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도 언론도 ‘서초동 문법’ 이제 그만

이정하 기자 2024. 1. 2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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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부지검 수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전국 프리즘] 이정하│전국부 기자

“이거 오보대응 하나요?”

검찰발 ‘단독’ 보도가 터지면 법조 출입 기자들이 버릇처럼 던지는 질문이다. 이른바 ‘물먹었네’(낙종했네)라는 표현보다는 쑥스러움을 감추기 수월하다. 돌아오는 답은 미리 적어놔도 상관없다. 검찰은 “피의사실을 알려줄 수 없다. 그러나 오보대응은 하지 않겠다”고 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검찰과 기자들이 이런 ‘기계적 선문답’을 늘 주고받는 이유는 뭘까. “써도 좋아”라는 ‘검찰의 시그널’을 받기 위한 일종의 의례다. ‘보도 내용이 사실인지는 확인해주지 않겠지만, 정정보도 등의 대응도 하지 않겠다’는 언질을 얻기 위함이다.

정치인이 구사하는 언어습관이나 관행을 일컫는 ‘여의도 문법’처럼, 검찰과 법조 출입 기자 간 짬짜미로 굳어진 ‘서초동 문법’이다. 더러는 “아무것도 확인해줄 수 없다”며 침묵으로 일관한다. 이런 무대응은 추측성 보도의 확대재생산으로 이어진다.

지난 대통령선거판을 흔들었던 ‘대장동 그분’ 사건이 그렇다. 2021년 10월9일 동아일보는 대장동 개발사업 설계자 가운데 한명인 정영학 회계사가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나눈 대화의 녹취록 일부를 공개하면서 ‘그분’을 처음 언급했다. 김씨가 ‘(투자자) 천화동인 1호 배당금(1208억원) 절반은 그분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녹취록이 있다고 단독 보도한 것이다. 피의자 진술조서를 열람했거나 조사에 관여한 이들, 즉 검찰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해당 내용에는 ‘그분’이 누군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언론과 정치권에선 ‘그분’을 대화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지목하는 해설성·추측성 보도가 이어졌다. 대선이 끝나고 10개월이 지난 2023년 1월12일 뉴스타파가 당시 ‘정영학 녹취록’ 전부를 공개했다. 그런데 녹취록에는 보도 내용에 들어맞는 ‘그분’ 이야기는 없었다. 결국 오보였던 셈이다.

검찰 수사공보준칙 4조에는 ‘사건관계인의 명예 또는 사생활 등 인권을 침해하거나 수사에 지장을 초래하는 중대한 오보 또는 추측성 보도가 실재해 신속하게 그 진상을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공보를 실시하거나 해당 언론을 상대로 정정보도 또는 반론보도를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그런데도 2021년 10월 검찰은 오보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들만이 알고 있을 만한 오보였는데도 말이다.

그랬던 검찰이건만 ‘윤석열 검사의 부산저축은행 사건 수사 무마 의혹’(2022년 3월1일 보도)을 제기한 이른바 ‘김만배-신학림 허위 인터뷰 의혹’에 대해선 사뭇 달랐다. 지난해 9월 이노공 당시 법무부 차관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문재인 정부) 당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김만배-신학림 허위 인터뷰를 인지하고도 오보대응이 없었던 부분까지 수사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국민의힘이 허위 인터뷰 의혹을 제기하며 고발한 사건 관련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인터뷰의 허위성 여부는 검찰 수사와 재판에서 가려지겠지만, 검찰이 ‘대장동 그분’ 보도에서는 왜 같은 공정의 잣대를 적용하지 않았는지 의문으로 남는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의 알권리’는 충분히 보장되는 게 마땅하다. 언론은 중대 범죄 등 사안에서 국민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관련된 정보를 제공할 책임이 있다. 대통령 후보와 관련한 중차대한 사건이라면 더욱 그렇다. 언론 보도와 취재의 자유를 헌법에서 보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무죄 추정의 원칙’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검찰이 기소 전 ‘여론 재판’에 기댄 것이 아니라면 사건관계인의 인권, 방어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수사공보준칙을 지키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검찰이 오보대응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피의사실 공표의 책임은 지지 않고, 추측성 기사는 확산하길 바라는 것 아닌지 의심을 살 뿐이다. 이런 검찰도, 언론도 서초동 문법을 버릴 때다.

jungha9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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