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전 쓰레기 종량제 도입이 다시 봐도 신기한 이유[딥다이브]
쓰레기를 많이 버리면 돈을 많이 내게 하는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쓰레기를 많이 버리는 사람은 돈을 많이, 적게 버리는 사람은 조금 내는 거죠. 그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요? 쓰레기 처리 비용은 쓰레기를 만든 사람이 부담하는 게 맞다고요?
한국에 쓰레기 종량제가 의무화된 지 30년째. 규격봉투가 아닌 데 생활쓰레기를 담아 버리는 일은 이제 상상하기 어렵게 됐는데요.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보면 쓰레기 종량제는 꽤 논쟁적인 제도입니다. 한국처럼 전국적으로 전면 도입한 국가는 얼마 없죠. 올해 4월 쓰레기 종량제 전면 시행을 예고했던 홍콩도 최근 여론에 밀려 4개월 연기를 발표했을 정도인데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쓰레기 종량제의 경제적 효과와 의미를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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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종량제 논란
홍콩 시민들은 앞으로 쓰레기를 초록색 규격봉투에 담아 버려야 합니다. 15L짜리 한 장에 0.36홍콩달러(62원)짜리 봉투를 사서 말이죠. 홍콩이 20년에 걸친 논의 끝에 드디어 쓰레기 종량제를 도입하기로 한 겁니다.
그런데 4월 1일 제도 도입을 대대적으로 홍보해오던 홍콩 정부가 지난 19일 갑자기 연기를 결정합니다. 날짜를 8월 1일로 4개월 미루기로 했죠. 대중 교육과 홍보가 더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요.
사실 이 정책은 지난해 12월 도입하려다 한차례 미뤄진 적 있거든요(당시는 ‘연말엔 쓰레기 처리 직원이 부족하고, 방학에 쓰레기가 급증할 수 있다’는 이유였음). 이번이 두 번째 연기입니다. 홍콩 환경보호국은 “6, 7월엔 학교 시험이 집중되기 때문에 8월이 이상적 시기”라고 다소 특이한 택일 이유를 밝혔는데요.
홍콩 정부가 이렇게 쓰레기 종량제 도입을 자꾸 미루는 건 여론의 아우성 때문입니다. 곳곳에서 갖가지 문제가 제기되면서 대혼란이 벌어지고 있죠. 예컨대 ‘대걸레 막대는 어떻게 버리냐’와 같은 식의 질문이 끝도 없이 나오는데요. 이를 두고 지난주 라디오에 제도를 홍보하려 출연한 홍콩 환경보호국 관계자가 “톱으로 잘라서 규격봉투에 넣으면 된다”고 답해서, 가뜩이나 불만투성이인 시민들을 열받게 했습니다(‘쓰레기 버리려면 톱이 필수품이라니!’라는 반응).
단순히 규격봉투 이용이 불편하고 귀찮기 때문에 홍콩 사람들이 반대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실제로 경제적 부담이 너무 커질까 우려하는 이들도 있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얼마 전 홍콩의 요양원을 취재했는데요. 하루에 많게는 7~8번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 노인들이 모여있는 요양원의 경우, 규모에 따라서 연간 수십만 달러(수천만 원)의 비용이 추가될 거라고 걱정합니다. 장애인·저소득층 가정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단 주장도 나오죠.
이렇게 국민 부담이 늘고 여론이 악화하더라도 쓰레기 종량제는 도입할 만한 가치가 있긴 있는 거겠죠? 그걸 입증해주는 사례가 이미 나와 있습니다. 바로 한국이죠.
버리는 사람이 돈 낸다는 발상
먼저 쓰레기 종량제가 어떤 제도인지를 좀 살펴볼까요.
쓰레기 처리 비용은 어떻게 부담하는 게 합리적일까요. 쓰레기를 배출하는 오염원이 처리 비용을 어느 정도는 부담할 필요가 있다는 건 대체로 동의할 텐데요. 이를 어려운 말로 바꾸면 ‘오염자 부담 원칙’이죠.
1990년대 초반 한국도 이런 원칙에 따라 쓰레기 수수료를 가정에 매기긴 했는데요. 그땐 마치 세금처럼 부과했습니다. 집이 넓을수록 더 많은 처리비를 내는 식(건물 연면적과 재산세에 따라 9등급으로 나눠 부과)이었죠. 다른 나라의 경우엔 모든 가정이 똑같은 처리비를 내는 ‘정액제’ 방식을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쓰레기를 적게 버릴 경제적 유인이 전혀 없죠. 쓰레기 배출량이 적든 많든 내는 돈은 똑같으니까요. 어떻게 해야 공평하게 비용을 부담하는 동시에 쓰레기 배출을 자발적으로 줄이게 만들까. 이런 취지로 고안된 것이 쓰레기 종량제, 영어로는 ‘pay as you throw(약자 PAYT)’ 시스템입니다.
사실 쓰레기 종량제 역사는 꽤 오래됐습니다. 미국 일부 지역이나 일본 일부 지자체에선 1970년대부터 운영됐고, 지금도 지자체 중 많은 곳이 시행 중이죠. 유럽 여러 국가의 지방자치단체도 1990년대부터 도입해왔고요. 하지만 전국적으로 쓰레기 종량제를 일제히 의무화한 건 한국이 최초였습니다. 시범사업을 거쳐 1995년 1월 1일을 기해 제도가 전격 시행됐죠. 지정된 봉투를 사서 쓰레기를 버리게 하는 동시에 재활용품은 공짜로 분리 배출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게 참 놀라운 정책이었는데요. 2001년 7월 발행된 ‘월간 폐기물21’ 특집기사엔 이런 설명이 나옵니다.
‘외국의 전문가들은 한국의 전격적인 종량제 시행을 접하고서 “역시 한국은 대단하다”는 말을 자주 하였다. 전제국가도 아니고 민주주의라는 나라에서 어떻게 국가 전체가 하루아침에 종량제 시행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했다는 것이다. 쓰레기 종량제를 전국적으로 일시에 시작한 것은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쓰레기 종량제를 우리보다 먼저 시행한 독일, 스위스, 일본에서도 전국적인 시행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초기엔 대혼란
그럼 이 낯선 제도는 처음부터 환영받았을까요. 물론 아니죠. 당시 쓰레기 종량제는 정부와 도시의 강력한 의지+일부 전문가의 지지로 시작됐습니다. 경제 발전으로 쓰레기는 매년 7~10%씩 무섭게 늘어나는데, 매립지 조성과 쓰레기 소각시설 건설은 순탄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서울시가 1991년 11개 소각시설 건설을 계획했지만, 결국 주민 반대에 부딪혀 4개밖에 건설 못한 것만 봐도 심각성을 알 수 있죠. 정부와 지자체로선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 입장에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제도였습니다. 불만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쓰레기 버리는 데 돈을 내라고?”였는데요. 그때 아파트엔 집집마다 쓰레기 투입구가 있어서, 거기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털어 넣으면 끝이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슈퍼마켓에서 규격봉투를 돈 주고 산 뒤, 쓰레기를 담아서 가지고 밖으로 나가서 버려야 하니 돈도 들고 번거롭기까지 합니다. 전문가 중에서도 쓰레기 불법 투기가 늘어날 거라며 도입에 신중한 이들도 있었죠. 아니나 다를까. 1995년 1월 1일 시행과 동시에 각종 문제와 불만이 터져 나오는데요.
채소나 수산물을 파는 소매점은 쓰레기봉투 값 부담이 늘어나 울상이었습니다. 가락시장 같은 대형 도매시장엔 외부 쓰레기를 몰래 버리는 무단투기가 늘어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가게 앞에 내놓은 쓰레기를 내용물은 빼놓고 봉투만 몰래 가져가는 신종 도둑이 생겨났고요. 가짜 쓰레기봉투가 만들어져 대량 유통되기도 했습니다.
종량제 시행 이후 골목길이 더러워졌다는 한탄도 나왔죠. 쓰레기 봉투값 부담 때문에 주민들이 이웃집 대문 앞과 동네 놀이터까지 청소하던 미풍양속이 사라졌단 겁니다. 게다가 쓰레기봉투는 왜 이리 약해서 찢어지는지. 초반엔 손잡이 없는 봉투도 많았거든요. 무엇보다 ‘종량제 실시로 인해 고소득층의 부담은 줄어들고 저소득층은 많게는 10배 이상 수거료가 인상된다’고 당시 동아일보는 지적했습니다(1995년 1월 6일자).
설득력 있는 비판도 많았는데요. 무엇보다 쓰레기를 줄이려고 종량제를 하는데, 쓰레기봉투 자체가 1회용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재생 원료를 쓴 친환경 봉투를 쓰자는 움직임도 있긴 한데요. 잘 찢어진다는 인식 때문에 여전히 사용을 꺼린다고 하죠.
숫자가 보여주는 성과
쓰레기 종량제 시행 30년째. 성과는 어떨까요. 이를 보여줄 서울시 통계를 가져왔습니다. 하루 생활폐기물 발생량 추이입니다.(전국 통계는 기준과 단위가 중간에 바뀌어서 이전 수치와 비교가 어려워서, 서울시 통계를 대신 씁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이후 슬금슬금 다시 배출량은 늘었습니다. 특히 2021년엔 다시 1만톤을 넘어섰죠. 코로나 팬데믹 영향으로 풀이됩니다. 온라인 쇼핑이 늘고, 음식배달이 늘면서 가정에서 배출하는 쓰레기가 다시 많아진 겁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2014년 보고서에서 “종량제 시행 후 2012년까지 생활폐기물 감소와 재활용 증가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최소 19조5600억원”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런 계산이 어떻게 나오냐고요? 쓰레기 배출이 줄면 수집운반·처리시설 운영에 드는 돈을 크게 아낄 수 있고요(과거 보고서에 따르면 쓰레기 1톤 감량당 14만원 절감). 재활용품은 수집·운반·선별·가공비용이 들긴 하지만 부가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입니다(1톤 재활용당 1만9000원 편익. 단, 이자율과 각종 단가에 따라 경제효과 계산은 달라짐을 유의).
무엇보다 쓰레기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는 게 큰 성과가 아닐까 싶은데요. 재활용품은 물론 음식물 쓰레기까지 전 국민이 분리수거를 척척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소비자들이 포장이 과한 제품을 피하면서 제조사들도 쓰레기가 적게 나오는 상품을 만들게 되고요. 인상적인 건 10년 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쓰레기 분리배출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인데요. 응답자의 65.3%는 “분리수거가 귀찮지 않다”고 응답했습니다. 귀찮음이 이 제도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는데, 그걸 극복해낸 겁니다.
음악이 함께하는 대만 종량제
이쯤에서 쓰레기 종량제로는 한국 못지않게 유명한 성공사례를 하나 더 소개합니다. 바로 대만입니다.
대만은 2001년 쓰레기 종량제를 도입했는데요. 정해진 봉투를 사서 쓰레기를 배출해야 하고, 철저히 재활용품을 분리배출한다는 점은 우리와 같습니다. 하지만 이를 버리는 모습은 사뭇 다른데요.
그 결과 쓰레기 버리는 이 시간이 이웃과 소통할 소중한 교류의 시간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뉴욕타임스는 “(수거차에서 울리는) 노래가 대만 사람들에게 거의 파블로프식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고도 전합니다. ‘엘리제를 위하여’나 ‘소녀의 기도’를 들으면 쓰레기를 버리고 싶어진다는 거죠.
대만인이 1인당 하루에 배출하는 쓰레기 양은 850g(2018년 기준). 15년 전과 비교하면 29%나 줄어든 건데요. 대만은 30년 전인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쓰레기섬’이라고 불렸습니다. 매립지가 포화상태에 다다르면서 곳곳에 쓰레기가 쌓여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쓰레기는 줄고 재활용은 생활화됐습니다.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는데요. 그만큼 제도와 인프라 변화가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입니다.
한국과 대만의 이런 극적인 경험은 다른 나라에도 전파 중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비록 연기되긴 했지만 홍콩이 종량제 도입을 앞두고 있고요. 베트남 역시 늦어도 2025년에 쓰레기 종량제를 도입하는 환경보호법 개정안이 이미 2020년 통과됐습니다. 물론 제도 시행까지 많은 논란을 거치게 되겠지만요.
연이어 나오는 홍콩의 종량제 관련 뉴스들을 보면서 옛날 생각이 나서 기사를 쓰게 됐는데요. 종량제를 도입한 지 벌써 30년째라니 기분이 묘하네요. 여러분은 그 이전에 어떻게 쓰레기를 버렸는지가 기억 나시나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야심차게 쓰레기 종량제 도입을 계획했던 홍콩 정부가 여론에 밀려 또다시 4개월 연기를 발표했습니다. 아직 홍보와 교육이 부족하다는 이유인데요. 불편한 데다 비용 부담까지 늘어나는 종량제 의무화에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
-쓰레기 종량제는 ‘버리는 만큼 지불’하는 오염자 부담 원칙에 맞는 제도입니다. 무엇보다 개개인이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려는 자발적인 노력을 하도록 유인하는 효과가 있죠. 쓰레기 처리가 골칫거리였던 한국이 1995년 1월 이를 전격 도입한 이유입니다.
-도입 초기엔 물론 대혼란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첫해부터 쓰레기 배출량은 극적으로 줄었고, 재활용률은 빠르게 늘었습니다. 다만 최근 10년간은 이런 효과가 정체상태입니다.
-우리보다 늦게 제도를 도입한 대만도 종량제의 놀라운 효과를 경험했죠. 잘 설계된 제도와 인프라가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이 기사는 2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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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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