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내편일 거라는 믿음 주는 우리들의 엄마, 김미경

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2024. 1. 2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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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웰컴투 삼달리', 사진=MI, SLL

'국민 OO'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좋아하는 우리나라에서 무려 '국민 엄마'라는 호칭을 부여받은 배우들이 있다. '3대 국민 엄마'로 묶이는 배우 김혜자, 고두심, 김해숙이 있고, 2022년 KBS '연중 플러스'의 코너에서 알아본 'K-드라마 속 국민 엄마'들로는 3대 국민 엄마 외에 박원숙, 최명길, 박준금, 이휘향 등이 이름을 올렸다. 드라마 속 엄마 역할로 자주 등장하는 배우들은 이외에도 많다. 그러나 요즘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국민 엄마를 물으면 첫손에 나올 이름은 단연 김미경이다.

김미경은 2023년에 '대행사' '일타 스캔들' '닥터 차정숙' '사랑한다고 말해줘' '웰컴투 삼달리' '이재, 곧 죽습니다' 등 무려 6편에 엄마 역할로 출연했다. 양적으로만 돋보이는 게 아니라 출연한 작품의 퀄리티와 흥행성도 좋다. 매일 같이 남편에게 맞고 살다 일곱 살 난 딸을 버리고 도망쳤으나 성공한 딸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밥이라도 한끼 해 먹이고 싶어 전전긍긍하는 엄마였던 '대행사'는 JTBC 역대 드라마 시청률 6위를 기록했다. 특별출연이긴 하지만 딸 남행선(전도연)에게 손맛을 물려주고 굶주린 학생이었던 최치열(정경호)의 뱃속을 따스하게 만들어줬던 마음씨 따뜻한 엄마로 출연한 '일타 스캔들'의 존재감도 잊을 수 없다. '일타 스캔들'은 2023년 tvN 드라마 시청률 1위다. 딸 차정숙 역할의 엄정화와 여섯 살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든든한 엄마로 전혀 위화감이 없었던 '닥터 차정숙'은 JTBC 역대 드라마 시청률 4위를 달성했다.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에선 친딸이 아님에도 누구보다 따스하게 자식을 감싸 안는 엄마로 눈길을 모았고, 최근 종영한 '웰컴투 삼달리'의 해녀회장이자 딸 셋의 엄마인 고미자로 시청자들의 눈물 콧물을 쏙 뺐다. 2023년 12월 파트1과 2024년 1월 파트2를 공개하며 티빙 전체 오리지널 콘텐츠 중 누적 시청UV 1위를 기록한 '이재, 곧 죽습니다'의 최이재 엄마는 또 어떻고. 자식 잃은 엄마의 모습이 그토록 먹먹하게 다가온 건 그가 김미경이기 때문이었다.

'밤에 피는 꽃', 사진=MBC

김미경이 엄마로 출연한 작품은 수십 편에 달한다. 예능 '짠당포' 출연 당시 김미경이 직접 밝힌 바로는 엄마 배역만 60회 이상, 작품으로 만난 자식만 70명이 넘는다고 한다. 처음으로 엄마 역할을 맡은 것이 2004년 드라마 '햇빛 쏟아지다'의 류승범의 엄마라고 하니, 올해로 엄마 연기 20주년을 맞는 셈이다. 김미경이 1963년생이니 40대 초반에 20대 자녀를 둔 엄마를 시작한 것인데, 그 자신도 감독에게 "이건 조금 아니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했으나 변장의 덕과 훌륭한 연기로 커버하면서 이후 엄마 역할이 쏟아져 들어왔다고 한다. 앞서 3대 국민 엄마도 각각 자신만의 색채가 있었던 것처럼, 김미경 하면 떠오르는 엄마상도 있다. 비율로 따지자면 평범한 서민이거나 가난한 집안의 엄마 역할이 많고, 자식에게 민폐 끼치거나 자식을 윽박지르는 엄마 말고 자식의 편에 든든한 우군이 되어주는 엄마를 주로 맡았다.

출연작도 많지만 잊을 수 없는 엄마로 오랫동안 기억되는 게 국민 엄마 김미경의 특징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 '상속자들'의 박희남 여사를 기억할 것이다. 제국그룹 회장 저택의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딸 차은상(박신혜)을 돌보던 박희남 여사는 어릴 때 앓은 열병으로 말을 하지 못해 잔소리 대신 딸의 등짝을 후려치는 억척스러운 엄마지만, 딸에게 모진 말을 퍼붓는 사모님에게 온몸으로 맞서는 든든한 엄마였다. 사모님 한기애(김성령)와의 개그 케미도 시청자들이 좋아하던 요소였다. 딸에게 모진 말을 퍼붓고 주먹다짐을 하다가도 딸이 좋아하는 남자를 위해 요리하는 모습에 일언반구없이 곁에서 5단 도시락을 싸는데 매진하는 '또 오해영'의 엄마 황덕이도 여전히 뇌리에 남는 엄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던 지영(정유미)이 명절 연휴에 "사부인, 쉬게 해주고 싶으면 (내 딸 좀) 집에 좀 보내주세요. 저도 제 딸 보고 싶어요"라며 엄마에 빙의된 듯 시어머니에게 건네던 말투도, 연기자는 정유미였으나 그 속내에는 엄마였던 김미경이 절절히 묻어났다. 타임루프한 딸을 대하는 엄마(고백부부)나 유령이 된 딸을 보듬는 엄마(하이바이, 마마!)도 우리 엄마처럼 따스하고 절절한 엄마였다.

'이제 곧 죽습니다', 사진=티빙

엄마 역할에는 종종 한계가 있다. 주인공에게 쏟을 이야기도 많은지라 주인공의 엄마에게까지 구체적인 서사를 부여할 여유가 없을 때가 많기 때문. 그렇기에 예전에는, 아니 지금도 종종 여자 배우에게 엄마 역할은 주연 커리어의 끝이라 여기기도 한다.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더라도 나이를 먹으면서 누군가의 이모, 고모가 되었다가 주인공의 엄마 역을 맡으며 주변으로 밀려나는 것이 서글프지만 현실로 여겨지기도 했다. 물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누군가의 엄마요, 아빠이자 누군가의 딸과 아들인 걸 생각하면 엄마 역할 맡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 싶겠지만,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서 중년 여자 배우들에게 맡기는 엄마가 통상 주인공인 자식을 향한 틀에 박힌 모성(母性) 연기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은 걸 생각하면 빼어난 중년 여배우 입장은 물론 다채로운 연기와 이야기를 항시 기다리는 시청자 입장에선 씁쓸한 일이다.

김미경의 엄마는 그런 의미에서 전통적인 헌신적인 엄마에서 시작했으나 때로는 지극히 속물적이고 현실적이어서 자식을 다그치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내 편일 것이라는 든든한 믿음을 주는 엄마, 자식에게 모든 걸 내어줄 순 있지만 그렇다고 자식에게만 애면글면 의지하지 않는 독립적인 엄마로 다양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웰컴투 삼달리'에서 엄마이면서도 해녀회장이자 듬직한 친구 고미자로 분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자신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 엄마가 계속해서 선보이면 좋겠다. 아마 그 엄마들의 선두에는 김미경이 있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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