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갚으면 주변에 공개” 청년 옥죄는 SNS 사채업자들 [미래를 저당잡힌 청년들 <상>]

2024. 1. 2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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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노리는 불법사금융 업체 기승
IT 익숙한 청년, 쉬운 대출에 발목
“SNS로 채무사실 알린다” 협박도
공적대출 제공해 사채 이용 막아야

“3일 연체 시 이유 불문 지인들 연락처로 전화합니다”

3년 전 처음 불법 사채를 이용한 A씨가 얼마 지나지 않아 총 28개 업체에서 돈을 빌리게 된 것은 이같은 협박 때문이었다. 보육원에서 유년기를 보낸 20대 A씨는 성인이 된 후 취업·생활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학자금대출·햇살론 등을 이용했다. 하지만 잦은 연체로 신용점수는 바닥을 기었다. 당장 생활비가 필요했던 A씨의 선택지는 불법 사채뿐이었다.

그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소액 대출’ 문의를 올렸고, 곧바로 사채업자를 알선받았다. 조건은 ‘15만원 대출, 6일 후 25만원 상환’. 사채업자는 대출 전 A씨에 주민등록등본, 지인 연락처 등을 요구했다. 문제는 연체가 시작되면서다. 사채업자는 “지인들 연락처로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얼굴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A씨는 연체를 피하기 위해 다른 불법사금융 업체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1건이 2건으로, 2건이 4건으로 늘었다. 결국 28개 업체에서 각각 10만원 남짓한 돈을 빚졌다. 그 무렵 A씨는 취업에 성공했다. 하지만 불어난 사채 이자는 월급으로 감당할 수 없었다. 되레 사채업자는 “연체할 경우 사진을 회사 홈페이지에 올릴 것”이라며 A씨를 더 강하게 옥좼다.

▶“‘대출’ 검색했을 뿐인데” 청년들에 더 쉬워지는 ‘불법 사채’ 유입=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불법사금융이 판치고 있다. 업자들은 주로 인터넷 대출중개사이트나 SNS·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이를 통해 인터넷 환경에 익숙하고 금융경험이 부족한 대학생 등 청년층을 주 고객으로 삼는다. 특히 지인·가족의 연락처를 받아 “채무사실을 알리겠다”는 식으로 협박해, 수천%에 달하는 부당이자를 갈취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24일 헤럴드경제가 개인돈(사채) 알선 창구로 이용되는 국내 최대 규모의 한 대출중개사이트 게시글을 분석한 결과, 월 평균 문의 건수는 지난해 기준 4141건으로 2021년(1446건)과 비교해 2년 새 186%(2695건)가량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게시판에서는 주로 제도권 대출이 불가능한 이들이 ‘30-50(원금 30만원, 일주일 뒤 50만원 상환)’ 등 조건으로 불법 사채를 소개받는다.

불법 사채 유입 통로는 이뿐만이 아니다. 국내 점유율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한 대형 포털사이트에 ‘대출’을 입력하면, 화면 상단에는 10개의 광고 링크가 먼저 노출된다. 그리고 이 중 과반인 7개 링크는 불법 사채 및 사채 알선 광고인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대출과 직접 관련이 없는 중고거래 커뮤니티나 SNS 등에서도 손쉽게 불법 사채 영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자연스레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청년층의 유입도 활발해졌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불법사금융 피해를 보고 채무자대리인 지원을 신청한 이들 중 20~30대 청년층의 비중은 2022년 기준 73%로 2020년(57.8%)과 비교해 15%포인트 증가했다. 특히 20대의 비중이 38.9%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많았다. 피해 유형별로는 최고금리 초과·불법 채권추심 피해구제를 함께 신청한 건이 대부분이었다.

▶‘불법’ 알면서도 쓰는 청년들...“공적자금 공급받게 해야”=법정 최고금리(20%)를 초과해 이자를 받을 시 이자제한법에 저촉되며, 피해자는 부당이득반환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다수 피해자가 스스로 대응책을 세우지 못한 채, 원금의 수십 배에 달하는 이자를 갈취당한다. 특히 청년들은 부모나 지인 등에 관련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가장 꺼려하는 경우가 많아, 불법임을 인지하고도 업자의 요구를 그대로 따르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29살 B씨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해 8월 대출중개사이트를 통해 처음 불법사금융을 이용했다. 제도권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급전이 필요하다’는 글을 올리자, 수십 군데서 전화가 쏟아졌다. 20만원으로 시작한 사채는 2000만원으로 불어났다. B씨는 “집 주소, 지인·가족 연락처, 일하는 곳 주소 등을 다 가져간 상태였다”며 “불법인 줄 알았지만 제도권 대출을 연체하면서도 사채 이자는 꼬박꼬박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같은 피해가 잇따르자 정부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22년 8월 ‘불법사금융 척결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불법사금융 특별단속 기간을 운영하는 등 강력 대응하기 시작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불법사금융 관련 검거 건수는 1018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35% 늘었다. 금융당국은 무분별한 온라인 불법사금융 광고에 대해서도 인공지능(AI)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감시 체계를 고도화하고 있다.

다만, 업자 처벌 등 공급 측면에서의 해결 외에도 수요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이수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불법사금융 공급자가 시장에 존재하는 것은 그들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가 있기 때문”이라며 “금융지원을 고용지원과 연계해 소득 창출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설계해, 대출중개사이트, 불법사금융 수요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수민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이사장은 “현재 청년들이 대출에 접근하는 경로를 살펴보면 햇살론 등 정책대출 정보보다 불법사금융 등 사적 영역을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작동하고 있다”며 “불법 경로 차단에 집중하면서도, 청년들이 목적에 맞는 공적자금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해 이용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우 기자

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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