니아를 방문한 자리에서 “곧 더 시원해질 겁니다. 두고 보세요... 과학이 문제를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고 말했다. 당시 캘리포니아, 오레곤, 워싱턴 주에서 발생한 화재는 8월 초부터 200만 헥타르 가량의 토지를 태웠고 최소 35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보다 못한 조 바이든(당시 후보)은 트럼프를 향해 ‘기후 방화범’이라며 분노를 표했다. 기후변화를 바라보는 트럼프의 관점과 태도가 위험했던 것은 그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취임 6개월 만인 2017년 6월 백악관에서 갑자기 ‘파리 기후 협정(Paris Climate Agreement)’ 탈퇴 의사를 밝히면서 과학자들을 경악하게 했다.
트럼프의 ‘굳은 신념’은 지금도 여전하다. 지난해 9월 “영국 수낵 총리는 미국이 모두에게, 특히 스스로에게 밀어붙이고 있는 터무니없는 ‘기후 의무’를 매우 실질적으로 되돌렸다“며 ”그런 와중에도 미국은 중국과 인도, 러시아, 그 외의 알려지지 않은 지역에서 날아온 전혀 처리되지 않은 더러운 공기 속에 숨 쉬면서 불가능한 것에 수 조 달러를 쓰며 즐겁게 굴러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다른 나라가 지구를 더럽히고 있는데 왜 우리 돈을 쓰냐는 뜻인데, 팩트 체크를 하자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한 나라는 (2020년 기준) 중국이 1위(30.6%), 미국이 2위(13.5%)다.
트럼프와 친구들
공화당 지지자, 특히 그 중에서 백인, 남성, 노동자 계층 등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트럼프는 이들의 힘으로 2016년 선거에서 ‘덜컥’ 대통령에 당선됐고 그의 인기는 지지자들 사이에서 4년 내내 식을 줄 몰랐다.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트럼프에 표를 줬던 핵심 지지층은 2024년 현재도 여전히 그를 원한다. 정치인은 유권자들의 표와 지지를 먹고 산다. 각종 이슈에 대한 이들 핵심 지지자들의 생각과 입장이 중요한 이유다.(여론에 그리 신경쓰지 않는 트럼프지만 그래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지난해 트럼프는 ‘아젠다 47’ 이라는 예비 공약을 발표했다. (‘47’은 제47대 대통령 선거를 의미한다). 기후 관련 공약을 요약하면 ▲파리협정 재탈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내 친환경보조금 전면 수정 ▲ 미국 내 화석연료 채굴 확대 ▲자동차 연비규제 완화 및 전기차 의무 판매 규제 폐지 등이다. 이같은 공약은 그냥 나온게 아니다.
제4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던 지난 2020년 10월 〈뉴욕타임스〉와 뉴욕 시에나대가 전국 유권자 98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58%는 기후변화로 지역사회가 위협받는 데 대해 “매우 우려“하거나 ”어느 정도 우려“한다고 답변했다. ”크게 우려하지 않거나“ ”전혀 우려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39%였다. 하지만 지지 성향에 따라 답변은 극명하게 갈렸다. 당시 바이든 지지층의 90%가 우려를 표시했지만 트럼프 지지층은 23%만이 ‘기후변화를 우려한다’고 답했다.
2023년 6월 Pew Research Center 조사도 유사하다. 미국인 대다수는 재생에너지 개발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성인의 3분의 2가 석유, 석탄, 천연가스 생산 확대보다 풍력, 태양광과 같은 재생에너지 개발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면 민주당 지지자 및 민주당 성향 유권자 10명 중 9명은 미국이 대체에너지원 개발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공화당원과 공화당 성향의 응답자는 42%만이 대체에너지원 개발을 지지하고 나머지 58%는 석유, 석탄, 천연가스 탐사 및 생산 확대에 찬성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위협’에 대한 인식에서도 격차가 심했다. 민주당원 10명 중 약 8명(78%)은 기후 변화가 국가의 안녕에 대한 주요 위협이라고 답한 반면, 공화당원 4명 중 1명(23%)이 위협으로 생각했다.
‘파리 협정’, 대체 뭐길래?
기후위기를 중국의 음모, 과학자들의 잘못된 생각, 비상식으로 인식하는 트럼프는 거의 확신범에 가깝다. 그렇다면 전세계가 2015년 극적으로 합의했던 파리 협정, 오바마가 적극 찬성하고 트럼프가 취임 6개월만에 탈퇴를 선언한 그 협정은 무엇이었나? 파리 협정은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에서 채택된 국제 협약이다. 핵심은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섭씨 2도 이내로 제한하고, 이상적이게는 섭씨 1.5도가 넘지 않도록 국제 사회가 노력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적극적인 협상을 벌였고 미국이 의지를 보이자 다른 국가들이 합의하면서 채택됐다. 사실상 G2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이 주도한 결과였다.
당시 국제사회는 그저 말로만 합의한 것이 아니라 5년 단위로 각국이 목표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글로벌 재고조사(global stocktake, ‘전지구적 이행점검’이라고도 한다)를 하기로 약속했고 그 점검은 지난해 12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당사국총회(COP28)에서 처음 이뤄졌다. 글로벌 재고조사는 각국이 공언해온 목표를 달성했는지 여부를 감축, 적응, 이행 수단(재원/기술) 등 다방면에서 평가하고, 향후 어떻게 대응 할 것인지 등을 논의하는 것이다. 결국 COP28에 모인 198개국 대표들은 ‘화석연료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전환(transitioning away)’라는 문구에 최종 합의했다. 기후위기의 주범인 ‘화석연료’라는 단어가 당사국총회 합의문에 등장한 건 첫 당사국총회(1995. 독일) 이후 28년만에 처음이다. 이밖에, 기존 기후기금과 별도로 ‘손실과 피해’ 기금(7.9억 달러)을 공식 출범시켰고 재생에너지 용량 3배 확대 등에 합의했다. 다만 이행점검 결과 파리협정 목표 달성은 어렵다고 결론내렸다. 즉, 각국 계획대로 실행에 옮긴다고 하더라도 (이미 늦어) 향후 지구 온도 상승폭이 2도를 넘을 것이라는 뜻이다.
앞서 2023년 11월 유엔환경계획(UNEP)은 ‘온실가스 배출격차 보고서’(Emission Gap Report 2023 : Broken Record)에서 글로벌 기온 상승이 최고치를 경신한 반면 탄소배출 감축에는 실패했다며,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이 유의미하게 감축되지 않는다면 2100년까지 지구 평균 기온이 2.5도~ 2.9도 상승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2100년 평균온도가 2도 오르면 동식물 18%가 멸종하고, 전 세계 8억~30억명이 물 부족을 겪는 등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한다.
“역사상 가장 더운 해” 매년 경신
국제사회가 2000년대 초반부터 기후 문제를 논의하고 2015년 파리협정에 사할을 걸었던 이유는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지하며 살고있는 이 ‘지구’는 점점 불타오르고 있다. 유엔 안토니오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지구온난화가 아닌 지구열대화(Global boiling)를 언급하고 “인류는 기후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고 경고한 것도 과장이 아니다. 최근 언론 보도만 봐도 상황은 심각하다. 1월 9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극심한 폭풍과 여러 자연재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약 2,500억 달러(328조 6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고 이는 지난 10년 평균을 초과하는 수치다. 블룸버그는 ”2023년은 ‘지구 역사상 가장 더운 해’로 날씨 패턴이 왜곡되고 수 백만 명의 사람들이 위험한 온도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앞서 ‘기후 난민’으로 터전을 옮긴 사람들이 전쟁 난민보다 많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지구는 점점 빠른 속도로 가열되고 있고 아이러니하게도 탄소배출에 거의 책임없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최전선에서 목숨과 건강을 잃고 있다. 이 와중에 일부 정치인과 기업인들은 탐욕 내지 무능으로 지옥으로 가는 문을 더욱 활짝 열고 있다. 자본, 기술, 그리고 의지까지 겸비돼야 겨우 극복할 수 있는 것이 기후위기인데도 말이다.
트럼프가 온다. 지구는 두렵다.
이승원 프로필
학력
▷2017~2020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학 박사 수료
▷2006~2008 워싱턴대학교 대학원 국제관계학 석사
▷1995~2000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 학사
경력
▷2009~2011 이데일리 취재기자
▷2001~2005 내일신문 취재기자
▷2019-2020 MBC radio〈이승원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진행자
▷2023- 현재 OBS TV 〈이승원의 월드시사W 〉진행자
bon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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