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사각지대 놓인 ‘가족돌봄아동’… 국가차원의 체계적 지원 필요”

2024. 1. 24.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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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우산
초록우산은 지난해 4월 5일 국회 소통관에서 ‘가족돌봄아동·청소년·청년’ 지원법 제정과 지원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재단 측은 관련 법안 제정을 촉구하는 9000명의 서명도 국회에 전달했다./초록우산 제공

‘영케어러(Young Carer)’로 불리는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다. ‘가족돌봄청년’은 고령이나 장애·질병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가족을 돌보거나 이에 따라 생계까지 책임지는 만 13~34세 청소년·청년을 말한다. 보건복지부(복지부)는 올해 가족돌봄청년 대상 시범사업을 시행한다. 2026년 전국 확대를 목표로 4개 시도에 ‘돌봄코디네이터’를 전담 배치해 가족돌봄청년을 밀착 관리한다. 이런 청년들 대상으로 돌봄·가사·심리지원·식사·영양 관리·교육 등 ‘일상돌봄 서비스 사업’을 펼친다.

또 청년들이 가족부양 부담에서 벗어나 학업·자기계발·취업 등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연 200만원 수준의 ‘자기돌봄비’도 지원한다. 위기에 몰린 가족돌봄청년들을 위한 복지 제도의 시행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복지 사각지대가 여전히 존재해 안타까움이 남는다. 만 13세 미만의 아동들도 가족을 돌보지만, 나이 기준에 미치지 못해 지금껏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마땅히 보호받아야 하지만 제도의 허점으로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가족돌봄아동’ 지원 위한 법·제도적 장치 부재

민우(가명)는 질병으로 몸이 불편한 엄마,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5살 남동생과 함께 산다. 엄마가 일터에 나가면 8살 민우 혼자 동생을 돌봐야 한다. 동생을 목욕시키고, 식사까지 준비해서 먹이는 일이 모두 민우의 몫이다.

민우처럼 돌봄 받아야 하는 시기에 도리어 돌보는 아동을 ‘가족돌봄아동’이라 부른다. 하지만 공식적인 명칭이나 개념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가족돌봄아동을 규정할 수 있는 명확한 법이 존재하지 않고, 지원 체계도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 얼마나 많은 아이가 민우와 같은 상황인지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반면 해외에서는 일찍부터 ‘가족돌봄아동’을 법으로 명확히 정의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아동과 가족법에 따라 만 18세 미만을 ‘영 케어러’, 그 이상은 ‘영 어덜트 케어러’(Young Adult Carer)로 분류해 지원금을 주고 교육훈련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아직 국가 차원에서의 법은 없지만, 현재 전국 50여 개 지자체에서 자체적으로 ‘가족돌봄아동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하지만 가족돌봄아동에 대한 ▲정의 ▲지원 연령 ▲예산 등 조례의 세부적인 부분은 제각각이라 문제가 되고 있다. 또 대부분의 지자체는 만 14세를 지원 연령 하한선으로 규정한다. 만 13세 미만 아동들도 지원 대상에 포함될 수 있도록 나이 하한선을 없앤 지자체는 9곳뿐이다.

아동복지전문기관 초록우산은 2022년 재단이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아동·청소년 1494명 대상으로 ‘가족돌봄’ 현황을 조사했다. 응답자 중 46%(686명)가 가족돌봄 경험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중 초등학생은 23%에 달했다. 또 가족돌봄아동 중 50%는 돌봄 기간이 1년 이상인 것으로 확인됐다. 5년 이상 가족을 돌봐 온 경우도 28%로 장기간 가족돌봄 환경에 노출된 아동이 많았다. 돌봄 기간이 길어질수록 아이들은 심리적·정서적 문제는 물론 학업이나 진로 설정, 정서 발달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록우산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가족돌봄아동’을 찾기 위해 대한약사회와 함께 ‘돌봄약봉투’ 캠페인을 시작했다. 사진은 돌봄약봉투 캠페인 광고의 한 장면.

◇'돌봄 서비스’ 대상자인지 모르는 아동도 많아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된 민철(가명)이도 민우와 같은 가족돌봄아동이다. 중학생 때부터 가족돌봄을 시작했지만 ‘가족돌봄아동’이라는 말은 최근에 처음 알았다고 한다. 이마저도 초록우산이 가족돌봄아동 대상 ‘학습비 지원사업’을 시행하면서 자신이 대상자임을 알게 된 아이들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아동들은 어떤 돌봄 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는지 몰라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복지부 의뢰로 시행한 ‘가족돌봄청(소)년 실태조사 및 지원방안 연구’에 따르면 ‘이동·식사·가사 지원 등 돌봄 서비스를 모른다’라고 응답한 18세 이하 아동이 19~34세 청년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사회복지 현장 일선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들에게도 ‘가족돌봄아동’은 낯선 개념이었다. 초록우산은 지난해 8월 ‘가족돌봄아동청소년 사례담당자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초록우산 김수연 사회복지사는 “먼저 현장에서 사회복지사들이 가족돌봄아동·청소년에 대해 이해해야 규모가 어느 정도고,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논의할 수 있다”라면서 “현재는 여러모로 아쉬운 상황이다”라고 밝혔다. 가족돌봄아동에 대한 지원체계 구축이 시급한 이유다.

◇가족돌봄아동 찾기 ‘돌봄약봉투’ 캠페인 시행

초록우산은 지난해 11월부터 대한약사회와 ‘돌봄약봉투’ 캠페인을 시작했다. 전국 약국에 가족돌봄아동들의 어려움을 그림으로 묘사한 약봉투와 안내문이 배포됐다. 가족 대신 약국에 온 가족돌봄아동이 자신의 이야기임을 깨닫고, 도움의 손길까지 요청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초록우산은 ▲정책 개선 캠페인과 함께 ▲정책토론회 ▲국회 기자회견 등도 진행했다. 올해도 ‘가족돌봄아동 지원법 제정’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여기에 ▲아동들의 자립 역량 강화를 위한 ‘학습비’ ▲보호자 간병비와 함께 돌봄 부담을 덜 수 있는 ‘돌봄 서비스’ 같은 지원체계도 구축할 계획이다.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은 “우리나라 복지 정책은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등 돌봄받는 이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라면서 “보호받아야 할 나이에 가족을 돌봐야 하는 아동들이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된 경우가 많다”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가족돌봄’ 시간을 자유롭게 뛰어놀고,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면서 “정부와 국회가 합심해 국가 차원의 체계적이고 복합적인 복지서비스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도움이 필요한 만 18세 이하 ‘가족돌봄아동’은 ▲’돌봄약봉투’에 인쇄된 QR코드 ▲캠페인 콜센터(1533-6484) ▲초록우산 공식 홈페이지에서 지원을 신청할 수 있다. 지원 신청 및 접수는 오는 3월 31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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